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트모세와 아멘호테프, 별개의 개개인 아닌 처음엔 공동 섭정,
그다음에는 황제로 다스린 같은 왕으로 결론지어

이집트 제18왕조, 삼각주에서 추방된 힉소스에서 배운 혁신으로
기술 끌어 올리고 이스라엘 노동력으로 강국 이뤄

이집트 연대기에 관한 대부분의 고고학자의 주장은 이집트 최초의 왕조는 BC 3100년경에 시작한 것으로 계산하고 있다. 전통적인 연대기에서는 신왕국 18대 왕조의 통치를 BC 1550년부터 BC 1320년까지로 보고 있다. 이 글의 원자료를 제공한 론 와이엇(Ron Wyatt)은 제18왕조가 출애굽 시대라는 자신의 이론을 말했고, 이 글의 저자 메리 N. 와이엇이 정리한 시간대별 그 시기는 출애굽 사건과 일치한다.

최근 이집트, 튀르키예,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론과 이 책의 저자 메리가 발굴하고 정리한 자료들은 이제 신뢰할 만한 출애굽 시대의 연대기, 진정한 홍해 횡단 장소, 진정한 시내산, 진정한 노아의 방주로 많은 사람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거기에 더해서 이 책은 우리의 흥미를 끄는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 힉소스(헷 족속), 모세를 나일강에서 구출한 공주(네페루레)와 모세의 왕궁 생활에 관해 우리의 궁금증을 풀어준다.

이에 기독일보에서는 아마존에서 영어권 크리스천 독자들에게 호평받는 출애굽 진실에 관한 저자의 30여 년간의 끈질긴 탐구 결과물, 영어 원서 『Battle for the Firstborn』, 번역본 『이스라엘의 출애굽과 투탕카멘의 죽음』을 새해를 맞아 주제별로 발췌해 소개하고 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기대한다. <편집자 주>

◇이집트 제18왕조 파라오와 모세의 연대표

론 와이엇(Ron Wyatt)은 나에게 모든 것을 바꾼 한 가지를 말했다. 그는 다른 파라오 중 일부는 실제로 다른 능력을 갖춘 같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대 이집트의 왕 목록을 연구하면서 그들의 이름이 비슷한 이름으로 번갈아 가며 나타나는 사실에 놀랐다. 그는 제18왕조에서 투트모세와 아멘호테프가 별개의 개인이 아니라 처음에는 공동 섭정으로, 그다음에는 황제로 다스린 같은 왕이라고 결론지었다.

나는 제18왕조의 각 주제와 양상에 대한 가장 초기의 기록을 찾아보았다. 고맙게도 나는 발굴 당시의 모든 발견을 기록한 많은 초기 고고학 저널에 접근할 수 있는 대학과 도서관 근처에 살고 있었다. 나는 내가 찾고 있는 정보를 찾을 수 없을 때, 정보를 요청하는 편지를 여러 고고학자에게 보냈다. 이것은 인터넷에서 많은 정보를 사용할 수 있기 훨씬 이전이었다. 나는 왕조의 모든 다른 사람들에 대한 기념물, 조각상, 사원, 기초 퇴적물 및 묘지 비문에서 주어진 모든 날짜를 사용하여 연대순 연대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적절한 아멘호테프로 특정 투트모세의 행적을 조정하면서 나는 이 이론이 가능한 것임을 확인하는 중복 행적을 찾았다.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모든 자료를 읽고 탐독하면서 과학적 고고학 분석 초기 단계에서 역사적 관점의 새로운 그림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더 최근의 발굴에서 새로운 정보가 나왔기 때문에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원래의 믿음은 계속해서 받아들여졌다. 사용할 수 있는 자료의 양이 압도적이지만 역사가와 이집트 전문 학자는 전체 구조에 동의하지 않았다. 왕조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었는지에 대한 풍부한 믿음을 조장하는 뛰어난 연구자들에 의해 논문이 작성되었지만, 그 중 어느 것도 완전한 연대기를 제공하지 않는다. 다양한 문제를 설명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진술이 끊임없이 발견된다.

서로 다른 사람들의 알려진 날짜를 함께 맞추면서 일반적으로 제시되고 받아들여지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구성을 발견했다. 이 한 가지 수정으로 발굴한 증거가 출애굽기 모델에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모든 고대 고고학적 결론은, 신뢰할 수 있는 달력이 없을 때 상황에 따라 결정되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그러한 달력이 없었고 그들의 기념물, 묘지벽, 파피루스에 있는 모든 것은 통치하는 군주의 해로 날짜가 지정되었다.

