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고리 빌 교수
그레고리 빌 교수가 17일 ‘예배자인가, 우상숭배자인가’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하고 있다. ©수영로교회 유튜브 채널 영상 캡쳐

부산 수영로교회(담임 이규현 목사)에서 16일부터 이틀 간의 일정으로 로드맵 미니스트리의 ‘코로나 시대, 목회를 말하다’ 온라인 컨퍼런스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둘째날인 17일, 그레고리 빌 교수(고든콘웰신학교, 휘튼대학 신약학)가 ‘예배자인가, 우상숭배자인가’라는 제목으로 강연했다.

빌 교수는 이사야서 6장을 인용하여 “자녀들이 부모의 외모뿐 만 아니라 행동까지도 따라하는 것은 참 놀랍다”며 “때론 우리는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무언가를 따라하거나 나타낸다. 그리고 어떨 때는 무의식적으로 우리의 환경을 반영한다. 때로 우리는 우리의 문화와 사회에 있는 것을 반영한다”고 했다.

이어 “우리는 무엇을 닮고 반영하고 있는가”라며 “오늘 본문은 이사야에게 주어진 명령이다. 이 명령은 자신의 설교를 통해 백성들의 눈을 멀게 하는 것이다. 이 명령은 먼저 백성들에게 주어진 것인데 이사야의 설교를 통해 눈이 멀라는 것이고 두 번째 명령은 이사야 자신이 설교함으로 백성들을 눈멀게 하라는 것이다.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일은 우리가 해야 할 일 같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사야에게 주어진 이 말씀을 바르게 해석하면서도 여전히 선하시고 양떼를 사랑하시고 돌보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을 믿을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그는 “이사야 6장에는 4개의 부분이 있다. 1절에서 4절, 이어서 5절에서 7절, 8절에서 10절, 그리고 11절에서 13절이 있다”며 “1절에서 4절을 보면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찬양이 나온다. 성경 전체에서 처음으로 ‘거룩하다’가 세 번 나온다. 그분의 거룩하심은 하나님이 모든 방면에서 구별되시되 특히 본문은 도덕적 순결로 구별되심을 말한다”고 했다.

이어 “하나님의 속성은 무게가 있기에 존경을 받는다. 히브리어로 ‘영광’이라는 단어의 뜻은 ‘무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찬양의 모든 무게를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그 분은 가장 높으시고 세상에서 속성으로 가장 무게감이 있으시기 때문”이라며 “그 누구도 완벽한 사랑의 속성을 소유하지 않는다. 인내와 정의와 의와 그 외에도 하나님처럼 완벽한 속성을 가진 자가 없다. 그 분은 영광 받으시기 합당하시며, 그 영광은 찬양”이라고 부연했다.

그리고 “본문 5절에서 7절을 보면 이사야가 죄인임에도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은혜로 거룩하다고 칭함을 받는다. 이사야가 스스로 거룩해진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거룩하다고 칭해주신 것”이라며 “하나님은 이사야가 하나님의 거룩하신 속성을 반영하게 하신 것이다. 그렇게 이사야는 하나님처럼 되는 것이다. 이사야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닮고 회복이 된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가 말했듯이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그는 이것으로부터 회복을 얻은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모습으로 변화되기를 거부할 때 어떻게 될까. 이사야는 변하기를 원했지만 사람이 이 변화를 거부하면 어떻게 될까”라며 “본문 8절에서 10절을 보면 어떻게 되는지 잘 나타난다. 1절에서 4절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영화롭게 된 후에 5절에서 7절에 보면 이사야 인생은 죄가 많음에도 거룩하다 칭함을 받고 8절에서 10절을 보면 사실상 이것은 심판을 말하는 판정이다. 이것은 백성들을 향한 심판의 판결이다.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또한 “이것은 이중명령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변덕으로부터 날아 온 번갯불인가”라며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백성들의 눈을 멀게 하라는 이상한 명령을 하시는 이유가 있다. 이것은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이다. 이것은 수백 년 동안 그들에게 보내어진 선지자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회개하지 않은 이후의 일이다. 이스라엘은 그들에게 찾아온 선지자들에게 완고했다. 그들은 하나님을 향하지 않았고, 이것은 절정의 시간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시는 시간이다. 이 세대에게 심판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가 보니 이 심판은 변덕스러운 것이 아니”라고 했다.

이어 “그들은 회개하지 않은 죄 때문에 심판을 받고 있다. 그것이 첫 번째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종류의 죄로 심판을 받고 있는가”라며 “우리의 눈과 귀와 마음이 원활하게 기능하지 못할 때에 ‘눈이 없는’과 ‘보기 위한 눈’ ‘깨닫기 위한 마음’ 이런 표현들이 함께 사용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어떤 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 죄는 바로 우상숭배”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먼저는 이 용어가 우상숭배자들에게 해당된다는 것을 확인해야 한다. 이사야 42장 17~18절을 보면 그들을 묘사하기를 귀가 있음에도 그들은 듣지 못하고 눈이 있음에도 보지 못한다. 이사야 44장에서 그들이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우리는 우상숭배자들이 어떤 사람인가하니 그들은 눈이 있지만 보지는 못하고 귀가 있지만 듣지 못하고 듣지만 깨닫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고 했다.

