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네 남편 여호와니라"(이사야 54:1-10)

이사야 54:1-10은 여인으로 의인화된 시온(또는 예루살렘)에게 주시는 여호와의 회복의 약속을 담고 있다. 이를 통해 본문은 바벨론에서 절망 중에 살아가고 있는 언약 백성에게 여호와의 위로를 전하고 있다.
성전이 있는 산이자 언약 백성이 거주하는 성읍인 시온은 이사야서에서 하나님의 아내이자 언약 백성의 어머니로 묘사된다. 그는 자녀들의 죄악으로 인해 남편 되신 여호와께 '창기' 취급을 당하고(1:21) 결국 소박을 맞았다(50:1). 또한 자식들을 전쟁에서 잃거나 포로로 빼앗기게 되어, 홀로 남겨지게 되었다(49:20-21, 25; 51:18-20). 그런데 이렇게 비참한 처지에 있는 시온에게 여호와께서 완전하고 영원한 회복을 약속하신다.
먼저 여호와는 시온에게 많은 자식을 얻게 되리라는 약속을 주신다(1-3). 자식 하나 남지 않은 시온의 처지는 "잉태하지 못한 여인", "출산하지 못한 여인", "산고를 겪지 못한 여인"과 다름없다. 그러나 여호와는 시온에게 큰 소리를 터뜨리며 노래하라고 하시면서, 수많은 자녀들이 거주하도록 장막을 확장하라고 명령하신다(사 49:17-21 참조). 이런 역설적 명령의 근거는 무엇인가? 바로 여호와께서 친히 개입하셔서 상황을 역전시키실 것이기 때문이다. 임신하지 못하던 사라(창 11:30)와 리브가(창 25:21)의 태를 여셨던 것처럼, 여호와께서 시온에게 자녀들을 주실 것이고 그들에게 다시 언약의 복을 주실 것이다(창 12:1-3; 17:7-8 참조).
시온의 회복은 자녀에 대한 약속에 그치지 않는다. 여호와께서는 쫓아냈던 아내 시온과의 결혼관계를 회복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신다(4-6). 이 약속은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는 또 다른 역설적 명령을 통해 전달된다. 지금 시온은 남편에게 버림받아 절망과 수치에 사로잡혀 있는 여인이다.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자신을 "네 남편," "네 구속자"라고 하시면서, 그를 다시 아내로 맞으시겠다고 약속하신다(호 2:14-20 참조). 더 나아가, 자기를 시온의 "창조자," "만군의 여호와," "온 땅의 하나님"이라고 밝히시면서, 여호와께 이 약속을 성취할 주권과 능력이 있음을 알리신다.
아내 시온의 회복에 대한 약속이 얼마나 확실한 것인지 두 가지 말씀을 통해 강조된다. 첫째로, 여호와께서 시온에 대해 품으신 진노를 완전히 거두셨다(7-8).
과거 여호와께서는 범람하는 홍수처럼 맹렬한 진노를 시온에게 발하셨다. 그러나 이제 여호와는 그에게 "잠시"의 진노와 비교할 수 없는 "큰 긍휼", "영원한 자비"를 약속하신다. 둘째로, 노아의 홍수 뒤에 하셨던 것처럼, 여호와께서는 굳은 맹세를 통해 시온에게 자기 약속을 확증하신다(9-10). "산들이 떠나며 언덕들은 옮겨질지라도, 나의 자비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나의 화평의 언약은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본문의 약속대로, 여호와께서는 시온을 회복하셔서, 다시 그곳에 성전이 서게 하셨고 바벨론에서부터 돌아온 남은 자들로 그곳에 살게 하셨다(에스라 참조). 또한 여호와께서는 시온에 세워지는 성전에 영원히 임재하시며 크신 영광을 주시겠노라 약속하셨다(학 2:1-9 참조). 과연 그 약속대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는 영광의 하나님으로 이 땅에 임하셨다(요 1:14, 18). 그뿐 아니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주셔서 죄인들을 구속하심을 통해 우리를 향해 품으신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셨다(롬 5:6-8). 하나님의 원수로서 그의 진노하심에 거하던 우리가 그의 크신 긍휼로 인해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것이다(롬 5:9-11; 골 2:19-22).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 가운데 살아가게 되었다(롬 8:35-39).
그렇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신실하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먼저 어떤 환란 중에 거할지라도, 구원의 약속을 성취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믿음에 거하며 복음의 소망을 굳게 붙잡아야 하겠다(골 1:23). 둘째로,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까지 그의 신부로 거룩하게 살아가면서 어린 양의 혼인잔치를 소망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다(고후 11:2; 계 19:7-8).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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