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약 3만 명으로 추산되는 탈북민들에 대해 정부가 제대로 실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2년 전 ‘탈북민 모자 사망 사건’이 벌어지자 정부가 탈북민 생활안정을 위한 종합대책을 유관부처 공동으로 수립했다고 밝히는 등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었으나 현실은 그다지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지난 2019년 7월 31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탈북민 모자가 숨진 채 발견되었다. 수도세와 전기세가 수개월째 밀리는 등 인기척이 없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아파트 관리인이 경찰에 신고해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는 이미 시신이 심하게 부패한 상태였다. 경찰은 숨진 탈북민 모자가 굶어 죽은 것으로 판단했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 왔다. 북한에서 목숨을 걸고 탈북해 자유 대한의 품에 안기기까지 최소한 남한에서 배를 곯는 일은 없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탈북민이 외로움과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아사(餓死)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국가 시스템에 구멍이 뚫렸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국내 탈북민 정책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들끓자 통일부는 “탈북민들이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대책을 충실히 시행하고, 국회 등과의 협력을 통한 중장기 대책 마련 등에도 노력하겠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2년이 흐른 뒤 현실은 여당 의원조차 냉정한 평가를 내릴 정도다.

국회 외교통일위 소속 더불어 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지난달 20일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북한이탈주민(탈북민) 취약계층 전수조사’에 대해 집중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이 조사가 ‘탈북민 위기 가구 발굴 지원 시스템을 마련하고 유관 부처간 지원 체계를 유기적으로 연계’하기 위한 본래 취지에 적절치 않고 조사 방식부터 후속 조치 등 조사 전반에 걸쳐 미흡하다고 지적한 것이다.

통일부가 이 조사를 실시하게 된 것은 ‘탈북민 모자 사망 사건’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이 조사를 토대로 취약계층을 파악해 ‘탈북민 생활안정 종합대책’을 세우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이에 대해 윤 의원은 “이탈주민 취약계층을 지원한다는 행색만 갖췄을 뿐” “정작 정책 대상자인 이탈주민에게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등의 말로 평가절하했다. 통일부가 이런 조사를 통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보다 당장의 문제를 봉합하는데 급급한 ‘대책을 위한 대책’으로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윤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지적한 통일부의 문제점은 한마디로 “여력 혹은 역량 부족”이다. 그런데 과연 이런 문제가 윤 의원의 말대로 통일부의 여력과 역량 부족이라고 간단히 치부할 수 있을까.

통일부는 올 3월 북한인권정보센터의 하나원 입소 북한이탈주민 대상 ‘북한 인권 실태조사’의 협조 중단을 통보했다. 올해 1월부터 북한 인권 실태조사 대상자 규모를 기존보다 30% 축소하라고 했는데 북한인권정보센터측이 기존과 같은 규모로 조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하자 아예 조사용역에서 제외해 버린 것이다. 이로써 지난 20년간 한번도 중단된 적이 없는 북한 인권 실태조사와 2007년부터 14년간 이어져 온 ‘북한인권백서’ 발간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또 다른 사례도 있다. 국민의힘 지성호 의원이 통일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의하면 최근 3년간 문서 수발신목록에 2020년 7월 이인영 장관 취임 후에는 국회로 북한인권재단 이사추천 협조 공문을 단 한 차례도 보낸 적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016년 북한인권법이 여·야 합의로 제정된 후 북한인권재단 출범을 위해 전직 통일부 장관들은 모두 국회를 방문하여 외통위원장, 교섭단체 등을 만나 재단 출범의 필요성을 설명해 왔다. 그러나 이 장관은 취임 이후 인권재단 이사추천 협조 공문조차 보내지 않아 전임 장관들의 행보와 너무나 대조된다는 지적이다. 이를 두고 통일부가 과연 북한 인권 개선 의지가 있는지 말이 많다. 이런 태도를 그냥 “여력 부족 또는 역량 부족”으로 퉁 치기에도 적절치 않다.

통일부는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관련 사업을 집행하는 정부 부처다. 남북 경제협력과 대북 인도적 지원 등 남북 교류 협력에 관한 사업을 지원하기도 하지만 북한 인권 문제, 납북자 문제 등 남북한의 인도적 문제와 탈북민의 국내 정착을 돕는 일도 담당한다.

그런데 근래에 통일부가 추진하고 있는 일들을 살펴볼 때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다. 통일부는 북한이 대북전단지 살포를 구실로 개성에 있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자 여당과 함께 ‘대북전단금지법’을 만드는 일을 주도했다. 북한이 해양수산부 공무원을 총격을 가해 살해하고 시신을 불태우는 등 훼손한 사건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나서기는커녕 제대로 된 항의조차 없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지난해 7월 취임하자마자 첫 사업으로 북한 영유아·여성 지원사업에 남북협력기금 1000만 달러 지원을 확정했다. 이는 전임 김연철 장관이 추진하다 북한의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김여정의 공격적 담화 등으로 남북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으면서 보류된 사업이다.

북한의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일은 인도주의 차원에서나 남북관계 증진을 위해 필요하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균형이 필요하다. 장관의 취향과 의지에 따라 업무의 우선순위가 바뀌는 건 그렇다 치고 균형까지 잃으면 정치 이념 편향적이란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북한 주민을 돕는 일 못지않게 국내 3만 탈북민을 지원하는 일에도 장관이 열과 성의를 보여야 할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오죽하면 야당 대표가 혈세를 낭비한다며 부처 폐지를 주장하고 나섰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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