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가 섬겨야 할 세상은 갈수록 비인간화 되어가고 있다. 특별히 가난한 자, 병든 자, 실직자, 힘없는 자들은 갈수록 더 사회의 주변으로 밀려나고 있다. 약한 자들에 대한 구조적, 영적, 물리적 폭력을 동반한 배척 (exclusion)이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갈수록 더 심화되고 있다.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피난처, 건강 유지, 영양공급 그리고 교육 등과 같은 인간의 기본적인 필요에 대한 공급은 30년 전보다 실제적으로 더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로 인하여 그들의 땅에서 쫒겨 나거나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노동자들과 농민들 그리고 토착민들의 경제적 이민이 증가하게 되었다.
1. 교회의 사회적 책임 도전 및 강화
그리스도를 약한 자들과 연대하고 그들의 해방을 위해 일하시는 분으로 이해하는 에큐메니칼 그리스도 이해는 인류의 절대 약자들에게 희망을 안겨준다. 그들에게 있어서 구원이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라는 영적인 문제일 뿐 아니라, 가난과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고, 모든 차별과 분쟁의 종식이며, 기쁨과 행복이 가능한 삶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이해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가난한 자를 억압하는 사람들, 다른 민족과 국가의 피폐를 묵인할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사람들, 더 나아가 가난한 자들을 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평안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구원의 의미를 깨닫게 한다. 즉 이 시대의 부요한 자들에게 진정한 구원은 영적인 구원일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임을 인식시킴으로써 구원의 작은 도구로 쓰임 받을 수 있는 길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그리스도 이해로 말미암아 교회의 선교는 이제 가난한 자들과 소외된 자들 그리고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욱 깊은 관심을 갖는 사역이 되도록 도전을 받는다. 아울러 이러한 이해는 가난한 자들을 개인적으로 돕는 차원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이러한 사람들을 양산하고 이러한 사람들이 그 가난의 굴레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도록 만드는 사회의 죄악된 구조를 갱신할 수 있도록 저항하거나 투쟁할 수 있는 교회가 되도록 도전한다는데 큰 기여점이 있다.
2. 예수 구원의 보편성 약화 가능성
위에서 언급한 기여점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자들과 연대하는 그리스도 이해는 몇 가지 한계점을 지니고 있다. 에큐메니칼의 가난한 자와 연대하시는 해방자 그리스도 이해는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부유한 자들이 배제되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다. 하나님은 물론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신다. 그러나 동시에 부한 자들도 역시 사랑하신다. 가난한 자들에게 구원이 필요한 것처럼 부유한 자들도 역시 구원이 필요한 자들이다.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은 한결같이 그리스도의 구원을 필요로 하는 자들이다.
그런데 에큐메니칼의 해방자 예수 이해는 가난한 사람들과 부한 사람들, 억압받는 민족과 착취하는 민족, 후진국과 선진국 이라는 이원적인 관점으로 세계를 나누고, 예수를 가난한 자, 억압받는 민족, 후진국의 대변자로 세움으로써 부한 사람들, 착취하는 민족, 선진국을 구원으로부터 배제시키는 이미지를 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즉 가난한 자들에 대한 예수의 편애를 강조하는 것은 자칫 예수 그리스도의 보편적인 사랑과 구원의 보편적인 필요성을 훼손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3. 부자와 빈자 모두로부터 외면을 당할 수 있는 가능성
예수를 해방자로 간주하는 신학은 그리스도의 보편적 사랑을 희생하면서 부자들로부터 외면을 당할 뿐 아니라 심지어 가난한 자들로부터도 외면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남미의 경우 해방신학이 그토록 관심을 두는 가난한 자들은 해방신학에 관심이 없고 오히려 오순절 교회로 발걸음을 옮기는 형편이다. 즉 예수를 해방자로 강조하는 신학은 부자와 가난한 자 모두로부터 등돌림을 당하고 있다. 아울러 가난한 자들과 연대하는 그리스도를 강조하면서 가난한 자들의 해방에의 동참을 강조하는 신학은 자칫 인간들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이에 대하여 보쉬는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최종적인 구원은 인간의 손으로, 심지어는 그리스도인들의 손으로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의 종말론적인 구원 비젼은 역사 속에서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어떤 특정한 계획을 하나님의 통치의 충만함으로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기껏해야 하나님의 통치를 위한 가교를 건설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의 초월적인 성질과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람들을 초대하는 일을 고수한다. 구원은 회개와 개인적인 믿음의 헌신을 통하지 않고서는 오지 않는다. (계속)
※ 좀 더 자세한 내용과 각주 등은 아래의 책에 나와 있다.
안승오 교수(영남신대)
성결대학교를 졸업하고 장로회신학대학원(M.Div)에서 수학한 후, 미국 풀러신학대학원에서 선교학으로 신학석사(Th.M) 학위와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다. 총회 파송으로 필리핀에서 선교 사역을 했으며, 풀러신학대학원 객원교수, Journal of Asian Mission 편집위원, 한국로잔 연구교수회장, 영남신학대학교 대학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선교와 신학』 및 『복음과 선교』 편집위원, 지구촌선교연구원 원장, 영남신학대학교 선교신학 교수 등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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