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장혁 씨는 “김정은 정권 이후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제일 괄목할 만한 변화는 시장경제가 북한에 확실하게 자리 잡았다는 것”이라며 “시장경제 속에서 성장한 새 세대의 인식도 이전과 확연히 달라졌다”고 말했다.

함경북도 청진 출신인 그는 1988년생으로, 북한 영재고등학교와 이과대학을 졸업했으며 19세 때 아시아 지역 ACM 국제 대학생 프로그래밍 대회(ACM-ICPC) 수상 경력과 북한 지역 대학생 프로그로밍 경연에서 특등을 수상한 경력이 있다. 2019년 11월 탈북해 2020년 5월 하나원을 수료하고 대한민국 국민이 된 장 씨는 북한에 대한 객관적인 소식을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하기 위해 4개월 전부터 유튜브 채널 ‘장선비의 한양살이’를 운영하고 있다.

3월 관악통일비전포럼
장혁 씨는 “북한 청년들이 통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대한민국 청년들과 교류하고 싶고 소통하고 싶어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지희 기자

29일 서울 동작구 사당동 물댄동산교회(조요셉 목사)에서 열린 3월 관악통일비전포럼(GUVF, 상임대표 남승호 서울대 교수)에서 강사로 초청된 장 씨는 ‘김정은 정권 이전과 이후의 청년세대 인식 변화’를 주제로 북한의 실상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온라인 줌 또는 현장 참석으로 진행된 이번 행사는 관악통일비전포럼 청년분과가 주관했다.

장혁 씨는 김정일이 후계자 김정은의 권력 계승을 위한 준비사업으로 가장 먼저 한 것이 2009년 김정은을 우상화하는 노래 ‘발걸음’의 제작과 보급이었다고 말했다. 장 씨는 “김 대장에 대한 젊은 이미지를 강조하는 노래가 무작정 보급되면서 주민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형체에 대한 환상과 추측을 키웠다”고 말했다. 또 “북한 기술력으로 과거 전혀 보여준 적 없는 대규모 축포를 쏘면서 ‘새로운 대장 동지가 설계한 것’이라고 선전해 새 지도자는 과학기술에 능통하다는 것을 어필했다”고 말했다.

장 씨는 “그러면서 김정일의 지방 시찰에 김정은이 동행하고, ‘김일성이 태어난 100돌이 되는 2012년에는 강성대국을 만들어 이 해를 계기로 북한이 엄청난 경제를 누릴 수 있다’고 선전했다”면서 “사실 똑 부러진 돌파구를 찾을 수 없던 북한은 2009년 무리하게 화폐개혁을 단행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가와 군은 앞서 돈이 될 것을 개인들에게 좋은 가격으로 사들였으나, 화폐개혁으로 일정 금액 이상 보유한 금액을 ‘제로’(0)로 만들면서 주민은 그 돈을 다 못 쓰게 됐다”며 “화폐개혁을 통해 북 주민의 국가에 대한 신뢰가 바닥을 쳤다”고 덧붙였다.

2011년 김정일 사망 후 김정은 체제로 진입하면서 주목할 만한 변화로 그는 ‘정치 스타일의 변화’, ‘국가에 대한 신뢰도 하락’, ‘새 세대의 정신적 변화’를 꼽았다. 장 씨는 “김정일은 수백만 명을 굶겨 죽이면서도 체제의 그 어떤 변화를 추구하지 않고 ‘우리에게 변화를 바라지 말라’고 했다. 또 자본주의로 갈 듯 말 듯 보였지만 철저히 인내에 가까운 정치 스타일을 보였다”며 “꼭대기에서도 이렇다 할 변화가 안 보여 사람들은 국가가 도대체 무엇을 하는지 모르게 조용히 지나가는 힘든 시절이었다”고 말했다.

