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한 이란인들, 주한 이란 대사관 인근서 민주화 시위 진행
2009년부터 시위, 최근 4개월간 13차례 집중적으로 열어
2월 11일 44주년 ‘이슬람혁명기념일’에는 전 세계서 집회

재한 이란인 민주화 시위
지난 5일 오후 주한 이란이슬람공화국대사관 인근에서 재한 이란인들이 모여 민주화 시위를 하고 있다. ©이지희 기자

“독재자에게 죽음을! 이슬람공화국이 무너지기를! 여성, 삶, 자유!”

5일 오후 3시 30분경 서울 용산 동빙고동 주한 이란이슬람공화국대사관에서 130여m 떨어진 도로에서 재한 이란인 20여 명이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이들은 ‘이란정권교체’라는 글씨가 큼지막하게 적힌 현수막과 ‘44년간 자행했던 독재행위 중단하라!’, ‘이란 정부는 시위대 사형 집행을 중단해야 한다’, ‘이란 이슬람공화국은 이란 국민들을 대표하지 않는다’, ‘이란 혁명의 목소리가 된 래퍼가 공개 교수형에 처해질 수 있다’ 등이 적힌 피켓과 이란 국기 등을 들고 30여 분간 구호를 연호했다.

곧이어 이란 정부를 비판하는 음악을 만들어 SNS에 올린 이유로 사형에 직면한 유명 이란인 래퍼 토마즈 살레히의 랩이 스피커로 울려 퍼지는 가운데, 이란인들은 준비해 온 소품으로 이란 정부의 시위대 참석자 공개 교수형을 비판하는 교수형 집행 퍼포먼스를 했다.

이란의 민주화를 요구하며 인권을 억압하는 이슬람 공화국의 종식을 촉구하는 전 세계 이란인들의 목소리가 뜨겁다. 작년 9월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이유로 도덕경찰에 체포된 20대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의문사하자 이란 내에서는 5개월째 격렬한 반정부 시위가 이어졌다. 이란 당국도 즉각 강경 진압으로 대응하면서 지금까지 최소 500여 명이 사망하고, 2만여 명이 체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이란 반정부 민주화 시위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고 이란을 넘어 세계 각국으로 확산됐다. 특별히 오는 2월 11일은 1979년 2,500년 이란 왕정이 무너지고 이란 최초의 공화정이 들어선 지 44주년을 맞는 이슬람혁명기념일로, 전 세계에서 반정부 민주화 시위가 일제히 열릴 예정이다.

◇“이란, 현 이슬람 공화국에서 벗어나 민주사회로 변화돼야”

재한 이란인 민주화 시위
일명 ‘히잡 반대 시위’로 촉발된 이란 민주화 시위는 5개월째 이란 국내외에서 이어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작년 9월 이후 13차례 집중적으로 개최됐다. ©이지희 기자

이날 시위에 참석한 재한 이란인들은 이란에서 표현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 등 인권을 억압하는 현 이란 이슬람 공화국을 강력 규탄하고, 이란의 자유민주주의 회복과 이란 국민의 생명과 인권 보장을 촉구했다. 이란 정부의 억압 정책에 반대하는 재한 이란인들의 시위는 이미 2009년부터 꾸준히 열렸으며, 지난 9월 마흐사 아미니 사건 이후에는 이날까지 총 13차례 집중적으로 개최됐다.

난민 비자를 받아 한국에서 9년째 거주 중인 전기 기술자 메흐다드 씨는 “이란에 정의가 없기 때문에 이 시위에 참여했다”며 “(시위에 참여함으로써) 이란 내부에 있는 사람들을 돕고, 이란 내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혁명의 물결을 모든 세계에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현재 평택시 송탄동의 미국인교회에 출석하고 있다고 말한 그는 “전에도 여러 번 반정부 민주화 시위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정부가 공권력으로 강압적으로 눌러 시위를 멈추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온 국민이 한마음이 돼 일어났다”면서 “특히 정부의 강요에 의해 종교가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종교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알라 외에 다른 신을 섬기면 감옥에 들어가거나 핍박을 받게 되는데, 이란이 다시 강압적인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재한 이란인 민주화 시위
지난 5일 오후 주한 이란이슬람공화국대사관 인근에서 재한 이란인들이 모여 민주화 시위를 하고 있다. ©이지희 기자

