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한 목사(품는 교회 담임, Next 세대 Ministry 대표)
김영한 목사

성경적 부부의 온전한 관계는 어떤 것인가요?

“목사님! 결혼을 파혼하고 싶어요...”

결혼 학교 때, 상담을 하면, 자매님이 힘들어하는 것이 있어요.
바로 형제님이 시부모님과 결혼할 자매님 사이에 해야 할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경우에요. 남자가 벽이 되어 시댁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막고, 전달하지 않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에요.

결혼 전 그리고 결혼 후 부모님의 그늘을 벗어나야 해요. 너무 재정적 지원을 받아서 마마보이가 되는 것은 지혜로운 것이 아니에요. 성경은 이렇게 말해요.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 지로다” (창세기 2:24).

요즘은 처가 쪽 도움을 너무 받아서 처가살이 혹 처가의 조정을 받으며 사는 듯한 커플이 있어요. 이런 것도 문제예요.

하나님이 계획하신 부부 관계는 부모를 떠나 둘이 한 몸을 이루는 거예요. 둘이 전인격적인 연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영적, 정서적, 육체적으로 하나를 이루어 가는 관계에요.

영적 하나

부부간에 영적으로 연합하여 하나만 될 수 있다면, 정신적 육체적으로 하나 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아요.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불신자라면 영적으로 하나를 이루는 과정은 매우 힘이 들고 어려워요.

영적 연합을 이루는 원리는 부부 각자가 주님과의 분명한 인격적인 교제가 있어야 해요. 많은 젊은이들이 크게 착각하는 한 가지는 주님과의 관계에서 채울 수 있는 인간 인격의 핵심부를 배우자를 통해 채우려고 하는 거예요. 오직 주님으로만 채울 수 있는 인간 중심부를, 배우자를 통해 채우려고 하니 실망하고 답답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영적인 연합은 부부 각자가 자신의 인격 핵심부에 주님을 모시고 주님만 의지하는 삶을 살아갈 때 가능해요. 서로의 의견이 맞지 않아 다툼이 일어났을 때도 주님과의 관계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각자가 살펴보고 회개하며 주님께 나아가야 해요. 주님께 나아갈 때 주님은 배우자가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인격적인 필요를 채우시고 부부 관계를 회복시켜 주세요.

영적인 연합은 ‘나와 너와의 관계’, ‘남편과 아내와의 관계’에서 이루어질 수 없어요. 두 사람 모두 주님 안에 들어올 때 가능해요. 주님과의 관계에서 풍성함을 누리면 마음은 여유로워지고 상대를 기꺼이 섬기고 사랑하겠다는 섬김의 자세가 나올 수 있는 거예요.

남편이나 아내는 영적으로 약한 상태에 있을 수 있어요. 그러나 나와 주님과의 관계가 바르게 회복되어 있다면 약해져 있는 배우자를 기꺼이 섬길 수 있어요. ‘섬김’이라는 자체가 주님과의 관계가 선행되어 있지 않으면 가능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우리 스스로는 섬김을 생각할 수 없는 존재예요. 혹, 의지를 가지고 의도적인 섬김을 할지라도 지속되지 못해요. 주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어야 비로소 사랑과 섬김이 가능해져요.

정신적 하나

사람은 주님과 영적인 연합이 이루어져 주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때 주님으로부터 영적 자양분(은혜)을 공급받게 되어요. 인격적인 필요를 공급받은 자는 주님으로부터 공급받았기 때문에 상대의 필요를 얼마든지 채워 줄 수 있어요. 정신적인 하나를 이룰 수 있는 거예요.

정신적 하나를 이루는 주님의 원리를 모르면 결혼 관계에서 항상 상대에게 “당신이 나를 편하게 해 달라"고 요구하게 돼요. 부부가 정신적 하나를 이루어 나가는 과정에 대화의 기술을 터득하는 것이 아주 중요해요. 서로를 깊이 이해하는 공감이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지요. ‘공감’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부부는 없겠지만 실제 부부 관계에서는 공감하는 방법을 몰라서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를 자주 보게 돼요.

지민이라는 자매님이 있었어요. 복통을 동반한 두통까지 생겨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퇴근해서 돌아올 남편을 기다렸어요. 자매는 퇴근한 남편이 현관문 키를 누르는 소리를 듣고 안도의 숨을 쉬었어요. 자매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편을 향해 잔뜩 찡그린 얼굴로 “여보, 나 오늘 아파서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어. 지금도 배와 머리가 너무 아파.”라고 말해요.

아프다는 아내의 말을 들으면서 형제는 식탁 위를 보았어요. 거기에는 아내가 아파서 먹지 못한 햄버거 한 개가 있었어요. 형제는 “걱정하지 마, 나는 저기 있는 햄버거 먹고 잘게”라고 말했어요. 지민이는 남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불같이 화를 내며 말해요. “당신은 오늘 하루 종일 아파서 아무것도 먹지 못한 사람에게 그렇게밖에 말 못 해!”, “나는 더 이상 당신하고 살 수 없어. 당신하고 사는 것보다 차라리 혼자 사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어쩌면 그렇게 내 마음을 몰라!”, “우리 헤어져!”