빌 교수는 “왜 우상숭배의 죄가 이렇게 표현되고, 감각 기관 기능장애 언어를 쓰는가”라며 “왜냐하면 그들은 우상숭배자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구는 이사야서 후반에도 나오고 이후에 예리미야, 에스겔 등에서도 나온다”고 했다.

이어 “왜 그들은 눈과 귀와 마음이 작동하지 않는 사람들로 묘사되고 있는가”라며 “그 답은 시편 115편에서 분명해진다. 이사야 6장에서 백성들이 귀가 있음에도 듣지 못하고 눈이 있음에도 보지 못하는 이유는 이것이 우상들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우상들과 같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우상처럼 영적으로 생명이 없고 무생물적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우상을 숭배하게 되면 우상처럼 변하게 되고 이러한 행동은 사람을 망하게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사야 6장 11절에 ‘주여 어느때까지니이까?’라고 묻는다. 13절에서 보이는 다양한 표현들도 전부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우상을 닮아가는 것의 다양한 표현이다. 그들이 우상처럼 된 것은 마치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이 진정 그리스도인으로 행동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가 와서 말씀하실 것이다. 그리스도인이지만 실제로는 우상숭배자와 다름이 없는 것”이라고 했다.

또 “에스라 9장에서 거룩한 씨앗이 우상숭배자가 됐다고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경외하는 것을 닮는다. 멸망 또는 회복인지 우리가 예배하는 것을 닮게 되어 있다”며 “출애굽한 첫 세대도 지배적으로 우상숭배자들이었다. 그들이 대다수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이다. 고린도전서 10장에 그들도 우상숭배자들로서, 바로 광야세대”라고 했다.

그는 “신명기에 점성술은 우상숭배의 한 형태로 본다. 신약에서 말하기를 우상은 단순히 물리적인 이미지만이 아니다. 에베소서 5장과 골로새서 3장을 보면 바울이 탐심과 탐욕이 우상숭배라고 말한다”며 “만약 당신이 하나님보다 돈에 더 헌신한다면 당신은 죄가 있다. 그것은 탐욕과 탐심의 죄”라고 했다.

이어 “우리는 어떤 것도 영원히 잡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라며 “그렇기에 요한은 우상숭배자들을 ‘땅 위에 사는 자들’이라 불렀다. 오늘날 많은 우상들도 경제적인 우상이다. 다른 것보다 경제적인 안정에 헌신하게 되면 그들의 마음은 단단해진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헌신하는 돈처럼 생명이 없고 움직이지 않게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도 우상이 될 수 있다. 에스겔 28장에서는 자신을 우상화하는 두로의 왕을 묘사한다”며 “우리가 자기중심적이 되면 우리 자아는 더욱 더 커진다. 그리고 점점 더 많은 것들을 자기중심으로 움직인다. 우리가 더욱 자기중심이 될수록 사물이 더욱 더 우리 자신을 중심으로 작동한다. 우리 자아와 그 영향력을 더욱 크게 만들면 하나님께서 어떤 순간이 되면 펜으로 자기라는 풍선을 터뜨리신다. 심판에서 터지는 것”이라고 했다.

또 “가끔씩 우리는 삶을 보는 세상의 관점에 무비판적으로 열릴 수 있다”며 “이는 다양한 형태로 다가오는데 미디어와 광고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갑자기 무의식적으로 이 세상의 관점을 우리 정신에서 여과하지 못하게 되고 들어오게 된다. 이 세계관은 일하시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인식이나 감수성이 없다. 세상을 보는 방송 매체의 관점에 익숙해지면 거기엔 하나님이 살아있지 않다. 우리가 약간 비정상이라고 느끼게 되고, 부자연스럽고, 일상적 삶에서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를 이해하는데 특히 둔해지고 누군가에게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것이 어색하게 느낄 것”이라고 했다.

빌 교수는 “마태복음 7장에서 우상숭배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공허한 죽은 전통을 경배한 것이다. 그것은 생명이 없으며, 그들은 죽은 전통처럼 생명이 없게 되어가는 것”이라며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의 생명을 주는 말씀을 버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이사야 11장 1절에서 이새의 새로운 뿌리를 예언한다”며 “그루터기에서 새로운 뿌리가 솟아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한 뿌리가 이 죽은 그루터기에서 나올 것인데 그 뿌리가 구세주 예수님이다. 하나님께서 참 이스라엘을 연속시키기 위해 새 이스라엘을 일으키실 것이다. 그것이 예수님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이 되도록 회복시키실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는 자가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라며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고 말씀하셨다. 요한계시록에서 나오는 우상은 교회의 거짓교사들을 가리킨다. 바울의 서신에는 심지어 믿는 자들도 우상숭배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솔로몬은 이방인 여자 곧 우상숭배자와 결혼을 했다. 지혜로운 왕이 오히려 그들의 불경건함에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아울러 “창조주보다 피조물의 어떤 것을 더 찬양하는 것, 이스라엘처럼 이 땅에 어떤 것을 경배하면 그것처럼 되고, 영적인 생명이 없으며 하나님께 민감하지 않게 된다”며 “영적인 눈이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어리석게 된다. 우리는 모든 삶을 성경의 렌즈를 통하여 보아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 하나님이 대가를 치른 것을 보았다. 그리스도가 유일하신 분이다. 세상과 하나 된 존재에서 당신을 이끌어내신 분이다. 당신을 영원한 때까지 그와 함께 하도록 하실 분”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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