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호 목사
김민호 목사(회복의교회 담임)

지난 시간에 이어서 연재되는 칼럼의 마지막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제까지 우리는 예배의 대상과 세계관이 직결되어 있다는 일관적인 논리로 신앙의 중요성을 되새겨 보았다. 이런 차원에서 우리가 다음으로 생각해 볼 문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한 하나님은 다 성경적인 하나님인가와 관련된 세계관 이해다. 그리고 이 문제를 논한 후에 결론을 맺고자 한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황금 송아지인가?

일단 정상적인 기독교인들이라면 유신론적 세계관 입장에 서 있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유신론 입장이 기독교인들만의 입장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여러 이단부터 시작해서 유대교와 가톨릭과 이슬람 등을 비롯한 종교들도 우리와 같은 유신론 입장에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유신론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세상과 구별될 충분한 근거를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오늘날 상당수 기독교인들은 유신론적 입장에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타종교인과 구별됨을 찾기 어려운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이제는 유신론적 진화를 주장함으로써 유물론자들과 구별되지 않고, 관념론적으로 하나님을 주장하여 적극적 사고방식을 추종하는 사람들과 구별되지 않는다. 그 결과 작금의 기독교인들은 종교 다원주의를 별 저항감 없이 수용하는 상황까지 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 원인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막연한 인식은 있지만, 자신이 믿는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에 어둡기 때문이다. 상당수 기독교인들에게 하나님은 물질적인 풍요와 부와 탐욕을 만족시키는 신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성공을 보장해 주는 신으로, 어떤 사람은 행복을 보장해 주는 신으로 이해된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사실은 우상을 하나님께 투영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관념론을 투영한 하나님, 유물론을 투영한 하나님이 교회 안에 가득하다.

이 문제가 출애굽기 32장에 나타난다. 출애굽을 한 이후 모세는 히브리인들을 대표로 하나님께 십계명을 받기 위해 시내산에 올라갔다. 그동안 산 아래 있었던 히브리인들은 황금 송아지 모형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조각하고 숭배했다. 물론 이들은 우상을 숭배하기 위해 황금송아지를 형상화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눈에 보이지 않는 여호와를 애굽에서 숭배하던 익숙한 우상으로 형상화한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황금 송아지를 형상화한 후에 두 번이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출 32:4, 8)라고 선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만들어낸 황금 송아지는 사실 애굽의 ‘아피스 황소’를 여호와 하나님께 투영한 것일 뿐이었다. 몸은 출애굽 했지만, 세계관은 여전히 애굽에 머무른 상황이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을 애굽의 신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종교는 바뀌었지만, 신관이 바뀌지 않은 오늘날 한국교회의 실정이 이와 다르지 않다. 신관이 바뀌지 않은 한국 교인들은 여전히 세상적 세계관의 지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께 대한 바른 이해를 가르치라

오늘날 기독교 교육의 문제는 너무 도덕성과 교훈적인 가르침에 치중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는 참담하다. 기독교인들의 도덕성과 의식 수준은 점점 낮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현상이 유대 사회에서도 흔하게 나타났다. 예수님은 그 원인을 하나님에 대한 오해에서 찾으셨다.

우리가 복음서를 보면 주님의 주된 관심사는 윤리나 교훈을 주시는 데 있지 않았다. 하나님에 대한 왜곡된 이해를 바로잡는 일에 집중하셨다. 그 결과 도덕성은 자동으로 따라왔다. 예수님의 가르침 가운데 유대인들의 종교 지도자들의 분노를 하게 만든 대표적 가르침은 예수님을 아버지 하나님과 동등함에 대한 것이었다. 예수님은 자신과 하나님이 하나라고 가르치셨다(요 10:30). 이 가르침은 상당한 유대인들에게 충격을 줬고, 믿고 받아들인 사람들에겐 세계관의 변화와 아울러 충격적인 도덕적 변화가 동반됐다. 하나님에 대한 안목이 변하자 삶 전체(多)가 변화된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맹인이었다. 하나님을 안다고 생각했지만, 세계관의 변화가 없었다. 율법과 선지자와 시편을 알고 가르치는 사람들이었지만 여전히 옛 아담의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님께 종교적 형식주의와 위선과 율법적 잔인함이 가득한 회칠한 무덤이라는 질타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기독교 세계관 교육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강단이 도덕과 교훈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을 올바로 계시하는 곳이라는 인식의 변화가 나타나야 한다. 강단은 유일하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바르게 계시하는 곳이 돼야 한다.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말처럼 “교회의 주된 목적은 인간을 하나님과 바른 관계로 이끄는 것이며 화목하게 하는 것”이다.1) 그렇기 위해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바르게 계시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도 자신의 목회 사역을 “하나님의 뜻을 다” 전한 것이라고 회고한다(행 20:27). 하나님을 바르게 전하고 가르치면 세계관의 변화는 자동으로 동반된다. 어느 시대든지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일에 집중하지 않고 기독교인들의 세계관을 바꾸는 데 성공한 적은 없다.

나가기

작금의 기독교의 위기는 세계관의 위기다. 이 사실은 기독교인 대부분은 공감한다. 낸시 피어시의 주장은 오늘날 기독교가 세계관의 문제를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될 이유를 비수와 같은 말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세계관을 공부하는 목적은 다름이 아니라, 기독교를 그 문화적 포로 상태에서 해방하고 그 권능을 발휘하게 함으로써 세상을 변혁하도록 풀어 주는 것이다.”2)

맞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좀 더 본질적인 부분에서 파악돼야 한다. 그것은 세계관이 지적인 문제 이전에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회복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세계관은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여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의 안목을 소유하는 문제다.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어 바울의 눈에서 비늘과 같은 눈꺼풀이 벗겨지는 일이 생겨야 한다. 이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 위해서 교회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초점을 맞춰 가르쳐야 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무엇인가? 칼빈의 가르침처럼 “어떤 하나님이 계신다고 생각하는 것만이 아니라, 동시에 과연 우리에게도 어울리며 하나님의 영광에도 합당한 것이 무엇인가 깨닫는 것”이다.3) 이것을 깨닫게 될 때,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안목으로 세상을 변혁하도록 풀어 주는 놀라운 일에 헌신하게 될 것이다.

김민호 목사(회복의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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