그날 밤에 양가의 부모님께서 신혼집으로 달려올 만큼 크게 싸웠다고 해요.

남편의 입장이에요. 아내가 아프다고 해서 아내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다 식어버린 햄버거를 먹는다고 했는데 왜 불같은 화를 내느냐는 거예요. 하루 종일 아파서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아내의 말을 들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 부부가 저를 찾아왔을 때 형제에게 질문했어요. “형제님, 아내가 아파서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형제는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면서 진지하게 제게 말했어요. “목사님, 제가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아내는 제가 무슨 말을 하면 화를 내서 말을 하기가 겁이 납니다.”, “어제 우리 이혼하는 줄 알았습니다.”, “아프다고 해서 ‘햄버거 먹을게’라고 했는데, 벌떡 일어나 ‘저랑 못 산다’고 하면서 부모님께 전화하고 결국 부모님이 밤에 우리 집에 급하게 오시고 난리가 났었습니다.”

이 부부의 문제가 무엇이죠? 아내가 듣고 싶은 말은 “오늘 종일 많이 아파서 정말 힘들었군요.”, “내가 빨리 죽 사올게요.” 하는 위로의 말이었어요. 자매가 죽을 시켜 먹을 수도 있었겠지만, 사랑하는 남편이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랐던 거예요.

기현이라는 형제님이 있었어요. 형제님이 집에 들어오자마자 가방을 던지면서 “더 이상은 못하겠다.”라고 하면서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어요. 하루 종일 남편을 기다린 아내는 힘없는 남편을 바라보니 자신도 힘이 빠졌어요. 아내는 살아가야 할 앞날을 생각하며 남편에게 말했어요. “당신이 직장에 안 가면, 우린 무엇을 먹고 살지? 다른 형제들은 아무 말 없이 직장생활 잘하던데, 당신은 왜 그래?” 남편은 아내가 하는 말을 듣고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갔어요.

직장에서는 아무 일이 없는 것처럼 열심히 일하고 온 형제가 집에 돌아와서는 왜 가방을 던지면서 더 이상 못하겠다는 말을 할까요? 남편은 아내에게 무슨 말을 듣고 싶어 했을까요? 남편이 듣고 싶은 말은 “여보, 당신 오늘 많이 힘들었군요. 직장생활은 참 힘든 일이 많은 것 같아요”, “제가 당신을 위해 맛있는 된장찌개 끓여 놓았어요.”라는 말이었어요. 하루 종일 직장에서 힘든 일정을 보내고, 어렵고 힘든 마음을 아내가 알아주기를 바랐던 것이에요.

부부들이 상담을 하러 와서 자주 하는 말이에요. “저 사람은 벽창호예요. 말이 안 통해요. 정말 답답해서 미치겠어요!”

정말 남편이 아내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말일까요? 자신의 마음을 배우자가 알아주지 못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상대의 마음을 알아주는 말은 어떤 말일까요? 그것은 공감 언어를 사용해서 말하는 것이에요.

공감이라는 것은 상대가 가진 감정을 ‘감정 단어’를 사용해서 말하는 거예요. 사람들은 마음에 어려움이나 즐거움이 있을 때 감정 단어를 사용해 주기를 바라요. 감정 단어를 사용해 주면 ‘자신의 마음을 알아준다’고 해석해요. 그러나 ‘감정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저 사람은 내 마음을 모른다’고 해석하게 돼요. 그렇기 때문에 ‘공감 단어’는 ‘마음 단어’라 할 만큼 중요해요.

부부가 정서적으로 하나 되는 중요한 방법은 ‘마음 단어’를 사용하여 귀 기울여 배우자의 말을 듣는 것이에요. 배우자의 마음의 소리를 듣는 것은 그 어떤 사역보다 중요해요. 마음 깊은 곳에 걱정, 근심, 두려움, 좌절, 분노 등을 나누면서 부부는 그 어떤 관계보다 밀착된 하나 되는 마음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이에요.

그러므로 마음 단어를 사용하는 훈련은 결혼할 때 혼수를 준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해요. 마음 단어를 사용하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 결혼 후에 상담실을 찾게 되든지, 부부 사이에 담을 쌓던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게 될 거예요.

보편적으로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감정 단어에 민감한 반면, 남자들은 여자들보다 둔감해요. 남자가 감정에 둔감한 것이 원래 감정 단어에 둔감하도록 창조된 것은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남자를 지으실 때 정서가 풍부하도록 지으셨지만, 우리 사회는 남자들이 감정 단어에 둔감할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었기 때문에 둔감하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러나 남자의 마음에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인격적으로 빚으셨기 때문에 남자, 여자 모두 지·정·의가 있고 남자도 감정을 사용할 수 있는 정서적인 존재로 만들어 주셨어요. 감정은 우리의 내면에 있는 것을 외부에서 볼 수 있도록 하는 연결 고리이기 때문에 부부 사이에서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은 매우 중요해요.

우리가 사는 사회는 전반적으로 ‘소통 부재’예요. 가정도 예외가 아니고요. 가정에서부터 서로를 깊이 알아가는 소통이 필요해요.
예수님은 말씀하셨어요.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 12:15).

김영한 목사(품는교회 담임, Next 세대 Ministry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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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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