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차례로 읽어 가는 우리가 이 시대의 지성입니다. 가장 교양 있고 세련되고 아름다운 자입니다. 말씀을 차례로 꿰는 사람은 상담도 잘하고 뭐든지 잘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받으려면 성경을 통해 약속의 명령을 잘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들은 후에는 잘 기다려야 합니다. 약속에는 반드시 기다림이 수반됩니다. 혹여 기다림이 길어진대도 하나님은 내 아버지이시기에 반드시 약속을 지키십니다. 육신은 구름이 가리어 보이지 않을 때가 옵니다. 하지만 승천하신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는 육신의 죽음이 곧 끝은 아닙니다. 천국의 지점(支店)에서 살다가 본점(本店)으로 가는 것뿐입니다. 인간의 시간에서 하나님의 시간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음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약속의 말씀을 자신의 소원과 일치시키는 기도가 100% 응답받는 기도입니다.
김양재 – 성령의 선물
“엄마, 나는 엄마가 나를 계속 안아줬으면 좋겠고, 나에게 다 이야기 해줬으면 좋겠고, 사랑한다고도 말해줬으면 좋겠어. 내가 엄마 딸이잖아.” 어느날, 나랑 잠시 말다툼을 한 뒤, 울면서 말하는 딸아이의 저 말이 나를 한없이 작게 만들었다. 엄마로서 가장 기본적인 사랑을 표현하는 것조차 서툰 내게 딸이 가장 기본적인 것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나의 감정, 나의 기분대로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아온 내게, 그게 나를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 착각하는 내게, 14살 딸이 사랑이 무엇인지 글자가 아닌 마음으로 알려주는 것 같았다. 많은 것이 부족하고 모자라지만, 그래도 자식보다 부모의 ‘사랑’은 크고 넓고 깊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닌가보다. 인생 중년을 지나고 있지만 아직까지 사랑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자기중심성이 가득한 사람이라는 것을 또 다시 깨닫는다. 그러면서 동시에 평생 이기적인 딸 때문에 힘들었을 우리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는 딸처럼 내게 사랑을 요구하거나 가르치지 않고 그저 기다리면서 자신의 사랑을 인내했다. 엄마가 살았던 것처럼 말이다.
김희정 – 함께 자라는 우리
해가 짧아지는 시기가 돌아왔어요. 이때쯤의 밤하늘은 무척 아름답지요. 하지만 지금은 그런 감상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에요. 검술 시합 전날이면 엘리압 형은 평소보다 몇 배는 날카로워지거든요. 형의 갑옷을 닦아 놓지 않으면 얼마나 화를 낼지 몰라요. 두 발은 집을 향해 달려가지만 마음은 집에서 달아나고 있어요. 잠시 숨을 고르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어요. “힘들어요, 하나님…….” 그러고 나서 금방 고개를 저었어요. ‘바보 같이……. 나 같은 놈의 말을 들을 리 없잖아.’나는 다시 발 아래에 깔린 거인을 보았어요. ‘하나님이 나를 통해 싸우셨다! 보잘것없는 이 꼬마를 통해서······.’ 나를 붙드신 크고 강한 팔이 느껴지자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어요. “다윗!” 이스라엘 병사 한 무리가 내 이름을 부르며 달려왔어요. 그들은 나를 껴안으며 소리쳤어요. “다윗! 다윗! 다윗!” 내 이름이 엘라 골짜기에 크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어요. 꼬마라고 불리는 데 익숙했기에 내 이름이 어색하게 들렸어요. 눈시울이 다시 붉어졌어요. ‘나의 이름을 찾아 주신 하나님!’
이연경 – 내 이름은 다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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