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욱 교수
신성욱 교수

얼마 전, 페북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유튜브 OO교회 채널에
조회수를 보니...
1위가 탁구 친 영상이고(업로드 38일째)
2위가 서울 도심 투어 영상이다(어제 업로드).
3위가 설교인데(올린 지 2년 된 것이다).
역시 설교는 그만 올리는 게 맞다.
무엇보다 이제는
직업을 진지하게 고려해 볼 만하다.
탁구 치는 서울 여행 가이드...”

상당히 진솔하게 소개한 짧은 내용의 글이다. 교회 유튜브 영상에 제일 많은 조회수를 기록한 것이 ‘탁구 친 영상’, 두 번째 많은 조회수는 ‘서울 도심 투어 영상’이고, 세번째가 ‘설교 영상’이란다. 그것도 설교는 올린 지 2년이나 되었는데, 어제 단 하루 올린 영상보다 조회수가 낮다. 이 내용을 올린 이는 목사님인 것으로 추정하는데, ‘설교는 그만 올리는 게 맞다’ 하고 ‘직업도 진지하게 고려해봐야 하겠다’고 한다.

이처럼 솔직담백하고 진솔하고 겸허한 이는 목회자로 계속 머물러 있었으면 좋겠다. 진실되지 않은 목회자가 적지 않으니 말이다. 한국의 가장 큰 교단 중 하나인 장로교 어느 교회에서 ‘담임목사 청빙 공고’를 신문에 내면서 ‘믿음 좋은 목사님을 모십니다’라는 조건을 붙였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목사들이 얼마나 믿음이 좋지 못하면 장로들이 믿음 좋은 목사를 모신다고 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목사로서 창피스럽기 짝이 없다.

요즘 부교역자 구인광고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교회마다 부교역자를 모시기가 어려워서 내게 연락이 많이 온다. 심지어 동생 목사 교회에는 두 명이 교회를 그만두어서 찾고 있는데, 또 한 명이 이번 주에 사임을 했다고 한다. 학생들에게 소개해도 도무지 지원할 생각들을 하지 않는다. 과거 우리가 신대원을 다니고 있던 시절엔 목사가 육사 다음으로 처녀들에게 인기 있는 직업으로 등극했다.

‘아, 옛날이여!’란 노래가 절로 터져 나온다. 목사들 이미지가 언제부터 이리 추락해버렸는지! 한국 최대 교단인 내가 나온 신학교에서 올해 신대원 학생모집에 처음으로 미달 사태가 벌어졌다고 한다. 신대원은 그렇다 치더라도, 학부는 조만간 곧 사라질 전망이 크다. 그런데 목회자들의 설교는 더욱 성도들에게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더 이상 설교에 큰 관심이 없다는 말이다.

한국교회가 왜 이리 되어버렸을까? 신학생과 목회자는 어떤 이유로 교회에서 배척을 당하고 있고, 교역자들의 사명감은 왜 이리도 빨리 식어만 가고 있는 것일까? 또 설교는 어째서 성도들의 관심의 대상이 더 이상 아니란 말인가?

신학교에서 성경과 설교를 가르치고 있는 교수로서 고민이 더욱 커진다. 모든 건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한 까닭이라고 본다.

주일예배 시마다, 수요예배나 금요철야 시마다, 새벽기도 때마다 맛보는 말씀인데, 얼마나 영양 만점의 식단을 공급받고 있느냐가 관건이다. 물론 영양가가 높아서만도 안 된다. 맛도 좋아야 장사가 잘 되는 법이다. 영양 만점에다가 맛도 좋고 빛깔도 좋은 음식점을 손님들은 찾아다닌다. 성경과 설교를 가르치는 교수로서 하나님 말씀에 대한 신학생과 목회자들의 실력과 깊이가 턱없이 부족함을 본다.

