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림 박사
폴림 박사가 발표를 하고 있다. ©개혁주의학술원 영상 캡처

고신대 개혁주의학술원(원장 이신열 교수)이 3일 오후 2시 ‘청교도 신학’이라는 주제로 제13회 칼빈학술세미나를 개혁주의학술원 유튜브 채널을 통해 실시간 온라인으로 개최했다.

이날 세미나에는 폴림 박사(미국 밴더빌트대)가 ‘나의 영혼의 이야기와 투쟁들: 21세기 상황에서 본 존 번연의 책 - 죄인의 괴수에게 넘치는 은혜’, 윤종훈 박사(총신대)가 ‘청교도 칭의론의 두 얼굴 - 존 오웬과 리차드 박스터’라는 주제로 각각 발제했고, 이신열(개혁주의학술원장)·황대우 교수(개혁주의학술원책임연구원)가 논평했다.

먼저, 폴림 박사는 “존 번연은 1628년과 1688년 사이에 살았다. 그의 전생애의 20%에 해당하는 중요한 12년 동안 존 번연은 그의 종교적 확신들에 대해서 타협하기를 거부한 이유로 감금되어 있었다”며 “그는 60세까지 살았다. 그는 오늘 우리가 논하고 있는 ‘죄인의 괴수에게 넘치는 은혜’라는 책을 감옥에서 집필했다. 왜 그는 이 책을 감옥에서 완성했을까? 이는 많은 부분 청교들과 영국 성공회와의 갈등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존 번연과 같은 청교도들은 영국 국교회와 속 태우면서 살 수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참된 교회는 ‘성도들의 모여진 회중’이었고 그렇기에 영국 국교회의 여물로부터 분리된 공동체로서 확증하는 증거가 받아 들여질만하게 자신의 신앙고백으로 세례를 받은 자들로만 구성된 것이었다”며 “리차드 백스터는 교인들에 대한 교리문답과 그의 교회 회중들이 참된 의미에서 회심했는지 아닌지를 볼 수 있는 ‘개인적 마음-사역’(individual heart-work)으로 명명한 것에 대한 절박한 필요성에 대해서 매우 잘 알고 있긴 했지만, 그는 영국 국교회를 개혁하는데 좀 더 방점을 두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많은 청교도들 사이의 공통된 욕망은 바로 영원한 하나님의 도성을 향하는 그들의 여행을 위해서 영혼을 돌보고 치유하고자 하는 욕망이었다”며 “리차드 백스터(Richard Baxter, 1615~1691 시인)와 존 번연 모두 이 점에 대해서는 모두 공통된 헌신을 보였다”고 했다.

그는 “존 번연의 ‘죄인의 괴수에게 넘치는 은혜’에서 ‘죄인의 괴수’라는 표현을 주목해야 하는데, 존 번연의 책에서는 바울과 같은 자기묘사, 곧 바울이 자신을 양자로 묘사하면서 자신의 위치가 성 바울의 관점 혹은 사도 바울의 관점을 의미하는 자기묘사를 발견하게 된다”며 “왜냐하면 바울은 자기 자신을 지칭하면서 죄인의 괴수였고 죄인의 괴수이라고 말한다. 동시에 사도 바울의 삶에는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가 존재했다. 게다가 바울은 이 넘치는 은혜의 책을 기록할 때 바울은 마치 투옥된 자로 묘사한다”고 했다.

이어 “우리는 그가 ‘임재 가운데 하나님으로부터 이끌림을 받았고’, ‘하나님께서 부여한 의무를 수행할 수 없는 자이며, 오직 신앙과 거룩 속에서의 하나님의 양육과 세우심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적고 있다”며 “그는 그의 책 서문에서 그들을 참으로 그리워하고 있다고 적고 있는데, 왜냐하면 그는 감옥의 담으로 인해서 교인들과 단절되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또 “그의 책 서문은 영국 베더퍼드(Bedford) 지역의 양 무리들에게 헌정되어 있다. 특히 빌립보서와 같은 사도 바울의 옥중서신들인 바울 서신들처럼 존 번연은 그가 투옥되었을 때 이 책을 집필했다”며 “존 번연은 그리스도인들의 천로역정은 불가피하게 ‘의기소침과 고양됨’이 모두 존재하게 되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다치게도 하시고 치유하시기도 하는 분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특히 “21세기 상황에서 우리가 이해할 필요가 있는 사실들 중 하나는 적어도 미국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오직 치유하고 회복하시는 분으로만 생각하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이라며 “그들은 의기소침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일들이 도전적이고 절망적일 때에나 일들이 위대하게 잘 나갈 때 모두에 있어서 주권적인 하나님에 대한 보다 온전한 그림이 필요하다”고 했다.

