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지난 4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파면을 결정했다. 대통령의 비상 계엄선포가 헌법이 정한 요건에 맞는지, 국무회의 등 법이 정한 절차를 지켰는지, 계엄 선포 후 국회 활동의 자유를 침해했는지 등 주요 쟁점에 대해 헌법 재판관 8명 전원일치로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헌법 제77조에 의하면 비상계엄은 대통령의 적법한 통치 수단에 해당한다. 문제는 현 정치 상황이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를 병력으로 대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데 있다.

윤 대통령 측은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정부 관료 탄핵 소추 발의 22건과 국회에서 정부 예산 4조1000억원을 삭감하는 등 국정 발목잡기를 비상계엄 선포 이유로 꼽았다. 그런데 헌재는 이것이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비상계엄을 선포할 정도로 위급하다고 보기 어렵고,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헌재가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위헌·위법으로 판단한 또 하나의 근거는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계엄군을 투입한 데 있다. 정부와 법원에 한해서만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계엄령의 범위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아울러 국회와 정당의 활동을 금지한 포고령도 중대한 기본권 침해로 봤다.

지난해 12·3 비상계엄에 이은 탄핵정국은 나라와 사회를 온통 혼란과 분열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비상계엄 직후 국회에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서 모든 법적 판단의 공이 헌재로 넘겨졌으나 탄핵 인용 선고가 내려지기까지 4개월이 넘도록 우리 사회는 완전히 둘로 쪼개진 채 혼돈 상태를 벗어날 수 없었다.

탄핵 정국에서 이전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와는 확연히 다른 변화가 느껴졌다. 비상계엄에 대한 불가피성을 인식하는 국민적 변화의 바람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윤 대통령이 직무가 정지된 상태로 야당의 국무위원에 대한 줄 탄핵과 국회에서의 입법 폭주, 정부 예산 삭감 등 국정 발목잡기와 선관위의 부정선거 의혹을 파헤치기 위해 부득이한 선택이었음을 토로한 대국민 담화가 국민, 특히 보수 지지층의 잠자는 의식을 흔들어 깨운 것이다.

그 이후 비상계엄령이 곧 국민을 위한 ‘계몽령’이 됐다는 말이 삽시간에 국민들 사이에 퍼져 나갔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10%대에 머물던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40% 후반에서 50%때까지 치솟은 것이 말해준다. 그런 국민적 각성이 ‘세이브 코리아 비상구국기도회’ 등을 중심으로 자유 민주주의 수호와 윤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거대한 사회적 흐름으로 이어지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 4개월여 아스팔트 위에서 추위와 싸워가며 윤 대통령의 탄핵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외쳐온 이들에게 이날 헌재의 대통령 파면 선고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충격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동안 헌재의 선고가 지연되면서 그 원인이 재판관들 사이에서 의견이 엇갈려 교착상태에 빠진 것이라는 등 다양한 설과 추측이 나돌았기에 이들에게 8대0 인용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소식일 수밖에 없다.

그동안 정치권 안팎에선 헌재 재판관들의 성향과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재판관 8인 중 5:3 또는 4대4 기각이 조심스럽게 점쳐졌었다. 전원일치로 의견이 모아졌다면 변론 종결 후 한 달이 넘도록 선고가 지연될 이유가 없다는 점과 민주당이 마은혁 재판관 후보 임명을 놓고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과 최상목 권한 대행의 대행까지 줄기차게 탄핵하겠다고 겁박했던 것을 미루어 볼 때 그런 예상에 무게가 실렸던 게 사실이다.

이런 여러 가지 정황에 일말에 희망을 걸었던 보수진영, 특히 대통령 지지층의 실망감은 이루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일 것이다. ‘세이브 코리아’ 등 탄핵 반대집회에 참여한 수많은 국민들의 궁극적인 목표가 자유민주주의 수호에 있었던 만큼 모든 걸 잃은 심한 좌절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되지 않을까 염려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기대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모든 게 끝난 건 아니라는 말이다. 대한민국의 자유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려는 반국가세력과의 영적 전쟁은 처음부터 대통령 한사람에 달린 문제가 아니었다. 반드시 털고 일어나 재정비 시간을 가진 후 목표를 향해 다시 출발해야 할 것이다.

교계는 헌재의 대통령 파면 결정에 일제히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기총은 “한국교회가 앞으로 대한민국이 안정되고 이번 일을 계기로 더욱 성숙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한교총은 나아가 “여당과 야당은 국민적 갈등을 선동하지 말고 국회로 돌아가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통해 대의 민주주의 정치를 복원하라”고 주문했다.

대통령의 탄핵과 파면은 정국이 조기대선 체제로 빠르게 전환되는 걸 의미한다. 하지만 지금의 분열과 상처 그대로 두 달 뒤 조기대선이 치러진다면 그 결과를 떠나 탄핵정국이 남긴 우리 사회의 갈등이 영영 치유되지 못한 채 국민의 사이를 갈라놓게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지난 넉 달간 이어진 탄핵 정국은 막을 내렸지만 국민들의 마음속은 내전 상태라고 할 만큼 큰 갈등이 여전히 도사리고 있다. 한국교회 또한 조기대선 결과에 따라 감당해야 할 무게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현 시점에서 기독교계가 국민 통합과 화합의 중요성을 거론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다만 국민 통합과 화합을 말하기에 앞서 교계 안에도 탄핵 찬반 의견으로 나뉘는 등 큰 갈등이 있었고 그것이 아픔과 상처로 남아있다는 점에서 먼저 내부 문제를 푸는 데 지혜를 모을 필요가 있다. 한국교회 앞에 놓인 길은 이전보다 훨씬 험난한 가시밭길일 것이다. 모두 힘을 합해 해쳐나가기 위해서라도 교회 내부의 갈등부터 푸는 게 급선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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