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게 정말 미안하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
네가 혼자 긴 겨울밤을 그리도 아파하는데
나는 코를 골며 잤나보다

내 살 내 뼈를 나눠준 몸이라 하지만
어떻게 하나 허파에 물이 차 답답하다는데
한 호흡의 입김도 널 위해 나눠줄 수 없으니

네가 울 떄 나는 웃고 있었나보다
아니지 널 위해 함께 눈물 흘려도
저 유리창에 흐르는 빗방울과 무엇이 다르랴
네가 금 간 천장을 보고 있을 때
나는 바깥세상 그 많은 색깔들을 보고 있구나

금을 긋듯이 야위어가는 너의 얼굴
내려가는 체중계의 바늘을 보며
널 위해 한 봉지 약만도 못한 글을 쓴다

힘줄이 없는 시
정맥만 보이는 시를
오늘도 쓴다
차라리 언어가 너의 고통을 멈추는
수면제였으면 좋겠다

민아야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내가 살아서 혼자 밥을 먹고 있는 것이
미안하다 민아야
너무 미안하다.

이어령 시집
이어령 시집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2022, 열림원)에서

이어령 박사(1934-2022. 2.26)는 충남 아산 온양생으로 부여고와 서울대 문리대 국문과를 나왔다. 경기고 교사로 잠시 재직 후 기성 문단에 도전적 논제를 던지며 <우상 파괴 논쟁>, <문학의 사회 참여와 순수 논쟁>, <실존성 논쟁>, <문학의 전통 파괴 논쟁> 등이 모두 그가 이끈 화두였다. 4. 19 혁명 직후 20대 나이로 서울신문, 중앙일보, 조선일보, 경향신문 등 여러 신문의 논설위원을 역임하였으니 문학평론가뿐 아니라 탁월한 칼럼니스트요 에세이스트였다. 필자는 지금도 『흙 속에 저 바람 속에』(1963), 『통금시대의 문학』(1966)만한 탁월한 글을 쓰는 21세기 문필가를 만나보지 못했다. 이 박사는 <문학사상>의 주간이었으며 이화여대 석좌교수, 초대 문화부장관을 지냈다. 하지만 소설가와 시인이요 희곡과 시나리오 작가였다는 점은 대중들에게는 그리 알려져 있지 않다.

이어령 박사
이어령 박사

필자는 30 차례 가까이 이사를 다니며 수많은 책자들을 처분하고 교회 침수시 눈물로 많은 책들을 떠나보냈으나 이어령 박사의 <문학사상>(1972) 초판본과 삼중당문고의 소설 문고판 <將軍의 수염>(1975)과 <바람이 불어오는 곳>(1975) 그리고 <통금시대의 문학>(1966) 등은 버리지를 못하고 있다. 시인들이 미당의 詩를 스터디했듯, 당대 문필가의 표본은 이어령과 최인훈 그리고 김승옥 소설가였기 때문이다.

조덕영 박사
조덕영 박사

그가 따님 이민아 목사(1959-1912)로 인해 인생 후반부 예수를 믿고 『지성에서 영성으로』 를 통해 신앙 고백을 공개한 것은 놀라운 커밍 아웃이었다.

​과거 <문학사상>에 "문학으로서의 다윗의 시편"이 연재된 것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본 "살아 있는 게 정말 미안하다" 詩의 첫 머리에서 이 시인은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다"로 시작한다. 분명 따님 고 이민아 목사의 아픔과 고통을 염두에 두고 쓴 詩다. 문학 전성기 최고 문필가였던 이어령 박사도 신앙과 인간의 근원적 고통 앞에서는 진솔한 파토스의 시편을 그대로 쏟아내고 있을 뿐이다. 밧세바의 일을 제외하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성경 최고의 시인 다윗의 아픔과 고통에 하나님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신학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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