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철준 목사
최철준 목사(나주글로벌교회)

미국 LA 인근에 가면 세쿼이야 국립공원이 있다. 그곳에는 2600년 이상 된 엄청나게 크고 굵은 나무들이 서 있다고 한다. 특이한 것은 그 공원 입구에 이런 글귀가 쓰여져 있다. "나무는 충분한 햇볕과 영양분과 수분이 공급되기만 하면 끝없이 자란다." 무슨 말일까? 나무의 성장은 제한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 나무가 2600년 이상 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그것을 알 수 있게 된 것은 옆에 쓰러져 있는 나무들의 나이테를 세워 보아서 알게 되었다고 한다. 특별히 오래되고 큰 나무 중에서도 가장 큰 나무가 '제너럴셔먼 트리'이다. 이 나무의 높이는 무려 120m를 넘는다고 한다. 그 나무 밑둥치 둘레가 30미터다. 공원 입구의 안내문처럼 이 나무는 지금도 자라가고 있다.

여러분, 이 나무가 우리에게 주는 영적인 교훈이 무엇일까? 우리의 인격과 신앙도 자랄 수가 있다는 것이다. 어디까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랄 수 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한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라"(엡4:13). 사도 베드로도 말년에 말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벧후3:18a). 그렇다면 어떻게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이룰 수 있을까? 먼저 우리가 인정해야 할 것은, 우리 힘으로는 주님을 닮아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나무가 충분한 영양분과 수분을 공급받으면 자랄 수 있는 것처럼,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은총이 주시는 햇빛이 계속해서 비추어진다면, 그리고 복음의 수맥에 깊이 뿌리를 내린다면 우리도 주님의 장성한 분량까지 이를 줄로 믿는다.

본문에 보면 제너럴 셔먼 트리처럼 영적으로 장성한 교회가 등장한다. 그 이름은 바로 데살로니가 교회다. 이 교회는 얼마 되지 않은 신생교회이지만 지역사회를 변화시키고, 온 세상에 주님의 영광을 드러낸다. 어떻게 데살로니가 교회가 신생교회임에도 불구하고, 지역사회를 변화시키고 세상에 영향을 주는 교회가 될 수 있었을까? 데살로니가 교회가 복음으로 세워진 교회이기 때문이다.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우리 교회가 복음으로 세워가는 교회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로, 복음을 전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5절에서 바울은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이르렀다고 말한다. "우리가" 누굴까? 데살로니가에 복음을 전한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이다. 그들이 함께 복음을 전했기 때문에 그 결과로 데살로니가 교회가 탄생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복음을 전했을까? 5절에 보면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 말은 복음이 말로 전해졌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전도는 말이 아니라 삶으로 해야죠!" 물론 전도자의 삶이 중요하다. 하지만 말로 전하지 않으면 복음을 온전히 설명할 수가 없다. 왜 그럴까? 복음은 말로 전해야만 구원의 온전한 의미를 드러낼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삶도 중요하지만, 반드시 말로 전해야 한다. "내가 예수 믿고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예수 믿기 이전과 이후의 모습이 어떻게 달라지었는지, 주님이 내 삶에 찾아오시고 어떤 열매가 있게 되었는지를 말로 전해야 한다.

바울은 복음을 말로 전했다. 그러나 말로만 전한 것이 아니라 2) 능력으로 전했다고 한다. 여기서 '능력'은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외적인 기적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내적인 작용을 말한다. 말씀을 들을 때, 그 말씀이 내게 부딪혀 온다. 나의 지성과 양심을 깨우고, 감정을 새롭게 하고, 의지를 변화시킨다. 우리의 심령이 변화되고 새롭게 되는 것은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바울은 복음을 말로만 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전했다. 그리고 3) 큰 확신으로 전했다. 여기서 '확신'은 전도자의 주관적인 마음의 상태다. 내가 전하는 메시지가 "나의 복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음이다. 모든 생명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능력, 유일한 해답"이라는 강력한 확신을 말한다.

바울은 복음을 말과 능력과 큰 확신으로 전했다. 그런데 한 가지를 더 말한다. 바로 성령이다. 이 성령을 마지막에 다룬 이유가 있다. 앞의 세 가지가 다 성령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그 복음을 체계적으로 말할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시고 담대함을 주시는 분이 누구신가? 성령이시다. 그리고 복음을 증거할 때, 그 복음이 하나님의 진리라는 확신을 주시는 분도 누구신가? 성령이시다. 말씀을 전할 때 죄인이 됨을 인정하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인정하고 나아가도록 역사하시는 분도 성령이시다.

그래서 바울은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없는 전도, 성령의 역사가 없는 말씀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한 것이다. 제가 말씀을 준비하면서 회개한 일이 있다. 설교원고를 잘 준비하면 설교 준비가 끝났다고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런데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설교원고를 잘 준비했어도, 성령의 능력이 임하지 않으면 아무런 역사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령의 역사가 없는 설교는 무익하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침례(세례) 받으실 때,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한다. 무엇을 의미할까? 예수님의 공적인 사역,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고 병을 고치는 권능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성령의 권능이 임한 결과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변화산에 올라가 자신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 주신다. 이때 구름이 덮이고 하늘에서 한 음성이 들린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그의 말을 들어라." 예수님은 십자가 사역을 앞두고 위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임재를 충만히 경험했다. 예수님은 성령의 능력으로 강해지고 충만해져서 십자가로 나아간 것이다.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하신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증거하라"(행1:8). 사역은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사역뿐만 아니라, 캠퍼스와 가정과 일터에서의 삶도 내 힘과 지혜로 할 수 없다. 오직 위로부터 오는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한 것이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11:13). 성령의 능력을 받고 귀한 사명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길 바란다.

최철준 목사(나주글로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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