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채 총장
서병채 총장
사업이나 직장이나, 윈윈(win-win)은 누구나 다 추구하는 것이고, 또한 그것이 최상이라고 생각하고 또 가르치기도 한다. 그런데 그게 사실인가?

성경에서 보면 예수님 윈윈하셨는가?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희생하심으로 lose-win 구도를 만드셨지 않은가. 나는 희생되고 저들은 살리고. 즉 저들이 잘되고, 만족하고, 상처를 안 받는다면 오히려 lose-win이 맞지 않은가? 내가 꼭 이겨야만 하는가?

케냐에 와서 학교운영를 운영해가면서 느끼는 것인데 끝임없는 협상, 끊임없는 양보가 있어야 함을 계속적으로 내 자신에게 인지시키고 있다(auto-suggestions).

현재로서는 두 가지에 도전을 느끼고 있다. 외적으로는 전세계에서 이학교를 바라보는 재정적인 후원자들이다. 또 하나는 내적으로 학교의 직원들, 대학위원회 등… 계속적인 도전의 연속이다. 이런 상황에서 win-win, win-lose, lose-win 세 가지 옵션이 있겠다. 내가 죽어야 남이 산다는 개념은 너무 식상한 것인가?

최상은 윈윈. 그러나 이것은 이상에 불과. 다음 옵션은 절충 50:50으로 가는 것이다. 양쪽 각각이 100% 만족이 안되고 50% 만족에 마무리. 그러나 공유된 진행에는 100%에너지 헌신으로…

결국 lose-win, 즉 "내가 져야지 그가 이기게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니까 win-win은 어떤 측면에서는 듣기좋은 슬로건에 불과할 수가 있다.

주는 자가 갖는 것이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산다. 이타주의(other-centered)라는 말이 여기서 필요할까!

나는 오래 전에 임상목회훈련(CPE)을 받은 적이 있는데(지금은 여기 학생들께 훈련시키고 있는 입장이 됬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기주의(self-centered)에 빠져 있음을 지도교수(supervisor)께서 지적한 바 있었다. 특히 caring ministry에서는 이타주의가 절대적인 것을 느끼곤했다.

이타주의란 무엇인가? I am a looser, you are a winner! 내가 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 대학위원들과 최근에 이런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내가 looser가 되기로 결정했다하니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나의 결단이 생각밖이었다는 표정들이었다.

그렇다. 지고(lose) 산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긴 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진다고 해서 내게 큰 피해가 오는가? 단지 자존심에 상처만 좀 날뿐이다. 그것도 내가 선택한 상처이니 감수할 수 있다고 봐진다.

이기려고 애쓰는 데 에너지를 사용하기 보다, 더 건설적이고 더 생산적인 일·사역에 집중하는 게 지혜로운 자의 자세가 아닐까.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라 주어진 사역에 더 효과적이고 성공적이 되도록 애쓰는것이 필요함을 재삼 느낀다. 중요치 않은 일에 관심갖게 하는 비효과적인 유혹들이 항상 주위에 맴들고 있다.

무한한 협상, 양보하고 또 지는 것(lose), 얼마든지 감수해야 된다고 본다. 대를 위해서는 어쩔수 없음을 인지하고!!

그러나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는 서로가 윈윈이 되도록 리더자는 지도하고, 또 그렇게 되도록 상호중재도 해주는 게 좋다고 본다. 너와 나의 관계에서는 비록 lose-win 관계가 필요하지만, 제3자들 사이에서는 윈윈이 되도록 해주는 게 리더자의 도리라고 봐진다.

서병채 목사(케냐 멜빈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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