폴 김 박사는 “주님의 유월절에 대한 이스라엘의 첫 경험들이라는 예시와 주님의 은총들의 시작점들을 기억하라는 시편 기자들의 지속적인 외침 모두 존 번연에게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며 “존 번연은 사도 바울이 사도행전 22장과 24장에서 그의 ‘회심 방식’에 대해서 적고 있는 것을 책에서 추가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존 번연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는 나의 죄악들보다도 위에 있지만, 사탄의 유혹들도 그러하다’ 죄인 중의 괴수에게 ‘넘치는 은혜’라는 제목이 상황들과 경험들이 어떻게 힘들고 절망적이라 할지라도 존 번연의 치유하는 해결책들은 하나님의 은총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존 번연과 그의 동료 청교도들에 대해서 내가 깊게 인상을 받은 사실 중 하나는 그들이 얼마나 성경에 깊게 젖어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며 “존 번연에게 있어서 이스라엘의 경험은 자신의 백성들의 경험과 유비적이었다. 이스라엘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가야만 했다. 존 번연은 동료 청교도들에게 나태에 대해서 경고했고,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은총을 위해서 기도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존 번연의 신학적이고 목회적 형성에 있어서 중요한 책은 다름 아닌 성경이었다는 사실을 주목하는 것이 핵심적”이라며 “그렇다면 성경의 어떤 부분들과 가르침들이 존 번연으로부터 피처럼 흘러나오는가. 존 번연에 의한 몇몇 핵심적인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먼저, 존 번연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신비’가 주는 아름다움에 대해서 발견했다. 그렇다면 왜 이것이 중요한가”라며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모든 것은 그러한 연합으로부터 오는 공로의 전가라는 구체적인 유익이라는 사실을 그가 주장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두 번째로 그리스도를 “그의 선택받은 자들의 전체 몸이 항상 고려되는 공통의 혹은 공적인 사람(Common or Public person)으로 보기 시작했다”며 “그리스도는 연합적 머리(Federal Head)였는데, 다르게 표현하지만 우리는 아담의 타락과 반항에서 나오는 저주들을 받게 되는 것과 동일하게 우리는 또한 둘째 아담의 올바름과 순종으로부터 나오는 유익들도 받게 된다”고 덧붙였다.

또한 “세 번째로 존 번연의 영적인 전투들은 결국 그의 유익을 위한 것으로 판명되게 되는데 왜냐하면 그 영적인 투쟁들이 그를 성경으로 이끌게 되었고, 그 이전 보다 약속의 본질에 대해서 보다 깊게 볼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라며 “특히 존 번연에게 있어서 강력하게 다가온 것은 예수께서 요한복음 6장 37절에 하신 약속으로‘ 누구든지 나에게 오는 자를 나는 결코 쫒아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라고 했다.

폴 김 박사는 “마지막 네 번째로 존 번연은 영국 베드퍼드(Bedford) 지역에 위치한 그의 침례교회에서 이루어진 주님의 성만찬 가운데 존재하는 성도들의 교제의 아름다움을 매우 소중하게 여겼다. 그는 무엇보다도 바로 이러한 성도들의 교제를 그의 아내와 자녀들 다음으로 그리워했다고 적고 있다”며 “이제 오늘날의 상황 속에서 바라본 존 번연과 그의 책 ‘죄인 중의 괴수에게 넘치는 은혜’에 대한 결론적인 코멘트들이다. 폴란드 로마 가톨릭주의는 요한 바오로 2세를 낳았고 또한 견고한 전통 등이 존재하지만 자주 죄의식과 수치심이라는 수렁에 빠져있고 이것에 집중되어 있다”고 했다.

아울러 “죄와 수치심 이러한 것들이 성경의 범주에 있는 것이 확실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의미하는 것은 이런 죄와 수치로부터의 구원을 통한 자유와 기쁨이며, 이는 제조되거나 고안된 어떤 것이 아니라, 참되게 변혁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우리는 지금까지 존 번연이 자기 속에서 영혼의 투쟁들을 거치면서 의로움은 자신 밖에서 오는 약속의 말씀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됨으로서 구원을 얻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했다.

