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미션대학교 윤임상 교수
월드미션대학교 윤임상 교수

교회사를 보면 크리스천 커뮤니티 안에서 그 시대를 특징 짖는 중요한 이슈들이 있었습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기 기독교 교회는 예수님이 승천하신 이후 다시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고대가 가장 컸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사도행전 2장 43-47절을 보면 가지고 있는 것들을 서로 통용하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서로 모이기를 힘써 찬양하고 기도하며 복음으로 인한 산 소망을 삶에서 실천했던 순수한 크리스천들의 모습을 엿보게 됩니다.

16세기 종교개혁으로 인해 소위 서방교회에서 프로테스탄로 나누어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표면화되었던 중요 이슈는 10세기부터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던 서방 교회의 문제들로 볼 수 있습니다. 즉 교회의 부패, 제도 중심주의, 교회의 정치적 개입, 그리고 예배가 신비주의적으로 변형되어 가는 현상이었습니다. 이것을 초기 기독교의 모습으로 되돌리려는 몸부림으로 인한 개혁의 발돋움이었습니다. 개혁 이후 종교개혁가들(루터, 칼뱅, 츠빙글리) 사이에서도 성례식과, 유아세례에 대한 이슈 등 여러 교리적인 일들로 서로의 입장을 달리하며 교단별로 분열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현상을 비추어 보며 오늘날 우리가 사는 미국교회의 교단들에서 나타나고 있는 하나의 극심한 분열 현상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성(Gender)에 대한 이슈로 인한 혼란함입니다. 이에 따라 같은 교단 안에서 교회가 갈라지고, 같은 교회 안에 있는 교인들까지도 서로 서원해 저 가는 모습을 우리 주위에서도 너무나 심심치 않게 보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참 혼돈의 극치를 사회에 뿜어내고 있는 오늘날 교회를 보며 많은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합니다.

저명한 심리학자 레리 크렙(Larry Crabb, 1944-2021) 이생을 마무리하며 유작으로 남긴 그의 책 "천국을 향한 기다림" 서문을 보면 "현 복음주의 문화에서 '기독교'로 통하는 것들 가운데는 성경과 사뭇 다르게 변형된 모습으로 우리 곁에 남아있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 이제 사람들은 ' 예수를 따른다 '라는 말의 의미를 왜곡하여 그릇된 암시를 주는 그럴듯한 가르침에 더 깊이 빠져들고 있다. 얼핏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런 가르침은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모래 늪과 같다. " 라며 현 기독교 교회를 비판하며 그 책을 쓰게 된 동기를 이야기합니다.

오늘날 교회는 하나님을 이용하여 현재의 삶을 용이하게 하고 윤택한 삶을 더 영위하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추느라, 정작 예수께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하러 다시 오시기를 기대하는 열정은 다 잃어버려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모든 일은 오늘날 사회가 너무 부요함 그리고 편안함으로 인한 풍요의 극치가 뿜어내는 부산물들이 아닐까 합니다.

역사적인 사건을 다시 되돌려 미국의 교회사를 보면 2차 대각성 부흥 운동(1790-1850 년경) 이 지나고 3차 대각성 부흥 운동의 시기인 1860- 1900년 사이 미국 교회는 영적 성장에 있어 모든 면이 풍요로운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사회는 1860년 남북 전쟁으로 인해 이념과 서로 갈라져 피폐한 정신, 이어지는 1873년 경제 대공황으로 국민들은 경제적으로 큰 고통을 겪게 된 시기였습니다. 이때 미국 역사를 통틀어 지금까지 기독교 인구가 가장 많았던 시기였습니다. 전체 인구의 80%를 웃도는 가히 폭발적인 기독교 인구를 소유한 기독교 국가였습니다.

이때 교회에서 갖는 신앙의 핵심 사상은 복음으로 인한 천국의 소망이 핵심을 이룬 때 였습니다. 복음으로 인한 결과가 한쪽으로 조금 치우치는 면이 있을 수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당시 기독교인들은 초기 기독교 교인들처럼 복음으로 인한 소망을 깊이 품고 살았던 순수한 신앙인들이 참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당시 미국과 영국에 오가며 복음 전도자로 100만여 명의 신도들을 회심케 하며 가장 많은 활동을 펼쳤던 디엘 무디 (Dwight Lyman Moody, 1837-1899) 전도자가 전했던 말씀과 또 당시에 만들어 불렸던 미국의 복음 찬송들에서 역력히 보게 됩니다.

한국 교회 성가 중 명곡 중의 하나인 '주의 동산으로(The Lord's Garden)" 를 작사, 작곡했던 윌리암 톰슨(William Lamartine Thompson, 1847-1909)의 찬양들에서 확연히 보여줍니다.

한편 그가 만든 찬송가 중 우리가 즐겨 부르는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softly and tenderly Jesus is calling)"를 보면 더 깊이 이해가 됩니다. 1899년 무디 전도자가 거의 죽음에 가까이 이르자 많은 성도가 찾아갔다고 합니다. 하지만 주로 친절하게 그들의 문상을 거절했는데 톰슨이 찾아왔다고 하니 그를 보기를 원해 함께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때 무디 전도자는 톰슨의 음악을 크게 존경했으며 미국과 영국에서 열린 그의 여러 전도 집회에서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를 많이 찬양했다고 회상 합니다. 이어 그는톰슨, 평생 할 수 있는 어떤 것보다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를 가슴에 깊이 새기라"며 톰슨을 격려했다고 합니다. 무디 선생님은 그 찬송의 가사를 부르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에서의 이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주의 동산으로" 찬양은 찬송가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와 비슷한 가시와 음악 형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음악 구성이나 화성 진행은 아주 간단합니다. 이 곡이 쓰인 1800년대 말은 미국 교회사에 큰 획을 그은 가스펠송 복음 성가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널리 불리던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명성가 "주의 동산"을 통해 우리는 복음으로 인한 천국의 소망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깊이 고민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이 세상을 살면서 복음을 드러내는 일 즉 내가 아닌 그리스도의 사랑을 드러내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더 깊이 생각하며 그 안에서 한 부분인 천국의 소망을 찬양하고 싶습니다. 복음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내가 나의 의를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사랑함이 아닌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나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이루기 위해 오늘도 또 고백합니다.

"하나님 내가 아닙니다.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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