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김수정 내과 전문의
김수정 내과 전문의

한국의 저출산은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 원인으로는 경제적 문제, 가족 안에서의 성불평등, 양육에 대한 부담 등이 꼽히고 있으며 정부에서는 이에 대한 대책으로 아동수당 및 육아휴직, 일/가정 양립 지원, 청년 지원, 신혼부부 주거 비용 지원 등 다양한 정책을 시도하고 있다. 이는 선진국들의 성공사례를 참고해 꾸준히 시행해 나갈 필요가 있는 정책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경제적 문제만으로는 한국의 급격한 저출산 추이를 온전히 설명할 수는 없어 보인다. 전체적으로 경제적인 수준은 절대적으로 높아졌고 2011년 이후 빈곤율과 분배지표는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며 청년 실업률은 2017년 이후 하락 추세이다. 또한 가부장적인 가족주의와 양성 불평등은 쇠퇴하고 있는 추세이기도 하다. 기존의 원인 분석들과 그에 따른 대책들은 경제, 사회적 원인에 주로 초점을 맞추었으며, 국민 사이에 만연한 의식구조의 변화에 대해서는 저평가한 측면이 있어 보인다.

예를 들어, 저출산 현상의 한 원인으로 1980년대부터 시작된 저출산의 추이를 알아채지 못한 채 1996년에야 산아제한 정책을 뒤늦게 폐기했던 정책 실패도 들 수 있는데,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등의 표어가 국민의 의식구조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가? 이를 반면교사로 삼는다면 현재 우리나라의 저출산 정책에서 국민의 가치관 변화를 이끌기 위해 종전보다 더 집중적이고 지속적인 인식 개선 사업을 병행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 비혼주의, 반출생주의(anti-natalism) 등 가정과 결혼, 출산, 육아, 새 생명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늘어나고 있다. 또한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물질주의자의 비율이 현저히 높은데, 이는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탈물질주의가 증가한다는 일반적인 이론에도 배치되는 이례적인 현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러한 물질주의는 우울, 불안, 낮은 행복감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한 낮은 우호감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도 관련이 있다. 이에 따른 생명존중의식 약화와 돌봄의 인프라 및 가치 의식 부재는 OECD 1위의 높은 자살률과 세계 최저 출산율로 이어지고 있다.

생명을 낳고 기르고 돌보는 데에는 고통과 대가가 따르지만 기쁨과 행복도 있다. 출산에 대해 어떤 면을 주목하고 의미를 부여하는지가 출산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클 수 있다. 예를 들어 여성이 출산에 대해 생산적이고 목적이 있다고 인지하며 주변의 지지적인 돌봄과 관심이
긍정적인 경우 여성이 분만 중 느끼는 주관적 통증의 정도가 줄어들고 자신이 안전하며 통증에 대처할 수 있다고 느끼게 되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새로운 생명을 낳고 키우는 일에 대한 당사자와 주변인의 인식이 환대와 배려인지, 부담감과 배척인지에 따라 출산과 양육에 대한 인식과 생명 탄생의 판도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저출산 문제를 생명윤리 관점에서 다루면서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물질중심주의와 생명경시문화에 따른 모성과 부성, 아동, 나아가 가정과 결혼에 대한 부정적 인
식을 분석하고, 이를 긍정적으로 바꾸기 위한 다양한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II. 본론

1. 저출산 현상에 대한 생명윤리 관점에서의 문제 제기

가. 양성 사이의 균등하지 않은 권리와 책임

저출산 문제에 있어 성불평등의 문제가 자주 거론되고 있다. 저출산이라는 용어가 인구감소 문제를 여성만의 책임으로 인식되게 할 수 있다고 하여 저출생이라는 용어를 쓰자는 주장도 나온다. 저출산 해법이 여성들에게 또 하나의 권리 침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과 함께 재생산권 논의도 활발하다. 특별히 인권 수준이 낮은 국가들에서 일어나고 있는 조혼, 여성 할례, 남아 출산 강요, 강요된 낙태 등은 폐지되어야 할 악습이다. 여성들이 재생산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데에는 여성들이 오랜 세월 동안 권리는 없이 책임만을 강요받아 온 역사적 배경이 있다.

그런데 임신과 출산 문제를 여성의 선택에 대한 문제로만 국한시킬 때, 임신, 출산이 보호되고 촉진되기보다는 오히려 방치되고 억제되는 것은 아닌지도 살펴봐야 할 것이다. 낳을 권리보다는 낳지 않을 권리가 더욱 강조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러한 논의가 과연 여성에게 유리하기만 한 일인지도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 임신에 대해 공동의 책임이 있는 남성의 의무보다 여성의 낳지 않을 권리에만 집중한다면, 여성은 어떤 선택을 하든 홀로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될 수 있다. 따라서 낙태권만 가지고 다투기보다 낙태율이 적은 나라들에서 어떻게 모성을 보호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한부모 가정의 80%가 양육비를 지급받지 못하고 있지만 낙태율이 적은 선진국에서는 아이의 아버지에게 강력한 책임을 부과하여 여성과 아이를 보호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미혼부에게는 거의 책임이 부여되어 있지 않고 대부분의 경우 미혼모 혼자 임신, 출산, 양육의 책임을 짊어지게 되어 낙태와 영아유기의 원인이 되고 있다.

