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 원장
경산 늘푸른요양병원 원장 이창호 장로. ©최승연 기자

경상북도 중남부에 위치한 경산 늘푸른요양병원은 알츠하이머, 파킨슨병, 중풍후유증 등 노인질환에 특화된 치료를 제공하는 병원이다. 늘푸른요양병원의 원장인 이창호 장로는 이 병원의 원장직 뿐만 아니라 WEC, 국제선교회 대구지부 이사장, 세계성시화운동본부 상임회장, 대구성시화운동본부 이사 등 의사로서 복음전파에 이바지하고 있다.

이 장로를 만나 사명을 갖게 된 계기, 기억에 남는 환우, 개인 간증, 대구성시화운동본부 등에 대해 들어볼 수 있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현재 대구 서부교회 시무장로로 섬기고 있다. 어린 시절 서부교회 유치부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의료사역을 하시게 된 계기는?

“저는 어릴 때부터 의사가 되기 위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제 고향이 부산인데 당시 6.25 전쟁이 끝난 직후 영국 선교사님들이 운영하는 병원에 가면 병이 잘 낫는다는 이야기를 어머니에게서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의사가 되어야겠다는 꿈을 가졌다. 초등학생 시절 친구들과 병원 놀이를 하면서 더욱이 의사의 꿈을 확신하게 되었다.”

-늘푸른요양병원에 대해 소개 부탁드린다.

“늘푸른요양병원 원장이 되기 이전 1986년 대구 동구 신암동에서 ‘대구 정형외과’를 개업하면서 의사로서의 첫 걸음을 나아갔다. 그러다가 2008년 대구의료원이 요양병원을 운영한다고 해서 저에게 러브콜을 보내 13년 동안 대구의료원 요양병원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제 나이가 70세가 되어서 대구의료원일을 그만두고 경산으로 오게되었다.

늘푸른요양병원은 작년에 원장으로 부임했으며 이곳은 알츠하이머, 파킨슨병, 중풍후유증 등 노인이 가지는 흔한 질환들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병원이다.”

-삶에서 하나님을 직·간접적으로 만난 경험이 있다면 간증 부탁드린다.

“저는 모태 신앙 집안에서 자라면서 서부교회에서 유치부부터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초·중·고등부를 거치면서 교회를 꾸준히 다녔지만, 세례를 받지 않았다. 그러다가 대학교 1학년 때 회심을 하면서 세례를 받았고 하나님 앞에 정결하게 해서 나아가야겠다고 다짐을 하게 되었다. 의과대학을 다니는 6년 동안 당시 서부교회 담임 목사님이셨던 김덕신 목사님께서 해주신 설교를 통해 많은 은혜를 받았다.
받은 은혜를 통해 대학부 회장을 맡았으며 목사님께서 설교 준비하시는 것을 돕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섬김의 기쁨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을 간접적으로 만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여러 환우를 돌보셨을 텐데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환우는?

“저는 환자들을 돌보면서 이 환자, 저 환자를 치료하다 보면 교과서대로 미리 했는데도 불구하고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가 있었다. 그렇게 되면 의사로서 머리 아프고 복잡한 생각이 들게 만든다. 그런 환자들을 위해서 하나님에게 기도를 드리며 특히 암 환자 같은 경우 로마서 8장 11절 말씀을 가지고 기도를 드린다. 그렇게 기도를 해서 응답을 받은 환자가 약 30명 정도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는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레지던트 수련 시간에 주치의를 맡았는데 당시 골육종을 앓는 당시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이었다. 1970년대 골육종이라는 병은 당시 희귀병이었기에 마땅한 치료 방안이 없어 대퇴부에서 무조건 절단해야 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그 여학생에 대한 골육종 절단 수술 결정이 났는데 여학생의 아버지께서 술을 드시고 와서 저와 1대 1 면담을 했다.

