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행과 비교가 만연한 이 시대에서, 아직도 영성을 말하냐며 조롱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조용히 예수를 가리킨다. 사람의 삶은 때로 지루하고 무의미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삶은 끊임없이 각자에게 말을 걸고 있고, 이에 귀를 기울이면 따뜻한 울림과 공감이 가까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종교의 중심에는 사랑이, 교육의 중심에는 희망이 있는데, 이를 핑크색 고무장갑을 끼고 다른 집사님들과 식당 봉사를 하는 저자 조은하 교수(목원대학교)의 메시지는 이 책의 내용에도 온기가 전해진다.
저자는 이 책에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에서부터 사회의 이웃 이야기, 나아가서 그리스도인이 풀어야 할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질문을 대화처럼 담아냈다.
저자는 책 속에서 “<시편> 82편 6절의 말씀은 독자들에게 깊은 의문을 남긴다. 사람을 가리켜 ‘신들’이라고 부르다니, 이는 단순히 비유적 표현일까, 아니면 인간이 신적 존재로 간주된다는 뜻일까? 이 구절은 특히 기독교의 유일신 신앙과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표현으로 읽는 이들에게 혼란을 준다. 먼저, 여기서 사용된 ‘신들’(elohim)이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성경에서 하나님을 지칭하는 데 쓰인다. 그러나 이 구절에서는 인간에게 ‘신들’이라는 표현이 사용되어, 독자들로 하여금 인간이 신적 권위를 지닌 존재인지에 대한 의문을 품게 만든다. 더 나아가 이러한 표현은 다신교적 사고로 오해될 소지가 있어 유일신 신앙을 가진 기독교인들에게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왜 하나님께서 인간을 가리켜 ‘신들’이라고 부르셨는지, 이 표현이 <시편>의 맥락 속에서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더욱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이사야> 55장 8절은 하나님의 생각과 길이 인간의 생각 및 길과 서로 다르다는 것을 강조한다. 많은 독자가 이 구절을 접할 때 첫째,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이해를 초월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분의 계획을 알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하나님의 뜻을 우리의 이성이나 논리로는 파악하기 어렵다면, 기도나 성경 공부를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이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살아가는 신자들에게 깊은 혼란을 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독교인에게 고난은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운 사역의 수단이 될 수 있다. 우리는 고난을 통해 점진적으로 예수님을 닮아 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고난 속에서 이유를 찾고 싶어 한다. 이유를 알면 고난을 견디기 더 쉬울 것 같고, 이를 합리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에스겔 선지자 당시 사람들은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나, 자식들의 이가 시리다’는 속담을 자주 사용했다.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하던 이들은 자신들이 겪는 고난이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조상들의 죄 때문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하나님이 불공평하다고 원망했다. 이 생각은 십계명의 다음 말씀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출 20:5). 그러나 이 구절의 올바른 의미는 아버지의 죄가 후손에게 전가된다는 뜻이 아니다. 죄의 영향이 후대에 미칠 수 있다는 걸 경고하는 말씀이다”고 했다.
끝으로 저자는 “그렇다면 왜 주인의 자리에 하나님과 재물을 두었을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 돈보다 더 좋아하고 추앙했던 것이 있었을까? 모든 인간은 물질 앞에서 약해지기 마련이다. 예수님 당시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자부하던 바리새인들도 실상은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했다. 그들은 돈을 좋아했고, 자신들이 누리는 풍요로움과 부를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재물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기려고 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이 물질의 부를 하나님의 축복과 연결 짓는다. 이를 ‘기복주의’라고 부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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