윤종훈 박사
윤종훈 박사가 발표를 하고 있다. ©개혁주의학술원 영상 캡처

이어 두 번째로 발제한 윤종훈 박사는 “17세기 후기 잉글랜드 신학계에 펼쳐졌던 칭의론 논쟁은 박스터가 1649년 ‘칭의론의 경구들’(Aphorisms of Justification)이라는 작품을 출간하면서 구체화 되었다”며 “이 책은 Allison이 지적한 바처럼, 박스터가 어느 날 갑자기 칭의론 논쟁 한복판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할 정도로 폭풍을 불러일으킨 작품이 되었다”고 했다.

그는 “리차드 박스터는 1638년 23세에 앵글리칸의 목회자로 임명된 이후 약 53년 동안 Stewart(Stuart) 왕조 아래 목회사역을 감당하였다. 그는 잉글랜드 시민혁명이 발발한 1642년 이래로 의회군의 군종목사로 활동하기까지 청교도의 신학사상과 개혁주의 신학에 정통했고, 제한속죄론을 비롯하여 존 칼빈의 칭의론을 신뢰했다”며 “그러나 의회파의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이 이끄는 신형군대(New Model Army)에 가담하여 청교도혁명의 전선에 뛰어들었던 그는 군종목사로 활동하면서 1565년 나스비 전투(Naseby)에 참여한 이후 잉글랜드 안에 두 개의 신학 사상 즉 알미니안주의(Arminianism)와 율법폐기론(Antinomianism)이 공존하고 있다고 평가했다”고 했다.

이어 “박스터는 당시 의회파 군대를 이끌었던 페어팍스(Fairfax) 진영에서 군종목사로 활동하던 율법폐기론자인 존 살트마쉬(John Saltmarsh, d.1647)의 설교와 가르침이 잉글랜드에 만연해있다고 판단했다. 즉, 당시 의회파 군인들이 율법폐기론자들의 영향으로 그리스도의 영광만을 강조하고 신자에게 명령된 율법의 역할을 소홀히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며 “그는 이들을 향해 ‘복음을 거스리는 자들, 반기독교인, 율법폐기론자들보다 더 심한 도덕방종자들’이라고 지칭했다”고 덧붙였다.

윤 박사는 “박스터의 첫 작품이 출간되기 전 존 칼빈의 제네바 신학을 기초로 잉글랜드 개혁주의적 전통에 입각한 신학을 체계화시킨 존 오웬(John Owen, 1616~1683)은 1643년에 ‘알미니안주의 해부’(Display of Arminianism)라는 작품을 통해 알미니안 신학의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반박했다”며 “그리고 그는 1647년에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의 죽음의 종식’이라는 작품을 통해 그리스도의 죽음의 종식의 목적과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 및 보편구원론의 문제점들을 성경적 근거를 통해 자세히 다루었다. 이미 군목으로 활동하면서 율법폐기론의 문제점을 간파하였던 박스터는 존 오웬의 이 작품을 율법폐기론적인 입장을 옹호한다고 평가하고 자신의 신학을 전개하기 위하여 1649년에 상기한 이 책을 출판했다”고 했다.

이어 “박스터의 작품이 출간되자 안소니 버게스(Anthony Burgess)와 리차드 바인즈(Richard Vines)를 비롯한 존 월리스(John Wallis), 조오지 로슨(George Lawson), 존 크란돈(John Crandon), 토마스 툴리(Thomas Tully), 윌리암 에어(William Eyre)등은 박스터의 칭의론의 형식적 원인 즉, 근거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며 “그러자 박스터는 1655년 자신의 작품인 ‘그의 믿음의 신앙고백’을 출판하여 오웬의 신학을 반박하며 칭의의 수단으로서 믿음을 강조했고, 1655년 오웬은 ‘복음적 옹호’(Vindiciae Evangelicae)를 출간하여 박스터의 이러한 주장은 소시니안주의자들의 입장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논증하자, 박스터는 1657년에 ‘성례권에 대한 논쟁들’라는 작품을 출간하여 오웬의 신학을 율법폐기론으로 규정하고 자신을 소시니안주의로 지목한 사실에 대하여 불평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박스터는 핀너 홀(Pinner’s Hall)에서 행한 설교를 통해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를 거부할 뿐만 아니라, ‘신자 자신의 의를 통한 칭의’를 주장했다”며 “이러한 정황 속에서 존 오웬은 1677년 개혁주의 칭의론의 대작인 ‘이신 칭의론’을 출간함으로써 그동안 뜨거운 논쟁점이었던 잉글랜드 칭의론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존 오웬과 리차드 박스터 칭의론의 유사점과 일치점은 기본적인 인간론에 있었다”며 “이들은 인간의 전적타락에 대한 제네바 신학을 존중하고 Dordt 신조(1618)를 중시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능력을 인정하였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속죄에 대한 의도 및 요지에 관한 부분에 관하여 이들은 아무리 선택받은 백성이라 할지라도 사람이 하나님의 속죄 경륜에 대하여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한 점은 매우 개혁주의적인 분석이다. 그러나 양자 간의 차이점은 많은 부분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고 했다.

