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 영혼을 위하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작정하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 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고정희(1948-1992) 엮음 <예수와 민중과 사랑 그리고 詩>(1985, 기민사)에는 아래 두 줄이 빠져 있다.

고정희 시인
고정희 시인

고정희(高靜熙,1948-1991) 시인은 전남 해남 출생, 한신대를 나왔다.

​1975년 시인 박남수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연가」, 「부활과 그 이후」 등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하였다. 김준태·송수권·장효문·허형만·국효문 등과 함께 목요회 동인 활동을 하였다. 김준태·장효문 시인이 크리스천이었고, 교수였던 송수권·허형만 시인은 남도의 서정 시인들이었으며 국효문 교수는 여성문인이다. 젊은 시절 필자는 특별히 남도의 남성적 서정 시인인 송수권 시인의 시를 유달리 애독하였다.

​고 시인은 1983년 시집 『초혼제』로 대한민국문학상을 받았고, 여성문화운동 동인인 ‘또 하나의 문화’에서 활동하였으며, 『여성신문』 초대 편집 주간을 역임하였다. 기독교신문사와 크리스챤아카데미의 출판 간사를 맡았다.

​絕頂에서 불꽃처럼 살다 "저 광활한 우주 속으로" 티끌처럼 사라진 두 시인이 있다. 한 사람은 朴正萬(1946-1988) 시인이요 또 한 사람이 바로 고정희 시인이다. 박정만 시인은 한수산 작가의 필화 사건에 얽혀 억울한 고문의 후유증을 크게 앓았다. 박 시인은 '처절한 고통의 시간'을 1987년 8월 20일부터 한달도 안 된 기간 동안, 300편의 시편으로 쏟아내었다. 반면 고 시인은 왕성한 시작 활동 가운데 1991년 6월 9일 지리산 등반 도중 안타깝게 실족사하였다.

조덕영 박사
조덕영 박사

​이 두 시인만 생각하면 가슴이 늘 속절없이 쓰려온다. 시인의 속 마음을 열어본다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 소중한 두 시인의 깊은 속마음은 무엇이었을까. 고 시인은 <새롭게 뿌리내리는 기독교 文化를 위하여>에서 "불의한 것을 거부하고 불평등한 것에 항거하며 스스로 낮아짐의 신분으로 가장 비천한 자들의 친구가 되신 예수, 가장 낮은 자들의 신랑이 되신 예수의 비밀은 무엇일까?"라고 반문한다.

​고정희 시인은 "천덕꾸러기들이나 모여 사는 갈릴리 어촌을 배회하시다가 고통과 죄짐을 두 어깨에 무겁게 지고 죽음의 골짜기에 오른 예수"를 "민중의 예수"라 했고, 기독교 공동체를 "사랑의 공동체요 나눔의 공동체"라 했다. 극에 달한 정치적 미움만이 넘쳐나는 작금의 조국 상황을 보았다면 '민중 시인' 고정희 시인은 무어라 했을까? 아름다운 고 시인의 시에는 뜻밖에도 유난히 외로움과 고통과 설움 그리고 눈물과 어두움과 빛이 교차하는 경우가 많다.

​시 '야훼님전상서'에도 고독과 어두움이 보인다.

​「재림하지 마소서」(*김광규의 <연도>에서 전용)
그리고 용서하소서
신도보다 잘사는 목회자를 용서하시고
사회보다 잘사는 교회를 용서하시고
제자보다 잘 사는 학자를 용서하시고
독자보다 배부른 시인을 용서하시고
백성보다 살쪄 있는 지배자를 용서하소서.

​- '야훼님전상서' 시 후반부에서-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신학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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