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광주에서 열린 ‘세이브 코리아 비상구국기도회’는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와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민심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적 사건이었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의 중심지인 광주 금남로에 보수 애국 시민 6만여 명이 모였다는 사실만으로 정치적으로 진보 텃밭으로 불리던 광주에 변화의 물결이 일기 시작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보수 기독교단체가 광주에서 이처럼 대규모 집회를 연 건 역사적으로도 처음 있는 일이다. 집회 전부터 강기정 광주시장과 박지원 민주당 의원 등이 ‘세이브 코리아 기도회’를 ‘극우’ ‘내란 선동’ ‘나치’에 빗대며 “오면 맞아 죽을 거다”라는 극단적인 혐오 발언을 쏟아낸 낸 것도 어느 정도는 지역 정서에 기댄 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자기 진영에서 우려했던 현실이 눈앞에 나타날까 봐 두려워 서둘러 차단벽을 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정치적 혐오 발언들이 오히려 지역의 민심을 자극하고 의식을 깨우는 역작용을 일으켰다고 본다. 특히 정치에 무관심하던 젊은이들에게 정치인들이 쏟아내는 혐오 발언들은 자신들이 길들여온 민심이 언제 떠날지 몰라 초조하고 두려운 나머지 마구 쏟아낸 배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여겨 폐기 처분되는 실정이다.
매 주말마다 서울과 22개 도시에서 동시에 개최되는 ‘세이브 코리아 비상구국기도회’는 엄밀히 말해 그리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모임이라 할 수 없다. 10.27 서울 광화문 한국교회 연합예배를 주도했던 부산 세계로교회 손현보 목사 외에는 언론에 자주 얼굴을 보이는 대형교회 목회자 한 사람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 조직력으로 부산과 대구에 이어 진보 텃밭으로 여겨지는 광주 한복판에서 6만여 명이 모이는 대중집회를 열었다는 건 기적에 가깝다.
‘세이브 코리아 비상구국기도회’가 세간에 알려지게 되기까지 한국사 일타 강사 전한길 씨와 그라운드C 김성원 대표 등 대중에게 친숙한 보수 우파 인사들의 공이 지대하다 할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세이브 코리아’가 유명세를 타도록 일조한 것 못지않게 이들이 기도회를 통해 대중과 더 가까이 소통하는 기회를 얻었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엄밀히 말해 ‘세이브 코리아’는 전국, 또는 지역 민심의 불씨를 당긴 것에 불과하다. 이들의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를 위한 절절한 호소가 잠든 의식을 흔들어 깨웠다면 그 안에 내재된 20230 젊은이들과 이대로는 안 되겠다며 노도처럼 일어난 전국 각지의 민심이 연쇄적으로 폭발 작용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민주당 외엔 보수 정당이 뿌리를 못 내릴 정도로 진보 성향 짙은 광주에 이처럼 변화의 바람이 몰아닥친 원인을 꼽으라면 첫째, 5.18 민주화 정신의 근간인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가 자신들의 손으로 뽑은 자들에 의해 유린당하고 있음을 비로소 목도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날 기도회에 붉은색 티셔츠 차림으로 단상에 오른 전한길 강사는 자신이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추모하기 위해 빨간 옷을 입고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특유의 어조로 “호남이든 영남이든 나라의 위기 속에서 하나가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전 씨는 또 “민주화의 성지인 광주에서 탄핵 반대 목소리를 내는 집회를 한다는 것 자체가 ‘5·18 정신’을 계승한다는 의미”라며 “이번 집회는 지역 갈등의 종식을 알리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전 씨의 발언은 그를 ‘극우’ ‘내란 선동 세력’ 심지어 폐기돼야 할 ‘쓰레기’에 비유한 정치인들의 천박하기 짝이 없는 어법을 부끄럽게 만들고도 남음이 있다. “우리 국민은 과거 위기를 겪을 때마다 똘똘 뭉쳐서 극복했다”며 하나로 뭉쳐 이 위기를 극복하자는 말에 어디 극우, 내란 선동의 냄새가 풍기는가.
결국, 누가 봐도 논리 박약을 드러낸 주장을 하는 이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정치적 선동을 통한 편 가르기에 있을 것이다. 눈에 뻔히 보이는 데도 눈을 가리는 악의적이고 자극적인 선동에 2030 젊은이들이 거부감을 드러내는 건 당연한 이치다.
둘째는 귀를 막을수록 더 선명히 들리는 진실의 소리다. 진실은 감춘다고 덮이는 성질이 아니다. 잠깐은 눈과 귀를 가릴 수 있어도 결국은 백일하에 드러나게 돼 있다. 아무리 정치인들이 선동하고 민노총이 꽹과리를 울려대도 그런 소음 따위에 묻힐 진실이 아니다.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세이브 코리아 기도회’가 열린 금남로에 인접한 5.18 민주광장에서 윤 대통령 탄핵 찬성집회가 열렸다. 탄핵 반대 집회를 방해하려는 이들이 급조해 연 집회인 만큼 몇 가지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냈다.
이것이 정말 광주 시민을 위한 집회이고, 민주화운동의 성지라 불리는 5.18 광장에서 할 수 있는 집회인가 의심이 들게 한 건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딥페이크 기법으로 교묘히 합성해 만든 조작 영상을 버젓이 상영한 한 가지만 봐도 알 수 있다. 윤 대통령 부부의 얼굴을 비키니 차림의 선정적인 몸으로 합성한 영상을 5.18광장에서 여과없이 방영한 건 5.18정신에 대한 자해행위다.
정치적 반대자를 향해 자극적인 언사를 동원하는 어느 진영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청소년 성범죄에 이용되는 딥페이크 조작 영상을 현직 대통령 부부를 대상으로 만든 건 범죄이기 전에 생각만 해도 낯 부끄러운 일이다. 아무리 악의적인 비방과 모욕이 일상화됐더라도 대통령 부부를 성적 대상화 삼아 폭력을 가하고 그것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유도했다는 점에서 성도착증 환자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역사가 2025년 2월 15일 한낮에 광주 시내 한복판에서 벌어진 대통령 탄핵 찬반 집회를 어떻게 기록할지는 세월이 좀 지나야 알게 될 것이다. 승리자의 편인 역사는 결과에 따라 평가와 해석을 달리하겠지만 그렇다고 진실 자체가 덮이진 않는다. 하지만 진실을 아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 누가 ‘내란 동조’ 세력이고 누가 ‘쓰레기’인지를 모든 국민이 다 알게 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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