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X. 두 가지 역설: 종교수구(守舊) 세력과 세속(世俗) 권력이 하나님 아들을 처형

우리는 빌라도의 법정에 서신 나사렛 예수의 역사적 사실에서 진리에 저항하는 종교와 정치의 두 가지 역설을 보게 된다. 하나는 제도종교가 종교의 실체인 하나님의 아들을 고발하고 억압하고 없애려한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세상의 권력이 권력의 실체인 우주의 통치자를 심문하고 정죄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제도종교가 종교의 실체를, 세상이 하나님을, 그림자가 실체를, 모조품이 진품을, 비진리가 진리를 심문하고 판결하고 있다는 역설이다. 이 역설은 다음같이 설명될 수 있다.
첫째, 율법 종교가 율법 완성자를 심판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역설이다. 예수는 태초의 말씀이요, 참 빛이시요, 생명이시며, 율법의 완성자이시다. 산상설교에서 예수는 말씀하신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마 5:17). 그런데 유대사회의 제도종교는 이 예수를 증오하고 고발하고 죽이려 하고 있다. 이것은 역설이다. 제도종교는 본래는 율법을 증거하기 위하여 생긴 것이나 제도 안에 정착함에 따라서 그 종교의 본질이 변질된다. 그리하여 제도종교는 율법 정신보다는 율법 제도의 존속을 위하여 존재하고자 한다. 제도종교의 두 유형은 바리새인의 종교와 사두개인의 종교이다. 바리새인의 종교는 율법 종교의 유형이며, 사두개인의 종교는 인본화 된 종교의 유형이다. 둘 다 자기의 존속과 보존을 위하여만 노력하는 수구화 된 종교이다.
둘째, 영원한 통치자로부터 그 권력을 위임받은 세속 권력이 영원한 통치자를 심문하고 판결하고 사형에 처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역설이다. 세속 권력은 진리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단지 자기의 권력을 보존하기 위하여 권력자체에 위해(危害)를 가하는 자를 처단하고 있다. 빌라도는 예수에게 진리에 대하여 물었다. 그러나 빌라도는 종교적으로 진지하지는 못했다. “나는 진리를 증거하기 위하여 왔다”는 예수의 대답에 대하여 빌라도는 진리의 의미에 대하여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빌라도는 예수를 단지 유대 종교와 로마 정치 권력에 저항하는 자로 보고 더 이상 진리에 대한 대화를 추구하지 않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라”는 군중들의 요구에 영합하여 만 것이다.
르네 지라르(René Girard)는 자신의 저서 『폭력과 성스러움』(La violence et le sacré)에서 희생제의적 해석을 인류의 모든 문화적인 면에다 적용시키는데, 종교적인 제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지라르는 희생제의라는 것을 신의 뜻에 따라 희생물을 신에게 바쳐서 신의 은총을 받는 장치로 보지 않는다. 그는 희생제의를 집단 속에 드러나 있지는 않을지라도 분명히 내재하고 있다가 마침내 분출하려 하는 폭력을, 집단 외부의 대상이나 아니면 복수에 휘말릴 염려가 없는 희생물이라는 집단 내부의 특정한 대상에게 분출시킴으로써, 내재되어 있던 갈등과 폭력을 없애고 다시 질서와 평정을 유지해 나갈 수 있도록 해주는 문화적 장치로 해석한다.
지라르의 이런 관점은 기존의 종교 해석과 매우 큰 차이를 보인다. 특히 기독교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해석이 그러하다. 요컨대 예수는 하나님의 뜻에 따른 인간구원의 상징이 아니라 당시 유대인 사회 안에 내연하고 있던 갈등과 반목, 폭력을 해소하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낸 하나의 희생물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이 지라르의 해석이다. 지라르는 이러한 자신의 견해를 '희생 가설'(hypothèse sacrificielle)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런 표현은 "인류 문화제도는 모두 희생제의적이다" 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 역사적 예수의 진리를 추구하는 자는 한편으로는 복음을 제도 종교화하는 위험성 그리고 다른 편으로는 세속적으로 권력화하는 위험성에 직면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로마 천주교, 개신교 교권주의는 자기들 종교권력을 수구화(守舊化)함으로써 참 종교의 걸림돌이다. 그리고 해방신학이나 민중신학이나 자유주의 기독교는 수구화에 반대하면서 초월적 진리를 세속화함으로써 참 종교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러면서 이들은 자기들 집단의 제도와 권리를 보존하고자 수구화(守舊化)에 몰두하고 있다. 세속 권력 역시 내재화된 세계관의 자기충족의 체계 속에서 진정한 초월적 진리의 질문을 차단시킨다. 세속권력은 오늘날 과학기술주의 이데올로기를 동원하여 그것을 신격화하고 진리 자체를 세속화 시킴으로써 참 종교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복음적 진리, 역사적 예수에 대한 진지한 질문은 이 두 가지 걸림돌을 제거하면서 종교의 실체 되시고 참된 진리이신 나사렛 예수 그분의 인격에게로 나아가야 한다. (계속)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 샬롬나비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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