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균 목사
홍석균 목사

본문 : 룻기 2장 8-16절

하나님의 방법에는 ‘우연’이 없다. 모든 것이 ‘필연’이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시면 떨어지지 않는다 (마 10:2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 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여호와이시다 (잠16:9). 이러한 말씀들은 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을 뜻한다. 오늘 본문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룻이 우연히 이삭을 주었지만 그 밭이 기업 무를 자, 보아스의 밭이었던 것은 하나님의 필연적 사건이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을 하나님이 선하게 개입하고 계심을 믿어야 한다. 그때 우리는 현재 만나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고 겪고 있는 사건에 충실할 수 있고, 지내는 시간을 인내할 수 있다. 하나님은 반드시 정확한 시간에 정확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서 일하신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시작은 보아스가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룻을 향한 보아스의 구체적인 배려의 모습이다. 8절에 보면 다른 밭으로 가지 말고 내 소녀들을 따르고, 9절에 소년들에게도 말했으니 목이 마르면 물까지 마시라고 한다. 이것은 룻이 받게 되는 엄청난 은혜의 시작이었다. 당시 보아스의 밭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었다. 첫째는 곡식을 베는 자, 둘째는 벤 곡식을 줍는 자이다. 먼저 곡식 베는 자가 곡식을 베어 가면 그 뒤를 따르는 자가 곡식을 주웠다. 이때 중요한 것은 곡식을 베는 자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않았던 것이다. 로마서 4장 4절에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들은 뭔가 자신의 수고가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떨어진 이삭을 줍는 자는 자격 없는 자가 받은 은혜로 여겼다. 룻도 이삭 줍는 모든 것을 은혜로 여긴 것이다(2절).

이러한 원리는 우리의 신앙의 세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은혜를 은혜로 여기지 않는 자는 뭔가 자신의 의를 내세운다. ‘내가 얼마나 헌금을 많이 하는데, 내가 이 교회 창립멤버인데, 내가 5대째 믿는 가정인데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해?’ 이런 자에게 은혜가 들어갈 수 있는 틈이 없다. 그러나 은혜를 은혜로 여기는 자는 열심히 수고하지만 무익한 종임을 고백하고 모든 것을 황송하게 여긴다. 룻도 10절에 보면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룻이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 지금까지, 여기까지 온 것이 내가 수고하고 애써서 왔는가? 주판을 잘 두들겨서 계산해서 왔는가? 어느 정도는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은혜로 덮어주시고 긍휼로 가려 주셨기 때문에 온 것이 아닌가? 세상은 심지도 않은 것을 거둘 때, 재수, 운수라고 한다. 그러나 참 신앙은 심지 않은 것을 거둘 때 은혜라 말한다. 사랑하는 여러분! 은혜로 시작, 은혜로 걸어가게 하시고 은혜로 완주하시길 축복한다.

이런 자에게 어떠한 보상이 약속되어 있는가? 룻을 보면 14절에 보아스의 식탁까지 초대된다. 이방인 룻이 유력자인 보아스와 한 상에서 떡을 먹는 것으로 발전한다. 이 말씀은 구속사적으로 대단히 큰 의미가 있다. 그것은 이방인들도 하나님 나라 잔치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이방인들 모든 사람이 차별 없이 신앙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이러한 의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먼저 자격 없는 내가 은혜받은 자라는 인식과 아울러 내 이웃도 은혜가 필요한 자임을 자각하는 것이다. 나만 은혜받는 것에 익숙해서 이웃의 은혜에 무관심해서 안 된다. 나만을 위한 울타리를 만들고 이웃을 소외시켜선 안 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울타리를 치셨다면 은혜의 영역에 들어온 자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요한복음 10장에 예수님의 관심은 첫째는 양의 우리에 있는 양떼들이다. 양들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케 하려 함이다. 거기서 머물지 않고 그 관심은 우리 밖으로 뻗어 간다.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이 있어 인도하여야 할 터이오니’라고 분명히 밝히셨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명은 받은 은혜를 전하는 것이다. 영혼을 살려내는 것이다. 성경 전체의 명령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살아가라’는 창조의 명령이다. 둘째는 ‘살려내라’는 구원의 명령이다. 이것이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이기도 하다. 세상이 만만치 않다. 하지만 은혜받은 자로 세상을 살아가서 창조의 명령을 이루시길 바란다. 또 그 은혜를 전하여 살려내라는 구원의 명령을 이뤄드리길 축복한다.

홍석균 목사(한성교회 청년부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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