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규 교수
이상규 교수가 12일 한복협 월례 발표회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장지동 기자

한국복음주의협의회(회장 최이우 목사)가 12일 오전 7시 서울시 중구 소재 경동교회(담임 채수일 목사)에서 ‘3.1운동과 오늘의 한국 기독교’라는 주제로 월례 발표회를 개최했다.

이날 이상규 교수(백석대 석좌교수)는 ‘한국교회사에서 본 3.1운동과 오늘의 대한민국’이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이 교수는 “3.1운동은 독립의식, 자유 민주 평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보여주었고, 사회의식의 변화, 여성의 재발견, 실력양성론의 대두로 교육에 대한 새로운 관심 등과 가은 변화를 가져왔고, 그 이후 전개된 독립운동의 지속적인 원동력이 되었다”고 했다.

이어 “3.1운동은 다섯 가지 정신, 곧 자유와 독립정신, 민주정신, 대동단결연합정신, 평등정신, 비폭력 저항정신을 보여주었다”며 “신앙의 자유를 갈망하던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3.1운동은 민족적 해방 그 이상의 의미를 주는 사건”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지금까지의 3.1운동사 이해에 있어서 몇 가지 상반된 의견이 있어왔다”며 “먼저, 3.1운동 발발에 영향을 준 요인이 무엇인가에 대한 견해로, 내인론과 외인론 그리고 기회론이 있다”고 했다.

이어 “만세운동 준비단계에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혹은 러시아 혁명과 같은 국제질서의 변화가 우리나라 3.1운동에 실제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보는 외인론과 일제의 잔혹한 식민지배에 대한 저항이 보다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내인론, 그리고 윌슨의 자결주의는 패전국 식민지에만 해당된다는 점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독립운동의 기회로 이용했다는 이른바 기회론의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시도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민족자결주의는 만세운동의 점화과정에서 영향을 끼친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대부분의 민족지도자들은 민족자결주의를 알고 있었고, 손병희, 최린, 권동진 등 천도교계 인물들과 이승훈, 신홍식, 함태영, 이갑성 등 기독교계 인사들은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선언이 3.1운동의 동기가 되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물론, 민족자결주의만이 아니라 국권피탈 이후 일제의 폭정과 박해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상호연쇄하여 폭발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이렇게 볼 때 외인론과 내인론은 상호작용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역사 사건의 원인이나 전개과정은 어느 한 가지 요인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인 성격을 지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둘째, 3.1운동을 이끌어 가는 주체가 누구인가 하는 점”이라며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이 만세운동의 주체인가 아니면 이 운동을 실제적으로 확대 발전시켜 간 다수의 민중 세력인가? 만세운동의 외연에 있어서 주도적인 세력을 누구였는가에 대한 이견이다. 일반적으로 민족대표의 선구적 역할을 인정하되 만세운동의 실제적 중심 세력은 민중이었다고 주장한다”고 했다.

이어 “민족대표의 역할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이전부터 있었지만 특히 1980년대 이후 민중사관의 대두로 민족대표의 역할을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며 “이와같은 대립된 견해는 3.1운동의 전 과정을 ‘단계적으로’으로 파악하지 않는데서 오는 오해”라고 덧붙였다.

또한 “셋째, 3.1운동을 정의함에 있어서 그것이 ‘운동’인가 아니면 ‘혁명’인가에 대한 논쟁”이라며 “지금까지 3.1운동은 3.1만세운동 혹은 ‘기미독립운동’이라 불러왔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만세운동의 규모와 영향력을 고려하여 ‘3.1혁명’으로 명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대체적으로 진보계열의 인사들이 운동이 아닌 혁명으로 칭하면서 오늘의 한국 현실에 대한 저항의 근거로 삼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넷째, 삼일운동의 중심세력은 천도교인가 아니면 기독교인가하는 점 또한 논란의 중심에 있다”며 “기독교게는 기독교회의 기여와 역할을 강조하지만, 천도교는 만세운동에 있어서의 천도교의 주도성을 강조한다. 일반 사학계는 민족종교로 간주될 수 있는 ‘천도교의 주도’에 동정적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어 “정리하면 3.1운동에서 준비단계에서 기독교 세력이 절대적으로 우세했고, 거사 실행단계에서는 기독교와 천도교가 협력했으나 기독교세가 우세했고, 후속 단계에 해당하는 임시정부 수립에 있어서는 기독교가 중심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며 “이렇게 볼 때 3.1운동에서 기독교의 역할이 지대했음을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한국교회 혹은 기독교계의 3.1운동 관련 문서에 나타난 몇 가지 문제가 있다”며 “먼저 일제하의 상황을 고려해 볼 때 3.1운동 해석에 있어서 민족주의적이 경향성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 할 수 있다. 민족주의는 역사, 언어, 문화, 관습 혹은 전통을 공유하는 집단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종족주의로서 내적인 일치나 단결을 가져오는 긍정적 측면이 있지만, 타민족에 대한 우월성 혹은 특이성을 강조하는 폐쇄적 성격을 지니기도 한다”고 했다.

이어 “또 한 가지 특징은 정치적 해석, 곧 이념화가 이루어졌다는 점”이라며 “특히 한국교회의 3.1운동의 관여나 역할 등을 진지하게 연구하는 일을 진작시키지 못했다. 국가권력에 탄압에 맞서 신교의 자유 혹은 신앙의 자유를 위해 고투했던 그리스도인의 싸움이 진지하게 숙고되지 못한 일은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그는 “일반적으로 3.1운동 과정에서 선교사들의 역할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표명되어 왔다”며 “3.1운동은 선교사와는 무관하게 일어났고, 그들은 제국주의적 입장을 보여주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고 했다.

이어 “3.1운동은 선교사들과 무관하게 일어났고, 선교사들은 간접 참여했다는 점은 인정되지만, 사실상 독립정신과 만세운동의 정신적 토대를 제시했던 것은 선교사들과 선교사들이 활동이었다”며 “우선 고려해야 할 점은 선교사들은 조선에 거주하는 외국인으로서 국내 정치 문제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없는 신분이었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선교사들의 선교 교육 의료 사업은 그 자체가 조선인들의 의식 계몽하였고, 독립운동의 근간이 되는 자유, 민주, 인권, 자주의식 등 독립운동의 정신적 토대를 가르쳤다”며 “이것이 독립운동의 근간이 된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3.1운동 당시 만세운동의 지역 거점은 평야의 숭실, 선천의 신성과 보성여학교, 서울의 세브란스, 부산의 일신여학교 등 선교학교였고, 선교학교가 만세운동의 전파와 시위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은 선교학교(기독교학교) 학생들이 자유, 민주, 인권, 독립과 같은 근대적 가치를 인식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교사들이 직접적으로 만세현장에 참여하지는 않았으나 사실상 만세운동이 일어날 수 있는 토대를 제시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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