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 교수
김선일 교수. ©DFCtv 유튜브 영상 캡처

김선일 교수(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선교와문화)가 최근 복음과도시 홈페이지에 ‘세계관과 내러티브 열풍’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김 교수는 “세계관이라는 용어가 부쩍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근엄하고 진지하게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었던 이 용어가 깃털처럼 가볍게 쓰인다. 과거처럼 학계나 교회에서가 아니다. 대중문화에서 앞 다투어 세계관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며 “아예 아이돌이 인기를 끌기 위해서는 세계관을 갖추는 일이 필수라고 한다. 아이돌 멤버들에게 세계관은 하나의 기본 사양이 되었다(‘2022 트렌드 노트’, 129) 전형적으로는 뮤직비디오가 나오면 그에 대한 세계관적 해석이 다양하게 시도된다”고 했다.

이어 “BTS의 한 멤버가 초월적 존재이며 다른 멤버들은 그 존재의 여섯 인격체라는 식의 엉뚱한 해석이 인기를 끈다. 이러한 가설이 성립되려면 그에 부합되는 세계관이 설정되어야 한다”며 “국내 최대의 엔터테인먼트 기획사인 SM은 SMCU(Culture Universe) Origin이라는 유튜브 영상을 내보이면서 세계관을 통한 이야기 전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영상의 내레이션은 창세기를 연상시키듯 ‘태초에’(In the beginning)로 시작되며, 그 동안 종교와 과학이 점유하던 세계의 기원과 형성에 대한 무의식에 담겨진 신화적 이야기를 펼쳐 보이겠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세계관은 우주적 판타지만을 다루지 않는다. 넷플릭스 인기 드라마 ‘킹덤’은 조선 시대 좀비물에서 후속작 ‘킹덤: 아신전’에 이르러 조선 북방으로 무대를 옮기며 역병을 부른 허구의 풀 생사초의 기원을 찾는다고 해서 세계관을 확장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며 “더 나아가 세계관이라는 용어는 우주나 국경과 같은 거대 영역만이 아니라 생활세계에도 적용된다. 개그맨 3인이 만든 유튜브 ‘피식대학’은 그들이 각기 다른 세계관을 만들어서 산악인협회, 올림픽국가대표, 대선 등을 코믹하게 풍자한다. 판타지보다는 패러디에 가깝고 비전의 스케일도 작지만 그들 각자가 현실과는 다른 세계와 캐릭터를 설정한다는 점에서 이 또한 세계관 놀이라고 불린다”고 했다.

이어 “이와 같이 세계관은 하나의 허구 세계를 설정하고 그 세계를 관통하는 내러티브를 촘촘히 만들어 구조를 갖춘 다음, 그 세계관에 부합하는 노래, 캐릭터, 밈 등의 콘텐츠들이 개발된다”며 “그런데 여기서 유행처럼 사용되는 세계관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는 worldview가 아니라 우주라는 뜻의 universe이다. 관점을 의미하는 ‘세계관’은 관행적으로 쓰일 뿐 문자적 의미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따라서 현재의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일리는 만무하고, 오히려 현실 경험세계를 넘어서는 또 다른 세계에 대한 상상과 구상”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인간의 경험과 현실을 훌쩍 뛰어넘는 이 허구적 세계관의 발상은 평행우주론과 같은 과학적 가설과 메타버스라는 가상현실 기술의 발전을 배경으로 한다. 디지털 기술은 우리의 일상에 엄청난 양의 정보를 가져다주었고, 이제 가상현실 기술은 우리의 상상을 확대시키는 세계관적 콘텐츠를 요구하게 됐다”며 “한편으로 사람들이 크고 작은 세계를 설정하는 이 욕구는 현실의 결핍을 반영한다. 사람들은 더 이상 희망이 없는 현실 속에서 우울해하고 좌절하며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인생을 살지 않는다. 비록 가상이라 할지라도, 자기들의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서 그 안에서 웃고 즐기며 소통할 수 있는 동반자들과 연대한다”고 했다.