본질적으로 임신과 출산과 양육은 여성 스스로만의 힘으로, 여성 혼자만의 선택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임신이 여성의 몸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해도 임신이라는 사건 자체는 기본적으로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기여로 일어난 일이며 수정란과 배아, 태아는 여성만의 유전자가 아닌 남성의 유전자도 50%를 차지하고 있는 새로운 개체인 생명인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여성과 생명을 보호하기보다는 이미 온 생명을 희생시키는 쉬운 방법을 택해 왔다.

나. 모성과 부성, 아동에 대한 부정적 사회 인식

최근 한국 사회에서 “맘충” 등의 혐오 표현에서 볼 수 있듯 모성에 대한 상당히 부정적인 인식이 생겨났다. 또한 전업주부에 대해 자기 인생을 다 못 산 사람으로서 ‘루저(loser)’ 또는 ‘집에서 노는 사람’, ‘여성의 당연한 역할 또는 기능’으로만 인식하는 현상이 있다. 2019년 국내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업주부의 우울, 불안, 절망감 척도가 기준점 이상으로 나온 경우가 각각 45.2%, 39.6%, 60.9%였고, 이는 상당히 우려할 만한 수준이었다. 또한 “사는 것이 행복하다”는 전업주부의 비율은 2002년 52.5%에서 2012년 44.6%로 떨어졌다.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감사와 존경은 있지만 그녀를 모성 이데올로기에 희생되어 자기 삶을 다 못 산 안타까운
사람으로 인식하며 “나는 엄마같이 살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현상은 여성들에게 만연하다.

이는 여성의 교육 수준의 향상과 그에 따른 사회적 성취에 대한 기대와 좌절, 그리고 여성들의 자기희생 역사와 그에 대한 반동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가족학 분야의 개인주의적 교환이론에 따르면 출산으로 아이를 갖는 것보다 출산을 지연시켜 더 나은 교육을 받고 더 나은 직장생활을 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승인된 행동이며 보상이 크다면 여성은 무자녀 가족이나 한 자녀 가족을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현재 저출산 문제의 최대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MZ세대의 경우, 어릴 때부터 여성과 남성이 똑같이 교육받고 사회에 나오게 된다. 그러나 임신, 육아라는 지점을 기준으로 여성과 남성이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는 것을 선배들을 통해 그들은 보아 왔다. 남성은 임신, 육아에 매이지 않고 자신의 커리어에 더 몰입, 집중할 수 있기에 자기 분야에서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 있지만, 여성은 임신, 육아에 매이게 되어 경력 단절을 겪거나 절충적 성취에 만족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과 가정의 양립이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로 임신, 출산을 포기하는 MZ 세대의 마음을 돌리는 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며 이에 대해서는 차후 대안에서 언급할 예정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모든 문제의 답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모성에 대한 평가 절하는 모성에 대한 의미를 상실한 것과도 관련이 깊다고 본다.

개인의 행복과 삶의 의미는 사회적 성취에만 달려있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면에서 여성의 임신과 출산을 단지 ‘희생’이라고만 설명하는 것은 여러 측면 중 한 측면만을 보는 단편적인 시각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여성들의 구술생애사를 들어보면 모성은 여성들의 성장 과정의 자원으로 활용되며, 타인에 대한 이해력과 포용감, 삶에 대한 책임감, 생명의 고귀함 등의 가치를 발견하는 기회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23) 고유한 인격을 가진 한 생명의 탄생과 성장을 함께 하는 경험은 자기희생, 자아실현의 이분법을 넘어서, 자아 확장의 길을 열어 준다.

인격주의 의학을 주창한 폴 투르니에(Paul Tournier)에 따르면 여성에게는 두 가지 자연스러운 욕망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결혼해서 엄마가 되어 자기의 조그마한 세계를 만들고 자식을 사랑하고 양육하고 돌보는 것을 좋아하면서, 다른 하나는 그 작은 울타리를 벗어나 넓은 세계를 향해 문을 열고 그 세계 속에 동참하고 싶은 욕망이다. 그런데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후자만 이 강조, 미화되고 전자는 무시되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사회에서의 성공, 경력만이 여성의 가치를 향상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오히려 기존의 남성들이 가졌던 편견에 영향을 받은 것일 수 있다. 경쟁사회에서 이겨야만 한다는 프레임에 남성들뿐만 아니라 여성들까지 가두고 있는 것이다. (계속)

김수정(내과 전문의, 성누가병원 내과 원장)
 *출처: 생명, 윤리와 정책 제8권 제1호. 1-34 ©(재) 국가생명윤리정책원. 2024년 4월.
투고일 2024년 2월 24일, 심사일 2024년 4월 9일, 게재확정일 2024년 4월 16일 http://doi.org/10.23183/konibp.2024.8.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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