
30년도 전에 잡지를 통해서 본 내용이 하나 있다. 독일의 한 기독교인이 기독교 잡지에 이런 글을 올렸다. “저는 지난 30년 동안 약 4천 번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기억나는 설교는 한 편도 없습니다. 수없이 많은 설교를 들었음에도 기억 하나 나지 않는 설교를 매주 준비해서 전하고 있는 목사님들께 묻습니다. 설교 작성해서 전하느라 낭비하는 시간에 차라리 다른 일을 하면 더 효율적이지 않겠는지요?”
이 글을 본 독자들은 목회자든 성도든 모두가 큰 충격에 휩싸이고 말았다. 누구 한 사람 그 도전에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글을 올리지 못했다. 그 후 몇 달이 지나 그 잡지에 이런 글이 하나 올라왔다.
“저는 지난 30년 동안 매일 세끼씩 3만 5천 끼의 식사를 해왔습니다. 그런데 제대로 기억할 수 있는 식단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그 음식을 먹고 이렇게 자라왔습니다. 기억하지 못한다고 성장이 없는 건 아닙니다.”
그 글을 본 모든 이들이 일제히 환호했다. 누구보다 목회자들이 더 크게 기뻐하며 박수 쳤다고 한다. 이 내용을 읽고 있는 독자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 “과연 명답이다!”라고 생각하지는 않으신지?
냉정하게 한 번 따져보자. 육의 양식인 음식은 그것을 내가 인식하든 못하든, 기억하든 못하든 상관없이 부지불식간에 우리 몸에 영양을 공급해서 자동으로 성장하게 한다.
자동차에 기름을 넣으면 어떤 원리로 차가 굴러가는지 알든 모르든 상관없이 시동이 걸려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과 같은 이치로 말이다.
하지만 영의 양식인 성경 말씀과 그 말씀을 전하는 설교는 그와 같은 방식으로 판단해선 안 되는 사안이다.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그것을 듣는 사람이 ‘이해하고 깨닫고 감동받아서 삶의 변화를 가져오도록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음식은 맛이 좋든 좋지 않든, 특별 메뉴든 평범한 메뉴든 몸에 들어가면 몸이 알아서 영양분을 섭취하여 자라게 한다. 하지만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은 읽거나 듣고 깨닫지 못하거나 감동받지 못해서 기억에 남지 않게 된다면 영혼이 성장하고 충실한 열매를 맺는 신앙인으로 만들 수 없음을 생각해 보라. 그런 점에서 육의 양식인 음식과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에 현저한 차이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딤후 3:16~17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성경을 주신 목적이 ‘사람을 온전하게 하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고, 그것을 가능케 하기 위해서 말씀을 통해 ‘교훈과 책망과 의로 교육한다’라고 했다.
그럼에도 성경이나 설교를 통해서 읽고 들은 말씀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면, 본인의 문제도 있겠지만 그것을 전하는 설교나 설교자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다.
육의 양식과 영의 양식은 전혀 다른 사안이다. 소문난 식당의 주방장이 손님들에게 양질의 음식을 맛있게 먹이도록 최선을 다해 식단을 준비하고 있다면, 영의 양식을 맡은 ‘말씀 주방장들’은 그 몇 배나 더 신경을 쓰고 정성을 기울여야 하지 않겠는가!
다가오는 내일 주일에도 수없이 많은 교회에서 일주일간 준비한 영의 양식이 강단에서 제공될 것이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성도들의 소중한 식단을 준비하는 설교자들이여, 어떻게 하면 성도들에게 영양 만점의 식단을 맛있게 준비해서 먹일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남은 시간, 자신이 준비한 음식을 다시 한번 ‘심혈을 기울여 꼼꼼하게’ 점검해 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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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