이어 “첫째로 오웬은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의 공식적 원인은 다름 아닌 그리스도의 전가된 의라고 주장한 반면, 박스터는 의의 전가라기보다는 새 언약인 은혜언약의 성취조건인 믿음과 순종 그리고 거룩한 삶에 의한 결과라고 주장했다”며 “둘째로 오웬은 신자의 칭의의 과정이 오직 그리스도의 신비적 연합을 기초로 이루어졌음을 주장했지만, 박스터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대한 관점을 생략하거나 또는 약화시키고, 대신에 언약 신학을 강조하면서 옛 언약의 실패로 인한 새 언약인 은혜 언약을 통한 그리스도의 의가 신자에게 전가됨에 있어서 언약의 필수조건인 믿음과 회개, 절대적 순종이 요구된다고 강조한 점”이라고 했다.

또한 “셋째로 오웬은 하나님의 속성을 거룩, 의, 무한성, 엄위하심, 사랑, 자비로 명명하였으며, 하나님은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그의 아들 성자의 희생을 통해 대속사업을 완수하시고 영원 전에 예정하신 그의 백성들을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를 통해 하나님 자녀로 회복시키시는 역사를 이루신 분으로 묘사했다”며 “그러나 박스터의 하나님에 대한 이해는 전통적인 개혁주의와 무관하다. 즉, 하나님을 통치자, 절대자, 군주, 왕으로 묘사하고 인간을 종, 순종이행자로 묘사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통치자가 다스리는 왕국으로 규정하고, 하나님이 다스리는 방법은 절대적인 율법으로 명명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박스터는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평화의 세계를 선포하기보다는 정치적인 방법론을 구사하여 모든 인류를 통치하며 군림하시는 하나님의 군주적인 왕국을 강조했다. 이러한 그의 신학적 방법론은 17세기 잉글랜드의 정치사상과 새도덕운동(New Moral Movement)에 영향 하에 정립된 특징을 지니고 있다”며 “그는 하나님의 의지를 구분하되, 정치신학(Political Theology)적으로 설명하였다. 즉, 첫째 하나님은 ‘입법자로서의 하나님의 의지와 행위로서 믿음의 무소불위 기증자’로 설명하고, 둘째로 하나님은 ‘절대 통치자로서의 사역과 의지를 지닌 자’로 분석했다. 즉, 그는 하나님을 입법자이자 사법적 법 집행자로 설명하고자 노력했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 넷째로 오웬은 전통적인 칼빈주의적 입장에서 이신칭의를 설명함에 반하여, 박스터는 정치신학적 삼권분립의 원칙을 이신칭의에 적용했다. 즉, 입법적 칭의, 사법적 칭의, 행정적 칭의로 분류했다”며 “이러한 그의 칭의론 구분 방법은 전통적인 칼빈주의의 일회성과 단회성, 순간성에 근거한 이신칭의론에 반하여, 여러 단계를 통해 수행되는 최종적 칭의론을 주장한 것”이라고 했다.

특히 “로마 가톨릭은 Council of Trent(1546)를 통해 신자의 칭의의 근거로서의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전가를 반대했으며, 단회적으로, 법정적 선언으로 그리스도의 의가 신자에게 전가된다는 개혁주의 신학을 반대하며, 단회적이 아닌 점진적이고도 변화적인 과정을 통해 단계적으로 이루어간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는 칭의와 성화를 구분하지 못한 명백한 오류였다”며 “그러나 박스터는 정치신학적 삼권적 구도를 통해 이러한 로마 가톨릭의 신학을 오용 또는 활용을 하였던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사회경제적 역경의 위기 가운데 오웬과 박스터의 칭의론은 완전히 다른 방향을 향하게 되었다”며 “즉, 존 오웬은 존 칼빈을 위시한 장로교주의에 입각한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강조함에 반하여, 리차드 박스터는 교회와 교파를 초월하여 인간의 책임과 의무를 강조하여 거룩성을 추구해야 할 것을 강조하였던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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