아버님께서는 딸의 수술을 못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그 이유는 여학생의 아버지는 딸이 두 명 있었는데 6.25 전쟁 당시 첫째 딸이 희생되었고 전쟁 이후 둘째 딸을 낳으면서 애착이 강했으며 골육종에 걸려 절단을 해야 한다고 들으니 차마 동의하지 못하셨다. 그래서 그 여학생은 퇴원했으며 1년 반 뒤 골육종에 대한 논문을 쓰기 위해 그동안 돌본 환자 100명의 샘플을 찾기 위해 직접 환자들에게 방문하다가 그때 그 여학생 집에 연락드렸다. 여학생 아버지에게 전화를 드리니 결국 그 여학생은 세상을 떠났다고 듣게 되었다. 그 소식을 듣자 굉장히 마음이 아팠다.”

-세계성시화운동본부의 연혁 및 활동에 관해 소개 부탁드린다.

“세계성시화운동본부는 한국 CCC 설립자 겸 총재인 김준곤 목사님께서 기획하셨으며, 1970년 12월 31일 밤 0시 기독교 방송 CBS를 통해 민족 복음화 운동을 선언한 것이 시발점이 되었다. 김 목사님께선 ‘민족의 가슴마다 피 묻은 그리스도를 심어 이 땅에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자’라고 방송하시면서 민족 복음화에 대한 열망과 정신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이후 1972년 7월 31일부터 8월 4일까지 강원도 춘천시에서 CCC 대학생들과 춘천 지역 교회 공동으로 춘천 성시화운동대회를 개최했다. 당시 제1호 결심자가 춘천 시장님이셨다.

1972년 춘천에서 성시화운동이 시작된 다음 인천, 부산, 서울 등 각 도시마다 성시화운동을 개최했다. 그러다가 1999년 대구에서 성시화운동이 시작되면서 ‘대구 성시화운동본부가’가 생겼고 이듬해인 2000년에는 ‘홀리클럽’이 창설됐다. 성시화 본부는 교회에서 목회하는 목사님 중심이며, 홀리클럽은 평신도 중심이다. 이 두 기관이 독수리의 두 날개처럼 연합해서 대구를 하나님의 기뻐하는 거룩한 도시로 만들고자 하는 비전을 가지고 나아가게 되었다.”

-토요일마다 성경 공부를 하고 계시는데?

“매주 토요일마다 성경 공부를 하는 것은 대구 성시화운동의 일환이며 홀리클럽 멤버들이 모여서 하고 있다. 홀리클럽은 옛날 영국에서 시작되었으며 유명한 신학자인 존 웨슬리의 주도로 시작되었다. 영국의 홀리클럽은 매주 한 번씩 모여서 성경 공부를 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우리도 그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어 2004년부터 이 모임을 하기 시작했다.

2004년부터 지금까지 햇수로 19년이 되어가고 있다. 제일 처음에는 로마서를 공부했으며 이후 요한복음, 마태복음, 고린도전서, 창세기, 출애굽기, 아모스서, 히브리서 순으로 공부하게 되었다. 현재 토요 성경 공부는 영남 신학교 총장님이신 권용근 목사님과 함께하고 있으며 작년에는 요한계시록을 공부하면서 많은 은혜를 받았다. ”

-앞으로의 비전은 무엇인지?

“현재 제 나이가 70세인데 여기서 멈추지 않고 체력이 받쳐주는 한 제 욕심은 85세까지 환자들을 열심히 돌보며 성실하게 운동하고 토요 성경 공부 모임 등 이런 활동 등을 꾸준히 하는 것이 목표다. 아울러 저와 같은 목표와 방향을 가진 분들과 함께 하나님 나라 확장에 앞서 나가길 소망하고 있다.”

-끝으로 더 하실 말씀이 있다면?

“토요 성경 공부에 참여하는 모든 분이 각자의 분야에서 하나님 나라 확장의 한 모퉁이를 잘 감당하는 것이 제 마지막 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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