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 하나님의 죽으심: 아들의 십자가 죽음 안애서 아버지의 죽음

김영한 박사
김영한 박사

예수의 십자가 죽으심에서 거대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것은 하나님이 죽으신 것이다. 인간 역사(歷史)과정에서 주후 약 33년에 일어난 예루살렘 성문 밖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 처형사건에서 하나님이 죽으시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일어났다. 예수는 구시(九時)경, 말하자면 오후 3시경에 별세하셨다. 누가에 따르면 예수의 마지막 기도는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3:46). 요한에 따르면 예수의 마지막 기도는 “다 이루었다”(Τετέλεσται, tetélestai)(요 19:30b)이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가 죽었다는 것은 성부인 하나님의 죽으심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아들의 죽음 안에서 아버지가 죽으신 것이다. 아들 자신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사도 요한은 그의 복음서와 서신에서 역사적 예수의 영원한 기원과 정체를 우리들에게 증언해준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이 말씀이 하나님이시니라”(요 1: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요일 1:1-2). 복음서 저자 요한은 공관복음 저자들과 달리 성령의 영감 속에서 역사적 예수를 그의 영원하신 원천인 태초(太初)로 거슬러 올라가서 그가 하나님이요 태초의 말씀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공관복음 저자들은 하나님 아들의 죽으심과 관련된 우주적 표징을 기록하고 있다. 마가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제육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더니”(막 15:33).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막 15:38). 마태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제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되더니”(마 27:45). 마태는 예수의 영혼이 떠나시는 순간을 다음같이 묘사한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마 27:51-53). 누가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때가 제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며,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눅 23:44-45).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고 성소의 휘장이 찢어지고, 지진이 일어나 바위가 터지고 무덤이 열리어 죽은 성도들이 일어난 우주적 사건들은 죽으신 이가 천지를 창조하시고 종교를 주관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징표이다.

공관복음 저자들은 한결 같이 예수의 운명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본 이방인인 로마군대의 백부장의 증언을 기록하고 있다: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막 15:39; 마 27:54)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눅 23:47b).

복음서 저자 요한의 기록에 의하면 로마 군병들은 십자가의 다른 죄수 둘의 뼈는 꺾었으나 예수는 이미 죽은 것을 보고 예수의 뼈를 꺾지 않는다: “예수께 이르러서는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요 19:33). 요한은 예수의 뼈가 꺾이지 아니함에 대하여 성경이 이루어졌다고 기록한다: “이 일이 일어난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요 19:36). 예수는 유월절 양이 도살되는 시간에 참된 유월절 양(요 1:29, 36)으로 죽으셨다.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는 유월절 양처럼 뼈가 꺾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예수에게 성경이 유월절 양에 관하여 규정하는 것(출 12:46, 민 9:12, 시 34:20)이 성취되었다.

요한은 당시 관습을 기록하고 있다: “이 날은 준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요 19:31) 준비일이란 유월절 전날을 말한다. 요한에 의하면 안식일은 동시에 유월절 절기일이다(요 18:28; 요 19:14). 로마인들은 십자가에 달린 자들이 죽은 후에도 십자가에 매달아 두었으나, 유대 율법에 의하면 죽은 이들의 시신은 당일에 내려져 치워져야 했다. 그래서 다리뼈를 꺾어 죽음을 앞당기는 것이 처형 집행자의 임무였다. 그래서 쇠몽치로 십자가에 달린 자의 종아리 뼈를 부러뜨리는 일은 당시 흔히 있었다. 그것은 십자가 형을 받은 자의 죽음을 촉진하기 위함이다.

뼈를 꺾지 않는 대신 한 군병이 예수의 오른쪽 옆구리를 창으로 찌른다: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요 19:34). 요한은 예수의 창으로 찔린 심장에서 나오는 물과 피는 그의 죽음이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구원의 선물을 상징한다고 해석한다. 피는 예수 죽음이 가져오는 구원 능력의 상징(요일 1:7)이다. 물은 올리어지신 분이 보내는 성령과 영생의 상징이다(요 7:38-39; 요 4:14). 요한은 그의 서신에서 물과 피를 신령하게 해석한다: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요일 5:6-8). 고대교회에서는 물이 세례로 해석되었고, 피는 성만찬으로 해석되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세 번째 위격이신 성령께서는 신자의 마음 속에 오셔서 구원을 효율적으로 일으키시는 예수의 죄 씻어심과 생명의 증여를 오늘날 지속적으로 수행하신다.

십자가 사건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열정(the pathos of God)을 느낀다. 철학적인 신은 죽지 아니하며, 인간과는 소통 할 수 없는 이신론(理神論, deism)의 신으로 표상되어 왔다. 그리하여 이신론의 하나님은 저 멀리 하늘 저편에만 계시고 인간사에 관여하지 않으므로 인간이 가까이 갈 수 없는 신으로 그려졌다. 그러나 십자가 사건 속에서 하나님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예수의 십자가 안에서 하나님은 더 이상 저 멀리 계신 무감정(apathy)의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이 되신 하나님이시다. 십자가의 사건은 죄인과 연대하시고 함께 느끼시는 하나님의 공감과 연민을 보여준다. 십자가에 나타나신 하나님은 인간의 죄에 대하여 무관하시고 초연(超然)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의 죄에 대하여 증오하시고 대속으로 용서하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요한은 그의 서신에서 “사랑이신 하나님”에 대하여 다음같이 증언하고 있다: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요일 4:8b-9). (계속)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 샬롬나비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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