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무엇이 세속주의인가?

최더함 박사
최더함 박사

그런데 불행히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의 향락, 즉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빠져 하나님의 의도에 빗나간 인생을 살다가 주어진 삶을 허비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특히 오늘날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세상에 대한 전도된 가치관과 세계관으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마저 의심받을 지경까지 이른 것은 심히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러한 현상을 ‘교회의 세속화’ 혹은 세속주의적 현상‘이라 칭한다.

물론 교회의 세속화는 우리 시대만의 현상은 아니다. 18세기 미국의 1차 대각성 운동(1740~1742)의 주역이었던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는 미국교회 안으로 잠입하는 인본주의와 세속주의를 차단하거나 청소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다. 설교의 황태자로 불리는 찰스 스펄전(Charles Spurgeon, 1834~1892) 목사는 1886년 런던 장막교회(Tabernacle Church)에서 행한 설교에서 “교회가 세속주의의 이끼에 덮였다”며 영국 교회의 세속화를 질타했다. 20세기의 토저(A. W. Tozer, 1897~1963) 목사는 “교회가 세상과 연합하여 가련한 잡종이 되었다”고 한탄했다. 그는 “대부분의 신자들이 이도 저도 아닌 회색지대에 살고 있다”면서 “이렇게 된 이유는 성경의 교훈이 모호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어떻게 대해야 하느냐에 대한 성경의 교훈을 그리스도인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오늘날 세속주의는 그 양상이 사뭇 다르다. 너무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속에서 세속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세상과 닮은 모습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그런 세상적인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안에 부지기수로 증대되었다. 세상과 닮은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다. 하나님의 자녀는 심령이 가난한 복된 자들이다. 그들은 자기의 죄를 한탄하고 의에 목말라 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온유한 마음과 겸손한 태도로 원수에게 긍휼을 베풀 줄 알고 정직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이야기하고 하나님의 복음을 입에 붙이고 산다. 하나님의 자녀는 다른 이의 허물에는 눈을 감지만 자신의 죄악과 허물은 단호하게 처리한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칭찬받거나 인정받거나 인기를 누리거나 지위를 얻거나 명성을 얻고 권세를 행세한다는 발상 자체가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삶은 조용하고 침착하고 따뜻하고 오래 참으며 천국에 보물 쌓는 일을 즐겨한다.

이에 비해 세속적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그들은 교회 안에 적을 두고서 예수 그리스도를 지향하지 않고 세상을 바라고 세상적인 가치관을 반영하면서 철저히 자기 유익을 구하는 자들이며, ’자기의‘를 아직 버리지 못한 사람들이다. 신앙과 자기 철학을 구분하지 못하고 주관적인 생각과 판단과 결정에 익숙한 자들이다. 더욱 우리를 안타깝게 하는 것은 이런 세상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주로 목회자들을 비롯한 교회의 지도자들에게서 유별나게 많이 목격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목회를 하나의 직업으로 여긴다.

이렇게 타락한 세상을 사랑하거나 세상의 가치를 더 존중하고 하나님을 무시하거나 부정하는 한편 대신에 자신을 높이고 기뻐하는 사상을 세속주의(Secularism)라 부른다. 세속주의는 시대마다 나라마다 모든 교회에 존재했고 유혹의 손길을 뻗쳤다. 그래서 세속주의는 교회 타락의 주범이 되었다.

세속주의라는 표현이 처음 등장한 것은 종교와는 별개로 인간 스스로 자기를 개량할 수 있다는 점에서 뉴질랜드의 정치가인 홀리오크(G. J. Holyoake, 1904~1983)가 주창한 용어이다. 그가 강조한 바는 교회에 의한 인간 생활의 지배나 통치는 더 필요하지 않다고 한 것이다. 이제 고도의 과학 문명의 발달로 인간세계에 신의 개입이 없어도 된다고 했다. 이 사상은 하나님의 세계, 신의 은총, 신적 계시, 사후 세계 등을 삭제하고 오직 인간은 자기의 노력으로 무한히 발전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홀리오크의 세속주의는 공식적으로 무신론을 표방하지는 않지만 본질은 무신론이자 사단적인 사상 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세속주의가 교회 내로 침투한 것은 유럽의 인본주의적 사상의 발전과 무관치 않다. 특히 17~18세기 유럽의 주류철학으로 자리 잡은 베이컨의 경험주의 철학과 칸트를 비롯한 계몽주의 철학, 그리고 19세기에 발현한 자유주의신학 등이 교회로 유입되면서부터 교회는 서서히 세속적인 가치관에 물들기 시작했다.