3월 관악통일비전포럼
관악통일비전포럼 상임대표 남승호 서울대 교수가 인사를 전하고 있다. ©이지희 기자

그런데 김정은 집권 후 차별화를 준 첫 번째가 바로 김일성을 패러디 한 면 옷과 60년대에 쓰던 밀짚모자 등 복장의 변화와 이설주의 동행이었다고 했다. 장 씨는 “아버지가 죽고 정치적 기반이 약한 김정은은 김일성의 후광을 이용하고 싶었던 것 같다”며 “(북한 사람들 안에) 김일성은 그런대로 정치를 잘했는데, 김정일은 잘 못 했다는 인식이 있었다”고 말했다. 또 “김정일 시대에는 외부 행사에 아내를 동행한 적이 없었다”며 “김정은이 이설주와 동행하고 TV에 많이 보이는 것이 북한에서 볼 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고 했다.

김정은의 폭압적 정치 행태로서 장성택 처형 당시에는 “장성택이 권력을 찬탈하려 하여 처형됐다고 보도됐다”며 “우리가 감히 가질 수 없는 권력의 영역을 장성택이 가지려 했다고 하니, 마치 신적 영역이 일반 사람들에게도 확대되고 권력에 대한 절대성을 허무는 인식을 가져왔다고 본다”고 말했다.

장혁 씨는 김정은 시대 또 다른 정치 스타일의 변화는 ‘쇼 중심’이라고 했다. 파격적 노출과 공연을 선보인 ‘모란봉 악단’이 등장한 것을 예로 들었다. 이와 함께 장성택 처형을 시작으로 김정은의 관리들에 대한 갑질, 욕설 등에 대해 장 씨는 “김정은 정권에서 10년 가까이 살면서 느낀 것은, 굉장히 변화무쌍한 것 같으나 한마디로 지양성 없는 정치 스타일과 정서적 불안과 변덕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도 고통이 많고, 주변 정세도 예측할 수 없어 문제가 많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북한 화폐개혁의 대실패로 ‘우리가 당을 한 번만 더 믿어보자’는 말이 유행이 되기도 하였고,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약속하고 경제 강국 건설을 이야기했으나 주민에게 신뢰를 얻지 못했다고 했다. 장 씨는 “2009년을 지나면서 공영매체에서 인민들에게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주겠다’고 했다”며 “북한 사람은 타도계급과 지주계급을 부귀영화로 묘사했는데, 그때 공영매체에서 처음으로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누리도록 한다’는 문구가 나오면서 굉장히 낯설었다. 그리고 ‘기본적 식생활이 안 되는데, 우리가 바라는 것이 부귀영화 수준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속 끝도 없이 높은 수준의 공략을 하니 말로만 되는 강령과 약속이 되었고, 10년 가까이 신년사에서 인민 생활과 경제 활동을 끌어올린다는 말을 했으나 이제 북 주민에게는 ‘소귀에 경 읽는’ 정도로밖에 들리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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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통일비전포럼 상임고문 조요셉 목사(숭실통일아카데미 원장)가 강사 소개를 하고 있다. ©이지희 기자

장 씨는 또한 “김정은 시대에 보여주기식 정치로 삼지연, 마식령, 여명거리 등이 건설됐다”며 “실제로 사람이 살고 있고 건물도 보이는 그대로이지만, 침체된 국가 경제를 끌어올리기 위해 생산성이 좋은 곳에 투자해야 하는데 평양과 청진을 이는 고속도로조차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북미정상회담 당시에도 “1차 북미정상회담 때까지는 크게 대내 선전을 했으나, 2차 북미정상회담의 실패로 결과가 없으니 대중에게 무관심을 요구했다”며 “예전에 허리띠를 조이고 힘들 때는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으면 경제생활에 전념할 수 있고 우리 생활이 나아질 수 있다’고 했는데, 정치적으로 신경 쓰지 말라고 하니 많은 사람이 ‘내 살길을 알아서 찾아야 하는가’ 하는 허무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2000년부터 실질적으로 시장경제 논리로 흘러온 북한에서 성장한 청년세대의 정신적 변화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장 씨는 “이 세대 사람들은 한류의 유입으로 선진 국가에 대한 동경이 있고 한류를 통해 자유로운 삶을 보면서 사상과 국가주의의 헌신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당이 돈을 벌기 위해 인도 영화 ‘바후발리’와 같이 특별한 사상이 없고 현대를 반영하지 않으며 고전풍의 외국영화를 번역, 유포하면서 철저히 가려도, 주민은 선진된 국가의 실상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영웅주의를 싫어하는 북한에 중국 드라마, 인도 영화를 통해 영웅주의가 유입되고, 자기중심적 삶을 살게 되는 등의 변화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젊은 세대의 또 다른 변화는 군복무를 대하는 태도라고 주장했다. 장 씨는 “과거에는 남자가 군, 입당, 대학 졸업의 삼박자를 갖춰야 관리가 될 수 있고, 관리가 못 되면 노동자로 고달프게 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노동자들도 돈을 주면 공장에서 찾지 않아 자유로우며, 경제활동을 하면 간부들보다 잘살기 때문에 굳이 10년 군복무를 해야 할지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군생활 도중 집에 오는 ‘생활제대’를 하면 과거에는 동네에서 ‘신체에 문제가 있나’라고 봤다면, 요즘은 ‘똑똑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장 씨는 남한에 오기 전 북에서 한 고등학생이 10톤 트럭을 가지고 상점을 턴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이전에는 국가 것은 쌀 한 톨 훔쳐도 형량이 엄청나게 무거우니 개인 것을 훔쳤는데, 새 세대는 완벽히 털 수 있다고 생각하면 창고도 터는 것”이라며 “외국 영화를 통해 강력범죄 방식을 배워 행동으로 구현한다는 것이 저는 참 놀라웠다”고 덧붙였다.