메흐다드 씨의 부인인 압소네 씨는 히잡 착용 문제로 촉발된 이번 시위에 대해 “이란 여성들은 전에도 히잡을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라며 “마흐사 아미니 사건이 불꽃이 되어 사람들이 일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자유와 여성의 인권이 이란 정부에 의해 탈취당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시위 내내 확성기를 들고 앞장서서 구호를 선창한 솔타니 씨는 “2008년부터 시위가 있을 때마다 참여했고, 지난 4개월 동안 13번의 시위에 모두 참여했다”라며 “우리는 이란의 자유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다 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은 시위를 하고 있지만, 다른 도움이 필요하다면 다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에 온 지 23년이 된 그는 한국인 부인과 두 자녀를 두고 있으며 8년 전 귀화했다. 솔타니 씨는 “이란에 있는 제 사촌 동생은 반정부 시위에 참여했다가 한 달 반 동안 감옥에 갇혔는데, 심한 구타를 당해 뼈가 부러지고 온몸이 성한 곳 없이 풀려났다”며 “가족들에게도 전화로 위협한다고 한다. 오늘 시위에 나온 이란인들의 친구 중에도 시위에 참여했다가 사망한 이들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란 정부가 국민과 말이 통했다면 지금까지 많은 것이 바뀌었어야 했는데, 그들은 국민의 말을 듣지 않았다. 우리는 현 이란 이슬람 공화국이 폐쇄되고 이란의 민주주의와 온전한 자유가 회복되길 원한다”라며 “1980년대 한국에서도 많은 사람이 자유를 위해 어떻게 시위하고 얼마나 많은 젊은이가 죽었는지 기억하실 것이다. 지금 이란 정부에 시위하는 이란 사람들과 이란 안에서 죽어가는 사람들, 위험에 빠진 이란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도와주셨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재한 이란인 민주화 시위
지난 5일 오후 주한 이란이슬람공화국대사관 인근에서 재한 이란인들이 모여 민주화 시위를 하고 있다. ©이지희 기자

장신대에서 목회학 석사 학위를 받고 동숭교회 전도사로 사역하고 있는 무싸 전도사는 “제 나이가 44세인데, 22년은 이란의 이슬람 공화국 밑에서 살았고, 23년은 자유로운 대한민국에서 살았다”라며 “자유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제 느끼고 있다”고 입을 뗐다.

무싸 전도사는 “자유를 느끼지 못하는 이란에 있는 동포들로 인해 너무나 슬프다”라며 “이슬람이라는 종교에 포로로 잡혀있으면서 특히 여성들은 자유도 잃고 성적으로 유린당하면서 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조국에 있는 이란 사람들도 이처럼 자유를 누리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매번 시위에 참석하고 있다”며 “우리는 이 나라에 영원히 살 사람들이 아니다. 이란이 자유화되면 언젠가는 돌아갈 것이다. 이란에 돌아가면 진정한 자유를 누리면서 대한민국처럼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분위기에서 살고 싶다”고 간절한 바람을 드러냈다.

1999년에 한국에 귀화한 컴퓨터 프로그래머 다락선 씨는 “오늘 제 생일이라 가족들이 집에 다 모여 있지만, 이란의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해 책임감을 느끼고 시위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1987년 이란에서 당시 선교사로 사역하던 이만석 목사(전 한국장로교총연합회 이슬람대책위원장, 한국이란인교회)로부터 세례를 받은 다락선 씨는 “민주주의라면 기독교인으로서 굉장히 중요하다. 이란이 이슬람공화국에서 벗어나 민주사회가 되고 종교 자유화가 되는 것이 우리나라의 장래를 위한 일”이라며 “하나님께서 이란의 소수 종교인들을 위해 제게 이런 일을 시키셨다”고 말했다.