사도 요한은 세상을 사랑하는 이 세속주의적 신앙의 요체를 3가지로 나열했다. 그것은 곧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다(요일 2:16).

‘육신의 정욕’이란 육체적 욕구를 말한다. 육체적 욕구는 육체의 즐거움과 만족을 위한 모든 원함이다. 인간의 마음은 영원한 우상제조공장이라고 한 칼빈은 “악은 욕망 가운데 있다”고 하면서 “이 악은 종종 대상 자체에 잇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지나치게 원하는 그 자체에 있다”고 갈파했다. 매허니는 “육신의 정욕은 우리가 경배하는 거짓 신이 되어버린 합법적인 욕구이며 타락한 세상에 속한 것들을 너무 많이 갈망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가령, “돈을 벌고 싶은 합법적인 욕구가 돈을 벌고 싶은 소리 없는 요구로 바뀔 때, 또는 패션과 의복에 대한 관심이 결국 강박이 되고, 음악에 대한 사랑이 인기 최고의 밴드에 대한 집착으로 변하며, 좋은 영화를 관람하고픈 욕구는 최신 블록버스터 영화를 꼭 봐야만 하는 필요로 바뀌는 것”이라 했다.

‘안목의 정욕’은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뒤따르는 육신의 정욕을 말한다. 인간의 눈은 단순히 바깥세계를 본다는 그 자체만이 아니라 영혼의 창구이자 바라봄을 통해 무엇을 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욕의 도구가 된다. 다윗은 목욕하는 밧세바를 보고 그녀를 탐했다. 그렇다고 안목의 정욕이 반드시 성적인 대상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눈으로 보는 그 어떤 것이든지 타락한 인간의 탐심을 자극한다. 만일 당신의 눈이 한 사람의 인격이나 내면의 깊이를 간파하지 못하고 외적인 매력이나 그 사람의 조건이나 개성 등에 매료되어 마음이 끌린다면 당신은 이미 안목의 정욕에 사로잡힌 사람일 것이다. 나아가 토요일에 교회 봉사보다 세상 친구를 만나 세상 연락을 즐기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면 당신의 눈에는 십자가보다 안목의 정욕 거리가 먼저, 더 많이 보이는 사람일 것이다.

‘이생의 자랑’이란, 자기중심주의자의 전매특허이다. 이런 사람은 늘 사용하는 문장의 술어부분이 ‘내가 했다’(I did it)’가 된다. 자기중심주의자는 철저하게 인본주의자이다. 그는 세상이 모두 자기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는다. 심지어 ‘나’가 존재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필요없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이런 자는 자기를 높이는 자이다. 남자는 자신이 가진 권력이나 직책이나 타고 다니는 고급승용차를 자랑하고 여자는 자신이 입고 있는 밍크코트나 유명 핸드백으로 자신을 드러낸다고 한다. 천박한 부모는 자식 자랑에 여념이 없는데 이 또한 ‘이생의 자랑’이라는 사탄의 덫에 걸린 자이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제일 경계하는 죄는 ‘자기 자랑’이다. 왜냐하면 이 ‘자랑’이야말로 교만으로 이끄는 길잡이이기 때문이다.

사도 요한은 이러한 세상에 속한 것들, 세속적인 것들에 대한 미련을 버릴 것을 과감하게 요구한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7)고 경고한다. 존 오웬은 “죽어가는 것들에 대한 살아 있는 애착을 버리라”고 조언한다. 다시 말해, 이들은 세속주의의 문제를 모두 내면에서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세속주의는 바로 우리 마음에 있다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보다 마음의 타락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사도 요한은 우리가 입고 있는 옷 모양이나 말투나 걸음걸이나 좋아하는 음악이나 재산 목록을 말하지 않고 세속주의의 본질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라고 딸 잘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거룩하신 성령으로 영감을 받은 사도 요한은 현명하게도 우리가 내면으로 향하도록 조언하고 있다. 즉 우리가 우리 주변을 둘러싼 세상에 적응하기 이전에 우리 자신의 내면, 즉 마음의 문제부터 돌아볼 것을 권면하는 것이다. 우리 안에 도사린 세속주의의 정체를 소상히 파악할 것을 주문하는 것이다. <계속>

최더함(Th.D/역사신학, 개혁신학포럼 책임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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