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선(다음세대학부모연합 대표)
정영선(한국여성가족정책원 원장, 태아생명살리기 위드유캠페인 대표, 다음세대학부모연합 대표)

우리나라는 중국을 오가던 사신들을 통하여 기독교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먼저 선교사들을 받아들인 중국. 왕은 중국을 배워오라고 보냈지만 복음을 배우게 되었다. 그들을 통해 천주교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계기가 되었다. 실학사상은 천주교였고 개화사상은 기독교였다. 천주교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만 죽었던 시절이어서 학문으로 풀어내었다고 생각된다. 실학사상은 박지원 정약용을 통해 이루어졌고, 박지원의 손자 박규수는 실학사상을 이어 개화사상을 세우고 전했다.

천주교 기독교에 있던 사상이 우리나라에 필요한 것으로 보았고 그것을 학문으로나마 풀어 전하고, 나라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중국사신으로 갔던 박규수는 토마스 선교사를 만나게 되었다. 선교를 준비하다 아내를 잃고 그만두었던 토마스는 조선의 상황을 듣고 다시 선교에 마음이 불타올랐고 성경을 준비해서 조선에 오게 되었다. 토마스 선교사가 조선에 오자마자 순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미 2달 반의 조선선교를 마쳤었고 두 번째로 오던 길이었다.

토마스 선교사와 박규수의 만남을 이해하기 쉽게 연대기 순으로 정리해본다.

1863 토마스 선교사는 처음 선교하러 중국 상하이에 왔다.
1864 임신한 아내가 죽자 선교하려던 것을 그만두었다.
1865 토마스는 중국에서 천주교인 김자평 박규수를 만난 후(천주교와 기독교의 차이점을 알고 있었음)조선 선교에 대한 열망이 생겼다.
1865 9.4 2달 반 동안 토마스 선교사의 1차 조선 선교가 시작되고(성경을 나눠줌) 김자평이 안내를 해주었다.
1866 서울에만 살고 국무총리급 관직만 하던 박규수가 평안도관찰사로 3년 파견을 지원하였다. (토마스를 기다렸던 게 아닐까)
8.9 토마스 선교사가 2차 조선 선교를 시도하였다 토마스 선교사는 단지 조선을 쉽게 갈수 있는 이유로 혼자 제너럴셔먼 호를 탔었다.
9.5 토마스 순교의 자리에 박규수가 평안도 감사로 함께 있었다.(2주 동안이나 대치하고 있었던 것은 박규수는 토마스 선교사를 구하려던 게 아닐까 상상해본다)

1868 김자평 처형 ㅡ토마스가 죽은 이유를 미국에 보고한 이유였다.
1874 박규수는 흥선 대원군에게 개화의 필요성을 계속하여 설득하다가 실패하자 관직을 모두 사퇴하고 집에서 동네 아이들 (최고위층 자제들)을 가르쳐 개화사상을 알렸다. 박규수의 사랑방 제자들-홍영식 김옥균 박영효 서재필은 갑신정변의 주역들이 된다.

갑신정변 그들이 꿈꾸던 개화사상은 기독교였다!!!

다음세대학부모연합
토마스와 박규수 ©다음세대학부모연합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영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