자료와 이론을 분리하는 것은 어려웠다. 때때로 특정 파라오의 사망 날짜가 알려지지 않은 경우 일반적인 관행은 그의 죽음을 그의 마지막 날짜 기념물 근처에 두는 것 같다. 일부 파라오가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것보다 더 오래 살았다는 증거가 있다고 믿는 경우가 있다.

이집트 제18왕조 얼굴 비교

◇출애굽 이전 사건의 중요성

출애굽 이야기가 일어나기 전에 논리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사건을 찾는 것이 중요했다. 첫 번째 중요한 점은 이 왕조가 시작될 때 나일강 삼각주 지역에서 힉소스가 추방된 일이 이스라엘 자손이 이미 고센 땅에서 살도록 허락된 곳과 매우 가까운 곳에서 발생했다는 점이다.

제18왕조는 막대한 양의 기념물, 복합 건물, 장례 사원, 조각상, 최고의 부유함과 조직력을 갖춘 세계 강국이 되었음을 증명하는 증거물을 남겼다. 어떻게 이렇게 짧은 시간에 가능했을까? 힉소스에서 배운 혁신은 그들의 기술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 올렸다. 그들은 이제 전에는 가지지 못한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그들은 강력한 전쟁 무기 전차와 같은 최신 기술 발전을 군대에 제공할 수 있었다. 그들은 모든 종류의 재능 있는 많은 예술가를 포함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노예 노동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 왕조의 예술성이 모든 종류의 절묘한 조각상과 예술 작품으로 분출함에 따라 그들은 진흙 벽돌을 만드는 것 이상의 일을 확실히 했다.

◇파라오의 대체 이름

제18왕조에는 아멘호테프와 투트모세라는 이름을 가진 일련의 왕들이 있었고, 각각은 언급되고 있는 것을 구별하기 위해 숫자를 부여했다. 혼란을 줄이기 위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이름만 사용하도록 한다. 또한 이름 뒤의 숫자는 실제 이름의 일부가 아니다. 각 특정 왕을 쉽게 참조할 수 있도록 고고학자들이 사용하는 명칭이다.

이 시점에서 논의해야 할 매우 중요한 점이 있다. 첫 번째 공동 섭정이었던 파라오와 황제 파라오 사이에서 아멘호테프와 투트모세의 이름이 번갈아 나타난다.

힉소스를 정복하고 추방하기 전에 테베 파라오에는 공동 섭정이 없었다. 황제는 테베에서 홀로 통치했다. 제18왕조의 파라오인 아모스에 의해 국가가 통일된 후 북쪽을 통치할 공동 섭정이 필요하게 되었다.

아모스는 그의 아들을 초대 공동 섭정으로 임명했을 때 아문(Amun)을 기리기 위해 그의 아들에게 ‘아멘호테프’라는 왕실 이름을 부여했다. 테베의 최고 신인 아문 스스로 창조한 모든 신들의 왕으로 여겨졌다. 아모스가 그를 공동 섭정으로 임명했을 때 왜 이 신이 그의 아들 이름으로 선택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들의 이름은 신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 이상이었다. 그들은 그 신의 지상 화신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아멘호테프 I 세는 그의 아버지 아모스가 죽은 후 테베에서 고위 파라오가 되었을 때 황제라는 지위에 대한 새로운 이름이 필요했다. 그는 토스 신을 기리기 위해 투트모세 I 세를 선택했다. 토스(Toth)는 오늘날 멤피스의 일부인 ‘온(On)’의 성경 도시인 헤르모폴리스의 주요 신이었다.

그는 멤피스에서 통치하는 동안 토스의 지지자가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토스는 문자와 언어의 발명가, 과학, 마법, 예술, 철학의 창조자, 재판 문건의 기록자로 알려진 지식의 신이었다. 그는 중재 능력과 정의로움으로 유명했다. 달의 신으로도 알려진 그는 천문학과 시간과 계절의 규정에 대한 모든 지식의 원천이었다.

아멘호테프 Ⅰ 세가 황제 파라오 투트모세 Ⅰ 세가 되어 테베로 이주했을 때, 그는 멤피스에서 다스릴 공동 섭정을 임명해야 했다. 그는 토스 신에게 경의를 표하는 공동 섭정의 이름을 선택했고, 아멘호테프 이름은 테베의 선임 파라오에게 남겨 두었다. 이것은 투트모세 Ⅰ 세 이후 파라오를 따르는 사람들이 멤피스에서 공동 섭정으로 ‘투트모세’라는 이름을, 테베에서 통치하는 황제 파라오로 ‘아멘호테프’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파라오는 그가 통치하는 도시의 중요한 신의 화신이었다.