3월 관악통일비전포럼
이날 질의응답 시간에 같은 청진 출신 탈북민인 강성우 씨(우)가 질문하고 있다. ©이지희 기자

또 북한에도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스마트폰 의존증으로 자기중심적 삶을 사는 젊은이들이 늘어났다고 했다. 장 씨는 “(북한에) 스마트폰 보급률이 얼만큼은 된다”며 “하지만 인터넷도 안 되고 영화도 없고 볼 것이 없는데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스마트폰만 보는 이들이 있다. 이들이 사회성을 상실함으로 북한이 추구하는 집단주의, 전체주의와 멀어진다는 느낌을 확실히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국가에 의존하지 않고 개인 중심의 삶을 개척하고자 하는 이들도 많아졌다고 했다. “평양시 건물 옥상에는 모두 햇빛판(태양광판)이 있다. 전기가 부족하면 1천~3천 달러를 들여 집에 햇빛판을 설치해 작은 TV라도 24시간 보기 원하고, 물도 데우고 집에서 사용하는 소소한 전기를 해결한다”고 말했다.

북한 청년의 통일 인식을 묻는 질문에 장 씨는 “모든 북한 사람이 통일해야 하는 것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지만, 왜 통일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은 없다”며 “김정은 집권 이전은 무력에 의한 적화통일론을 많이 받아들였으나 김정은 집권 이후 적화통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럼에도 북한 사람들이, 특히 북한 청년들이 통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청년들이 한국드라마를 숨어서 봐야 하고 한국의 역사적 지역과 아름다운 산천을 못 가니 대한민국 청년들과 교류하고 싶고 소통하고 싶어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과거에는 대학을 졸업하고 군복무하고 승진하는 길이 아니더라도 공장이 돌아가서 일할 것이 있었다면, 지금은 북한 젊은이들이 일거리가 없어 방황하고 있다”며 “뚜렷한 인생관, 숙명, 사명감 없이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 모르는 청년들이 많다”고 전했다.

북한에 있을 때부터 취미생활로 한류드라마, 책을 보며 대한민국의 정보를 습득했고, 이후에는 배움을 위해 한류를 공부했다는 그는 “남과 북의 차이를 너무 강조하며 북을 너무 다르게 보는 것은 통일의 관점에서 좋지 않다”며 “북에도 같은 사람이 살고 있는 것을 알리기 위해 유튜브를 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요즘 남한의 젊은세대들이 통일을 꼭 해야 하는지 반문하는 것은 당연한 질문이다. 청년들에게 통일에 관해 이야기할 때 감정적 접근도 중요하나, 통일이 각자 삶에 실질적으로 미칠 혜택과 남북이 하나 됐을 때 지위 변화와 물질적 변화 등을 구체적으로 접근하면 통일에 대한 관심이 좀 더 생길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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