다락선 씨는 “이란의 모든 소수 종교인은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데, 특히 목회자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 죽임당했다”라며 “이란이 민주주의가 돼야 이란에서 선교도 할 수 있다. 민주주의 나라에서 자유를 누리고 편하게 있는 우리가 이란을 위해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제가 보기에 큰 죄다. 조금이라도 이란 내 사람들의 목소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재한 이란인 민주화 시위
지난 5일 재한 이란인들이 이란 정부의 시위대 참석자 공개 교수형을 비판하는 교수형 집행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지희 기자

주한 이란이슬람공화국대사관 인근에서 계속된 이란 민주화 시위 준비위원장인 아르민 씨는 “이란에서 마흐샤 아미니가 히잡 때문에 죽으면서 시위가 시작됐는데, 우리가 이란 사람들과 보조를 맞춰 이란의 자유를 위해 이 싸움을 지금까지 해왔다”고 말했다. 아르민 씨는 “처음엔 히잡으로 시작됐지만, 이제 히잡만이 아니라 인권 존중을 위해 이란 이슬람 공화국을 없애고 완전히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되도록 시위를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르민 씨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이란에서 목숨을 걸고 민주화 운동을 하다 체포돼 고문을 당했다. 1997년 자유를 찾아 한국에 온 그는 18년 만인 지난 2015년 이란인으로는 처음으로 한국 정부로부터 정치 난민 인정을 받았다. 그는 “지금 이란 감옥에는 적어도 1만 8천 명이 갇혀 있는데, 이들이 죽어도 아무도 모르고 시신을 어디에 보내는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이 이름 없이 죽어도 하소연할 곳도 없다”면서 “이란 젊은이들이 길거리에서 자유 때문에 죽어가고 있는데, 우리는 이란 대사관 앞에서 죽어도 살아도 시위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독교 박해 심한 이란, 종교 자유 보장하는 국가로 변화하길”

현재 이란 이슬람 공화국의 전복을 바라는 많은 이란인은 이슬람 혁명 이전의 팔레비 왕조의 마지막 황태자인 레자 팔레비에 기대를 걸고 있는 상황이다. 아르민 씨는 “지금 이란 사람들에게 레자 팔레비가 인기가 많다”며 “다른 지도자들은 잘 믿을 수 없고, 레자 팔레비도 40년 동안 활동한 것을 보면 믿을 수 없어 모두가 그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이란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말했다.

그는 “레자 팔레비는 전 세계에 이란을 대변하겠다고 말하며, 세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며 “첫째 이슬람 공화국이 무너지고 이란이 뒤바뀌면 종교가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 세속 정부가 들어서는 것이고, 둘째 모든 이란 땅과 종파, 민족, 사상이 통일된 하나의 이란이 되는 것이며, 셋째 이슬람 정부가 물러나면 이란 사람들이 원하는 형태의 행정체제를 갖추고 전 국민이 투표권을 가진 나라가 되는 것이다. 그때까지 레자 팔레비는 우리의 대변인으로서 돕는 역할만 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재한 이란인 민주화 시위
이만석 목사(왼쪽)가 시위 참가자와 대화하고 있다. ©이지희 기자

이만석 목사는 “미국의 소리(VOA)나 이란인터내셔널 등 전 세계의 이란 방송을 계속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지금 이란 이슬람 공화국은 내리막길에 들어서서 언제 무너지느냐가 문제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이어 “전 세계 이란 사람들의 의견을 설문조사 했는데, 이란의 이슬람 시스템을 계속 유지하기 원하는 사람은 국민의 19%뿐이었다”며 “해외의 이란 사람들은 99%가 현 이슬람 시스템은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고, 이란 내 국민까지 합하면 81%가 이슬람 시스템을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는 레자 팔레비는 종교는 개인과 신의 문제이지 정치 문제는 아니라며 정치와 종교가 전혀 상관이 없는 나라로 만들겠다고 말하고 있다”며 “이란의 종교 자유를 위해서도 ‘새로운 혁명’으로까지 언급되는 이번 시위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란은 공식적으로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 이슬람을 제외한 소수 종교인들에 대한 박해가 심한 국가이다. 2022년 기독교 박해 지수인 ‘월드 와치 리스트’(WWL)에서는 9위(85점)를 차지했으나, 2023년에는 8위(86점)로 순위가 상승했다. 이란에서는 1979년 이슬람혁명 당시 2명의 순교자를 포함해, 지난 40여 년간 최소 50건 이상의 순교 및 투옥 사건이 발생했고, 3백 명 이상의 기독교인이 고난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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