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야당이 줄곧 요구해 온 마은혁 재판관을 임명하는 동시에 오는 18일 퇴임하는 문형배·이미선 재판관 후임으로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지명했다. 두 재판관 후보자의 국회 청문 절차 후 임명이 마무리되면 헌법재판소 9인 재판관 체제가 비로소 완성된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은 한 대행의 헌재 재판관 2인 지명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권한대행의 재판관 지명이 ‘위헌’이라며 권한쟁의 심판 또는 효력 정지 가처분으로 막겠다고 입장이다.
민주당이 이토록 반발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대통령 권한 대행으로서의 법적 권한을 넘는 권한 행사라는 데 있다. 대통령이 아닌 권한대행으로서 최소한의 직무만 대리할 수 있다는 게 주장의 근거다.
그런데 이런 주장은 민주당이 탄핵정국에서 줄곧 요구해 온 논리와 명분에 맞지 않는다. 민주당은 한 대행이 마 재판관 후보를 임명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탄핵까지 시켰다. 그래놓고 이제와서 대통령 권한대행이 재판관을 지명한 걸 ‘위헌’이라 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사실 이건 겉으로 보여지는 이유일 뿐 민주당이 반발하는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는 게 정치권의 해석이다. 이번에 한 대행이 임명한 마 재판관 후보는 민주당 추천 인물로 그가 지하 혁명조직인 인민노련 RO조직 창립 멤버로 활동하는 등 좌편향 인물이라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한 대행이 지명한 이완규 법제처장 함상훈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비교적 보수 성향을 띤 인물로 평가된다. 중요한 건 두 재판관 후보가 과거 문재인 대통령이 지명한 진보성향의 문형배·이미선 재판관 후임으로 대체될 경우 헌재 재판관이 현재 진보 우위에서 보수 우위 구도로 바뀐다는 점이다.
결국, 민주당이 한 대행의 재판관 지명에 반발해 재탄핵을 거론하고 효력정지 가처분 등으로 저지하려는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짐작이 간다. 헌재가 보수 우위 구도로 바뀌는 걸 걱정하는 게 아니고 뭐겠나.
헌재가 대통령을 탄핵해 파면한 마당에 민주당이 헌법재판관 몇 명이 바뀌는 것에 왜 그리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건지 국민 편에선 도통 이해가 안 된다. 곧 조기 대선이 있으니 새로 선출된 대통령이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는 논리와 명분을 내세우고 있으나 이건 법리적으로나 정치 도의상 전혀 부합하지 않는 주장이다.
민주당의 주장대로 라면 18일 이후부터 야당이 줄 탄핵한 법무부 장관 등 여러 건의 탄핵 심판이 중단될 수밖에 없다. 퇴임을 앞둔 두 재판관이 임기 만료 전에 심판을 서두른다 하더라도 헌재에 넘겨진 모든 탄핵 심판을 마무리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지금 시점에서 무엇보다 민주당이 신경 쓰는 건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 문제일 것이다. 만약 조기 대선에서 이 대표가 대통령에 당선된다고 가정할 때 현재 재판 중인 5건의 이 대표 관련 재판도 어떤 식으로든 정치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런 경우 이 대표가 자신과 관련한 재판을 중단시킬 목적으로 헌재에 헌법 소원을 낼 가능성이 크다. 당장 선거법 위반 재판의 3심을 앞둔 상황에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이 날 경우의 수를 대비하는 차원에서라도 헌재의 판단에 기대를 걸 것이란 게 법조계의 판단이다.
그런데 만약 헌재가 범죄 혐의를 받는 재판은 계속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려 헌법 소원을 기각할 경우 이는 곧 이 대표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안길 수 있다. 헌재의 판단이 대법원에 법리와 소신에 따른 판결을 하라는 일종의 시그널로 작용할 수 있어서다.
또 다른 심각한 문제는 민주당이 국회 입법권에 이어 대선을 통해 행정권을 거머쥐고, 마지막 남은 사법의 최후 보루 헌재까지 장악할 경우 닥치게 될 대한민국의 위험천만한 미래다. 한 사람과 그 사람이 속한 정당의 독주는 입법·행정·사법 삼권 분립의 무력화와 민주주의 기본 틀의 붕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한 대행의 재판관 지명이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의 정당한 권한 행사이자 삼권 분립의 저해 요소를 치우는 최소한의 조치로 이해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 재판은 2심에서 무죄판결로 대법원 최종심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검찰의 즉각 상고로 대법원이 이 대표에게 상고심 서류를 발송했는데도 이 대표가 서류를 받지 않는 바람에 차일피일 뒤로 미뤄지고 있다. 이 대표는 항소심 재판 때도 이사불명, 폐문 부재 등의 사유로 재판 서류를 받지 않아 2심 재판 개시를 고의로 지연시킨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이 대표가 지금 원하는 건 조기 대선을 통해 대통령에 당선되는 한 가지다. 이 과정에 방해되는 건 그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자신이 받는 범죄 혐의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대통령이 됐다고 진행 중인 재판을 무력화시킬 수도, 시켜서도 안 될 것이다.
이 대표가 진정 국민의 대표가 되고 싶다면 자신의 재판에 성실히 임해 여러 혐의를 벗는 게 가장 떳떳한 길이다. 국민도 대선에 출마하기 전에 모든 범죄 혐의가 정리하길 바랄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당이 재판관의 성향과 보수 진보 구도에 신경 쓸 필요도 없고, 대법원 재판을 지연시키기 위해 서류 접수를 미루는 등의 구차한 행위를 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헌재는 이미 두 명의 대통령을 파면했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심판해 파면할 수 있는가에 대해선 법조계에서조차 논란이 분분하다. 헌법의 가치를 망가뜨린 재판관들의 정치적 편향 문제는 반드시 역사가 평가하게 될 것이다. 정치기관이란 불명예를 떠안게 된 헌재가 조속히 9인 체제로 회복해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헌법기관으로 거듭나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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