한 마디로 생명의 양식인 성경에 대한 지식이 너무도 얕고 부족하단 말이다. 원래 성경은 두루마리로 이어져 있었다. 창세기면 처음부터 마지막 구절까지 장도 절도 없이 쭉 이어져 있었다. 그런데 편의상 학자들이 장과 절로 나누어놓은 게 우리가 읽고 있는 성경이다. 그러다 보니 각 성경마다 전체를 통해서 하나로 이어지는 큰 흐름이 장과 절에 의해서 난도질 당하는 아주 큰 문제가 발생해버렸다.

게다가 그렇게 장과 절에 의해 토막 난 성경을 주석들은 한 단어 한 단어 더 세밀하게 쪼개버렸다. 잘린 곤충의 마디마디를 이어서 날아가게 해야 하거늘, 머리와 팔다리와 몸통이 잘린 곤충을 손가락과 발가락 마디마디로 더욱 잘게 잘라버렸단 말이다. 각 장과 절로 나누어진 성경을 원래대로 구분 없이 통전적으로 이어주는 작업이 필요하거늘, 오늘의 주석들은 성경의 장절보다 더 세분화해서 단어 하나하나를 분석하고 쪼개는 작업을 해버렸다.

그러니 어찌 성경 저자의 원래 의미대로 통전적인(holistic) 해석이 가능하겠냐는 말이다. 게다가 난도질 당해버린 성경의 내용을 가지고 설교를 준비하면서 또 세 개의 작은 주제로 더 쪼개서 설교를 해버리니 어찌 말씀의 온전한 진미를 맛볼 수가 있겠는가?

우선 설교자는 원문에 맞는 번역을 해야 하고, 다음으로는 통전적인 관점으로 본문을 해석해서, 그것을 하나의 큰 흐름이 담긴 내용으로 설교를 해야 한다.

한 마디로 본문을 다 잘라버리는 ‘삼대지의 설교’가 아니라 성경의 큰 흐름(Main point)을 살려주는 ‘원포인트의 강해설교’를 해야 한다.

언제까지 “너희 염려를 주께 맡기라”(벧전 5:7)라는 잘못된 번역으로 ‘첫째, 둘째, 셋째’ 형식의 설교를 해야 한단 말인가? ‘맡기다’라는 것은 ‘찾아가는 것’을 전제로 한다.

우리말 성경이 ‘맡기라’라고 잘못 번역해놓았기에, 한국 성도들은 말씀을 듣고 예배를 드릴 때는 잘 맡겼다가 예배 마치고 나면 염려, 근심, 걱정들을 다 찾아간다. 원문에 맞게 “너희 염려를 주께 ‘던져버려라’”(Cast your anxiety upon Him)는 정확한 번역을 활용해야 한다. ‘던져버리라’는 말은 더는 내가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이렇게 원문대로 번역해서 하나의 큰 중심사상을 청중들의 가슴에 새기는 설교를 해야 한다.

그것도 맛있는 양념을 치고 적당하게 구워서 먹여야 청중들이 먹고 힘을 얻어서 주인이 원하시고 바라시는 열매를 남기지 않겠는가!

나는 ‘뷔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여러 가지의 반찬들이 즐비하게 제공되긴 하지만, 먹고 나면 뭘 먹었는지 허전할 때가 많다. 곰탕이면 곰탕 갈비탕이면 갈비탕 김밥이면 김밥, 딱 하나를 먹었을 때 제대로 먹은 것 같은 포만감이 든다.

설교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말씀이 원문대로 회복되어야 한다. 강단에서 교회에서 가정에서 생명의 말씀인 성경을 제대로 음미해서 맛보게 되면 지금까지 발생되어온 교회 안에서의 모든 문제들은 자연적으로 해결 될 것이다.

성도들이여, 목회자들이여! 하나님 말씀으로 돌아가자. 깊이 있는 말씀의 원액 그대로를 맛보아 알아, 말씀이 가르치는 바대로 잘 살아드림으로 신바람 나는 신앙생활을 모두가 경험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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