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데이비드 리브스의 기고글인 ‘예수님께서 부활절 이야기에 대해 후회하는 것이 있을까?’(Does Jesus regret anything about the Easter story?)를 16일(현지시각) 게재했다.
리브스는 과학과 성경에 관한 주간 뉴스 칼럼니스트이며 텔레비전 쇼 진행자이자 다큐멘터리 제작자이며, 공룡 연조직, 천체물리학 연구 등 과학적 발견을 깨는 주제에 대한 기조 연설자로 활동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우리는 모두 어떤 프로젝트를 끝마친 후 실수나 놓친 부분을 발견했을 때 느끼는 실망을 잘 알고 있다. 집 수리, 공예, 정성껏 가꾼 정원 등 어떤 작업이든 항상 “그때 이렇게 할 걸”이라는 아쉬움이 남기 마련이다. 하지만 부활절은 우리에게, 우리가 우리의 일들을 돌아보며 후회할 수는 있어도, 하나님은 그러하지 않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갈보리의 십자가 위에서는 그런 후회가 없었다. 예수님께서 궁극적인 희생을 마치신 후, “내가 더 할 수 있었을 텐데”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자신의 사역을 되돌아보며 망설이지 않으셨다. 대신 우리 구주께서는 이렇게 외치셨다. “테텔레스타이”(Tetelestai), 곧 “다 이루었다.”
“테텔레스타이”는 그리스어 “텔레오스(teleos)”에서 유래했으며, ‘무언가가 완전히 끝마쳐졌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고 선포하셨을 때, 그것은 우주 창조 때부터 진행되어 온 하나님의 구속 계획이 완성되었음을 알리는 선언이었다.
그 “완성된 것”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우리는 단순히 십자가로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창세기, 곧 세상이 아직 죄로 더럽혀지지 않았고 완전했던 그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성경은 창조 주간이 끝났을 때,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고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한다. 자연의 신비로움을 탐구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하나님의 설계에 담긴 섬세한 아름다움에 늘 감탄한다. 눈송이의 정교한 대칭, 생태계의 조화로운 리듬 속에서 우리는 위대한 장인의 손길을 발견할 수 있다. 처음 세상은 완벽하게 작동했다. 하나님의 창조에는 ‘놓친 부분’이 없었다.
그러나 무언가 달라졌다. 아담과 하와의 자발적인 불순종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 죄는 에덴동산을 더럽히고 파괴했다. 그 결과, 온 세상은 탄식하게 되었다.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도록 창조된 인간은 반역을 택했고, 그 죄로 인해 죽음과 부패가 온 세상에 스며들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심히 좋다”고 선포하셨던 그 세상은 이제 구속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 첫 번째 죄에 대한 하나님의 즉각적인 반응은 “피”였다. 아담과 하와의 수치와 벌거벗음을 가리기 위해 무고한 동물의 피가 흘려졌다. 단순히 옷을 입힌 사건이 아니라, 더 크고 위대한 희생을 예고하는 시작이었다.
아벨의 제사부터 모세에게 주어진 복잡한 율법에 이르기까지, 구약 전반에 걸쳐 우리는 반복되는 패턴을 본다. 바로 ‘피를 통한 속죄’다. 해마다 드려진 수많은 황소와 염소의 제사는 죄를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었지만, 장차 오실 구세주의 희생을 가리키는 예표였다.
신약에 와서, 그 약속은 성취되었다.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로마의 십자가에 달리셨다. 그 순간 예수님은 창세기에서부터 계획된 구원의 여정을 마무리하셨다. 이제 더 이상 임시적인 제사는 필요 없다. 유월절에, 흠 없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께서 과거, 현재, 미래의 죄를 모두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셨다. 그리고 “다 이루었다”고 외치셨을 때, 그것은 죽음과 죄, 무덤에 대한 완전한 승리 선언이었다. 회의론자들이 조롱했지만, 사흘 후 예수님은 부활하셨고, 그 피의 제사는 이제 완전하게 “끝난 것”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부활절의 진짜 메시지다. 단지 휴일이나 전통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인정하고, 에덴에서 잃어버렸던 것이 십자가에서 되찾아졌다는 것을 기억하는 날이다. 죄로 인해 들어온 죽음은, 무덤을 이기고 걸어 나오신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정복되었다.
이 엄청난 순간의 의미를 되새기며, 나는 창조주와 십자가 사이의 깊은 연결을 묵상해 보자고 권하고 싶다. 타락 이후에도 하나님은 인간에게서 멀어지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분은 친히 피조 세계 안으로 들어오셔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심으로 세상을 구속하셨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계획에서 벗어난 돌발 변수가 아니라, 바로 그분 사랑의 목적지였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일을 돌아보며 “좀 더 잘할 수 있었는데”라고 후회할지 모르지만,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 안에는 그런 후회도, 오류도 없다.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고 하셨을 때, 그것은 진심이었다. 그리고 그분의 그 완성 덕분에 우리는 영원한 생명의 약속을 얻게 되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