김 교수는 “내러티브는 세계관을 움직이게 하는 연료다. 내러티브와 이야기는 비슷하지만 미묘한 차이를 지닌다”며 “이야기는 내러티브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인과관계를 서술한다면, 내러티브는 이야기가 어떻게 들려지는지를 말한다”며 “우리가 내레이션을 할 때 화자의 시점을 곁들이는 것과 같다. 우리는 일인칭 내러티브라고 하지 일인칭 이야기라고 말하진 않는다. 이야기가 표현된 내용 자체라면 내러티브는 자기만의 틀로 내용뿐 아니라 신념과 가치를 내포한다. 내러티브에는 대안적 세계에 대한 열망이 담겨 있다. 그것은 꼭 기승전결의 이야기 구조여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이어 “신앙을 교리적 명제나 규칙으로 배우고 표현해 왔다면 세계관과 내러티브는 다소 어색할 수 있다. 1980∼90년대에 한국 교회에 기독교 세계관 학습 열풍이 불었고 지금도 세계관은 많은 교회들과 선교단체에서 가르치는 주요 주제이긴 하다. 하지만 기독교 세계관 학습은 상상과 내러티브와 비전으로보다는 기독교 교리의 하위 주제로서 ‘인지적 관점’에 머무르는 경향이 있다. 더군다나 이 관점은 세상의 문화와 풍습에 대해서 비판적 접근을 통해 이해보다는 판단에 더 많이 사용된다”며 “오늘의 세계관 열풍은 그와는 결이 다르다. 앞서 말했듯, 이 세계관은 상상의 질서를 구축하고, 그 안에서 커뮤니티를 만들어 세계를 해석하며 밈을 전파하며 노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상상-서사-해석-공유-놀이의 체계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러한 세계관과 내러티브 현상은 비록 정교한 소비 자본주의의 기획으로 설계된 틀이기도 하지만, 현실을 극복하고 살아내려는 사람들의 열망을 담고 있다”며 “기독교 세계관은 이러한 허구적이고 사실상은 일시적 쾌락으로 소비되는 세계관 놀이와 다르다. 기독교 세계관은 초월을 갈망하나 그 초월은 현실에 도래하는, 그리고 현실을 변혁하는 완성을 지향한다”고 했다.

이어 “사도 바울은 고대 1세기에 주변의 야만족들과 비교해서 우월한 로마제국의 시민의식을 지닌 빌립보 교인들에게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빌 3:20)고 선언하면서, 그 하늘의 구원자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그의 영광을 따라 아름답게 변화시키리라는 비전을 제시했다”며 “더 큰 세계를 바라보고 그 세계를 기다리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진정한 의미에서 세계관의 사람들”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한편으로 이는 우리에게 새로운 과제를 던진다. 그리스도인이야말로 하나님 나라를 상상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존재이어야 한다”며 “상상과 내러티브는 기독교 신앙을 생동감 있게 경험하고 표현하는 중요한 기제가 된다. 오늘날 신앙의 언어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차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당장의 문제와 고민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위로와 용기를 위한 신앙의 언어는 물론 필요하지만, 더 큰 이야기와 세계의 궁극적 변화에 대한 소망을 견고하게 품지 못한다면 우리는 현실 효용성에 의존하는 실증주의적 검증의 늪에 빠질 것이다. 성경은 우리의 현실과 미래를 위한 선명한 세계관과 탄탄한 내러티브를 제공한다. 성경의 내러티브는 우리로 하여금 더 많은 상상과 비전을 창조할 수 있는 원천이 된다”고 했다.

아울러 “C. S. 루이스가 고대의 신화들이 공통적인 양식과 영향력을 끼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둔 참된 신화라고 했듯이, 성경적 세계관은 많은 상상의 세계관들이 있으나 유일하게 초월과 현실을 통합하고 역사를 완성하는 참된 세계관, 바로 그것”이라며 “그리고 교회는 그 세계관을 오늘의 삶을 변혁시키는 내러티브로 해석하고 공유하는 가운데 위로와 소망을 나누는 공동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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