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면서

허정윤 박사
허정윤 박사

이 글은 현대인의 관점에서 우주와 지구, 그리고 지구 생물의 기원을 사실적으로 이해하기 위하여 창세기 1장을 히브리어 원문으로 읽으면서 연구한 것이다. 창세기 1장은 기독교에서 모세가 고대 히브리어로 기록한 것으로, 창조 톨레도트로 불리기도 한다. 히브리인들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은 모세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사건을 환상으로 보고 창조 톨레도트를 기록한 것으로 믿었다. 창조 톨레도트는 히브리 민족의 종교적 토대가 되었으며, 현대 기독교에서도 창조주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토대를 형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 유물론과 진화론이 결합하여 과학적 무신론이 등장한 이후에 창조 톨레도트는 현대사회에서 점점 부정되고 있다. 그렇다면 과학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 기독교인들은 창조 톨레도트를 어떻게 믿을 것인가에 대해 갈등하지 않을 수 없다. 현대사회에서 하나님의 창조가 부정된다면, 기독교는 믿음의 토대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히브리어 원문으로 창조 톨레도트를 읽어보면, 다른 언어로 번역될 때 오역이나 부적절한 언어의 선택으로 원의를 오해하는 문제를 피할 수 있다. 그런 바탕 위에서 하나님의 창조와 현대인들이 알고 있는 과학적 사실과 합치되는 해석의 방법을 모색하고 제안했다. 필자는 그 결과에서 나온 이 글을 이제까지 제시되었던 창조론(창조 톨레도트 해석들)과 구분한다는 의미에서 알파 창조론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 의미는 “알파와 오메가”이신 분의 창조론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창조론을 창세기 전부 또는 2장 3절까지 확장하는 견해들도 없지 않으나, 필자는 그 부분을 하나님의 창조 이후에 전개되는 하나님의 섭리로 보고 제외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창조가 훨씬 간명하게 드러나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Ⅱ. 창조 톨레도트의 해석 방법

고대 히브리어로 기술된 것으로 추정되는 성경의 원본은 남아 있지 않다. 오늘날 우리가 읽는 성경은 대개 히브리어 성경 사본을 번역한 것들 중에 하나이다. 언어들 사이에는 개념의 차이가 있으며, 필연적으로 성경 번역에도 이해의 차이를 초래하게 된다. 그런 성경을 읽으면서 창조 톨레도트의 진실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구약성경의 기록을 좀 더 진실에 가깝게 이해하려는 구약신학자들은 히브리어를 배워서 구약성경을 해석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창조론자들도 그와 똑같은 이유에서 히브리어 창조 톨레도트를 연구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현대인들이 창세기를 읽고 하나님의 창조를 믿으려면, 세 가지 문제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첫째는 창조 톨레도트의 서술에는 두 개의 서술적 층위가 혼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모세가 하나님의 영이 인도하는 환상 속에서 창조 사건을 보고 듣고 이해한 대로 그의 언어인 히브리어로 창조 톨레도트를 기록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게 된다. 하나의 층위는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거나 환상을 보고 기억해서 기록한 것이다. 다른 층위는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이나 환상을 그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이다. 창조 톨레도트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두 개의 층위를 명확하게 구분해서 읽어야 한다. 더욱이 하나님은 모세에게 창조의 전 과정을 보여주지 않으시고, 짧은 시간에 명령어로 몇 마디 말씀하시면서 극히 일부분만을 보여주셨을 뿐이다. 따라서 창조사건의 일부만 듣고 본 모세가 하나님의 창조를 전부 알 수 없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여기에서 현대인의 과학적 지식과 합리적 이해 능력이 필요하다.

둘째는 하나님의 창조 톨레도트가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고대 히브리인들의 경전인 토라(모세 오경)를 통해 기독교에 그대로 전달되었다. 그런 이유로 기독교는 현대 과학주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기독교는 성경의 문자만을 믿고, 천동설을 믿고 지동설을 배척했던 불치의 트라우마(trauma)를 가지게 되었다. 그것이 빌미가 되어 과학과 등지게 된 기독교는 결국 과학을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창조를 부정하는 자들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현대과학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천지 만물을 첨단 과학기구로 관측하고 있다. 그 자료들에 의하면,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은 사실과 다른 부분이 적지 않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그렇다면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우리는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우리는 하나님이 모세에게 창조 사건을 보여주셨으나, 모세는 고대 히브리인들의 수준에서 눈에 보이는 대로 창조 톨레도트를 서술했다는 사실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현대 기독교는 모세가 하나님의 창조를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으로 서술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문자주의적 창조론의 사실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셋째는 모세가 창조 톨레도트를 일정한 형식에 따라 서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알면, 창조 톨레도트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하나님의 창조 명령을 듣고 기록한 모세는 창조 톨레도트에서 하나님의 창조명령에 대해 “하나님이 이르시되”(וַיֹּאמֶר אֱלֹהִים)라는 말을 앞에 붙여 놓았다. 하나님의 말씀 뒤에 모세는 추가적으로 그가 설명하는 서술을 ‘접속사(וְ) + 동사’로 이어놓았다. 그리고 찬양하는 구절과 창조의 날짜가 마지막에 나오면서 그날의 창조가 끝난다. 번역된 성경으로 창세기를 읽는 때에는 하나님이 ‘빠라’(בָּרָא: 창조했다)라는 동사로 명령하셨다고 오해하기 쉽다. 실제로 적지 않은 기독교인들이 그렇게 믿고 있다. ‘빠라’는 모세가 하나님의 창조를 설명하기 위해 쓴 말이지, 하나님이 하신 말이 아니다. 하나님은 창조 대상에 따라 각기 다른 동사를 사용하셨다. 창조 톨레도트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하나님이 사용하신 동사와 모세가 사용한 동사를 구분해서 읽어야 한다. (계속)

허정윤 박사(알파창조론연구소, 창조론오픈포럼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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