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희 목사
이태희 목사

우리는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대로 모든 일이 진행될 때에는 하나님의 뜻이 차질없이 진행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반면에,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대로 일들이 진행되지 않거나 우리가 보기에 바람직하지 않은 방식으로 상황들이 전개되는 것처럼 보일 때에는 하나님의 뜻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직관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간다. 직관적으로 느껴지고 직관적으로 보여지는 대로 세상을 이해하고 판단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망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같은 직관성은 우리의 타락한 “죄성”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태초의 선악과 사건이 그것을 잘 보여준다. 직관적으로 보기에 먹음직하고 보암직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게 보이는 것을 먹어서 결국 어떻게 됬습니까? 먹음직스러워서 먹었다가 죽게 되었고, 보암직스러워서 먹었다가 소경이 되었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러워서 먹었다가 어리석은 자가 되고 말았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자신의 직관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다 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 우리의 상황이 우리 눈에 어떻게 보이든, 현재 우리 상황이 우리의 오감으로 어떻게 느껴지든지간에 우리는 우리의 감각적인 직관으로만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판단하며 행동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죄인의 길에서 죄인들과 함께 망하는 길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직관으로 보고 이해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눈으로 보기에 좋다고 반드시 좋은 것이 아니듯, 눈으로 보기에 나쁘다고 해서 나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먹음직해 보인다고 해서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듯, 먹음직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먹을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마귀는 모든 것을 우리의 직관으로 이해하고 판단하며 행동하라고 속삭이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직관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모든 것을 보고 이해하고 행동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시편의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시1:1-4)

자신의 직관을 의지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바람의 방향을 따라 날라 다니는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복이 있는 자, 모든 일에 형통한 자는 자신의 직관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에게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기 때문에 열매맺는 삶, 형통한 삶.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이 복이 있는 자가 되기 위해서, 모든 일에 형통한 자가 되기 위해서 해야할 일은 우리의 직관을 버리고 하나님에게 뿌리를 내리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바꿔 말해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직관”이 아니라 “믿음”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 내가 시초부터 종말을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뜻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사46:9-10)

하나님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신 주권을 사용하신다.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 또는 “하나님의 섭리”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이란 바로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과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찬송과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찬송을 받으시고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하나님이 행하시는 모든 일의 궁극적인 목표다.

“나는 나를 위하며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사48:1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사 43:21)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 자신을 위하는 일이다. 하나님이 찬송을 받으시고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위하시는 일이 곧 우리를 위하는 일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시고 영광을 받기 위해 일하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받기 원하시는 우리의 찬송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기쁨과 감사의 표현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시100:1-5)

하나님이 우리로부터 받고자 하시는 찬송은 바로 이와 같은 찬송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요, 그의 선하시고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이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하는 이 사실을 아는 지식에서 나오는 기쁨의 찬송. 바로 이와 같은 찬송을 받으시는 것이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시는 뜻과 목적이다. (계속)

이태희 목사(그안에진리교회 담임, 윌버포스 크리스천 스쿨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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