이집트 제18왕조의 파라오와 모세의 연대표

◇이집트 18왕조 파라오와 모세의 연대표 작성

제18왕조 연대표(이집트)를 완성하는 데에는 몇 년이 걸렸다. 가장 큰 이유는 고대 기록에 나타난 순수한 자료를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기존 자료의 거의 모든 것이 원본 자료를 제공하지 않았고, 사실로 제시되는 이론의 맥락에서 제시되었다. 나는 결론 없이 자료만 원했다.

각 파라오의 다양한 업적과 날짜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면서 서로 겹치기 시작했다. 왕 ‘X’가 왕 ‘Y’라면 문제가 없고, 정보가 두 왕 사이의 상관관계를 제공할 수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여기서 볼 수 있는 연대표에서 공동 섭정 및 수석 파라오와 동일한 인물인 각 파라오는 동일한 색상으로 표시했다.

나는 또한 저명한 역사학자 마네토(Manetho)와 다른 고대 저술가들의 목록을 신뢰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들은 이집트 역사를 통해 내려온 모든 왕을 선형 패턴으로 차례로 나열했다. 그러나 많은 왕이 서로 동시대를 다스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대 이집트 초창기에는 국토가 광대하여 서로 다른 지역에서 서로 다른 통치자가 등장할 수 있었다. 그들은 다른 지역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내분의 증거 없이 그들 자신의 인접 지역을 다스릴 것이다.

이 글에서는 각 파라오의 주요 사실만 제시하고 관련 쟁점을 보여주고자 한다. 여러 파라오가 실제로 같은 사람임을 확인하기 위해 구성한 차트는 이 책에서 제시하기에는 너무 복잡하다. 일련의 사건을 단순화하는 정보만 사용하려고 했다.

주요 쟁점은 파라오의 이름이 아닌 정규 연도만 제공하는 날짜가 지정된 여러 기념물이었다. 그것들은 다음 글에서 논의될 것이다.

◇모세의 생애 연대표

출애굽에 관한 성경 이야기는 모세의 생애 80년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 처음 40년은 이집트에서 모세의 생애에 관한 것이다.

· 다음 40년은 그가 미디안에 있는 동안 이집트에서 일어난 사건들에 관한 것이다.

· 제80년에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애굽으로 돌아가 파라오에게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 3일 동안 광야로 가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들은 이집트로 다시 돌아가기로 되어 있었다.

· 마침내 바로가 그들을 놓아주니 그들은 사흘이 지나도 돌아오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신 산 곧 미디안 시내 산으로 향해갔다.

이 연대표는 모세의 출생으로 시작하여 출애굽이 일어나는 모세의 80년에 끝나는 80년 기간을 포함한다. 그것은 모세가 태어나기 몇 년 전에 시작하여 출애굽으로 끝이 난다.

◇출애굽 이후의 사건

출애굽 이후 이집트에서 발생한 사건은 역사적 기록이 부족하여 연대표에서 정확하게 날짜를 지정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고 일반적인 시간 범위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많은 증거가 있다. 이 글은 완벽하고 정확한 연대를 측정할 수는 없지만, 출애굽 이후부터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갈 때까지의 사건을 계속해서 기록하고자 한다.

◇연대기적 타임라인을 읽는 방법

· 도표는 보라색의 왼쪽 열에 있는 모세의 나이로 시작한다.

· 기념물, 비문 및 기타 항목에 대한 고대 이집트의 모든 날짜는 파라오의 통치 연도로 표시된다.

· 각 파라오는 그의 통치 연도와 함께 열에 표시했다.

· 동일한 색상의 열에 나란히 표시된 두 개의 이름을 가진 동일한 사람인 파라오.

· 예를 들어 아멘호테프 I 세와 투트모세 I 세는 같은 사람이므로 같은 색으로 나란히 배치했다. 이 사람은 두 개의 서로 다른 통치 연도 목록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그가 공동 섭정이었을 때의 아멘호테프 I 세로, 다른 하나는 그가 황제 파라오였을 때 그의 이름으로 투트모세 I 세로 되어 있다. 아멘호테프 I 세의 ‘13년’에 날짜가 지정된 것은 투트모세 I 세의 통치에서 ‘1년’과 동일하다. 이 개념을 염두에 두는 것이 중요하다. 대부분의 파라오는 재위 기간에 관한 두 개의 별도 목록을 가지고 있다.

· 핫셉수트의 연도는 그녀의 아버지가 왕실 상속인으로 지정했기 때문에 포함된다. 그러나 이해하게 되겠지만 그녀는 파라오가 아니라 미래의 왕위 계승자를 위한 섭정일 뿐이었다.

리진만 선교사

※이 글은 『이스라엘의 출애굽과 투탕카멘의 죽음』에서 발췌해 소개합니다.

글: 메리 넬 와이엇(Mary Nell Wyatt) 번역: 리진만 선교사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집트제18왕조 #출애굽 #리진만선교사 #론와이엇 #메리와이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