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복과 태인은 함께 시골 장터에서 계란을 파는 계란장수입니다. 이들은 무척 순박하고 선량해 보입니다. 그런데 계란장수였던 이들에게는 한 가지 직업이 더 있었습니다. 범죄조직이 살인을 저지르면 그 시체를 처리해 주는 일이지요. 어느 날 범죄조직에서는 그들에게 어린 여자아이를 한 명 맡아달라는 의뢰를 합니다. 유괴한 아이의 몸값을 받아내야 하니 며칠만 아이를 데리고 있으라고 한 것이죠. 내키지 않았지만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이 일에 착수하게 됩니다. 그런데 최초에 일을 의뢰했던 자가 죽게 되고, 이들은 직접 아이의 몸값을 받아내겠다고 위험한 짓을 감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예기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게 되지요.

평범한 사람들이 이뤄내는 악

이 영화는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는데, 그것은 바로 ‘평범한 사람들이 얼마나 큰 악을 이뤄낼 수 있는가’입니다. 영화는 평범한 사람들의 소시민적 삶 속에 무시무시한 악이 내재하고 있는 현실세계의 단면을 그려냅니다.

주인공들은 시체를 유기하는 범법자이지만 이들의 모습은 그저 성실하게 생업에 종사하는 일꾼들처럼 그려집니다. 자신들이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생각을 안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죠. 이들은 유괴라는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르지만 그 모습조차도 마치 자신이 해야 할 업무를 처리하는 직장인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범죄에 가담한 다른 악한들을 대하는 태도도 너무나 공손하고 예의 바르기에 마치 협력업체 직원을 대하는 직장인 같기도 한데, 이러한 장면들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속에 악이 웅크리고 있다는 영화의 메시지를 시사해줍니다. 또한 누군가의 근면 성실한 삶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치명적인 해악이 될 수도 있음을 효과적으로 암시하지요. 아이 또한 이러한 영화의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유괴된 아이는 자신의 처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너무나 천진난만하지만, 그 순수해 보이는 아이조차도 어른들의 악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됩니다.

이 영화의 시각적 표현 또한 영화의 메시지를 뒷받침하는데요. 영화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시골 농촌의 풍광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곳에서 끔찍한 일들이 벌어진다는 아이러니함은 ‘선함 속에 내재된 악함’이라는 영화의 메시지와 조응하게 됩니다.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정서는 이른바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떠올리게 합니다. 히틀러의 부하로서 유대인 말살과정의 총책임자였던 아이히만(1906~1962)이 나치 전범으로 체포되자 사람들은 그가 광기에 사로잡힌 악인일 것이라고 짐작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를 재판하는 과정에서 그가 지극히 평범한 데다가 심지어 가정적이기까지 한 사람임이 드러난 것이죠. 이를 두고 미국의 철학자 한나 아렌트(1906~1975)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제기하게 됩니다. 즉 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이 포악한 악인이 아니라 상부의 명령에 순종한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자행되었듯이, 평범한 사람 그 누구도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은 채 악행에 가담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고 보면 우리 삶에는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그가 수행한 일들이 악을 이루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심지어 성실하기까지 하다면 그 악행은 더욱 동력을 얻게 되겠지요.

성경이 말하는 ‘악의 평범성’

그런데, 성경에서도 이런 악의 평범성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재판에 회부되자 로마 총독 빌라도는 자기 수하에 있는 군사들에게 예수를 십자가형에 처하도록 명령합니다. 그는 예수님이 죄가 없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습니다. 이 일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꾸민 음모라는 걸 간파했던 것이죠. 하지만 예수님을 풀어줄 경우 유대인 군중들이 폭동을 일으킬까 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넘겨주고 맙니다. 빌라도는 총독으로서 자신의 업무에 충실했을 뿐입니다. 성실하게 자기 할 일을 한 것이죠. 하지만 그의 처신은 결국 엄청난 죄악을 낳을 뿐이었습니다. 군사들은 어땠을까요? 총독의 명령을 받은 군사들은 예수님을 모멸하며 희롱하고, 구타하고 십자가에 못 박게 되지요. ‘상관의 명령에 따랐을 뿐’인 그들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을까요?

다윗 왕은 자신의 부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탐한 나머지 그녀를 범하고 우리아 마저 죽게 만듭니다. 그 간악한 죄악이 진행되는 과정에는 요압이라는 다윗의 하수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주군을 섬기고 보좌했을 뿐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의 우직하고 성실한 직무 수행은 악을 감추고 악에 동조하는, 또 다른 죄악일 뿐이었습니다.

기독교인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어

영화 <소리도 없이>에는 상당히 흥미로운 설정이 들어 있습니다. 주인공이 기독교 신앙인이라는 것이죠. 그는 성경구절을 인용한 듯한 말을 자주 쓰고 성품도 온유해 보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의 모습 같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는, 어떤 그럴듯한 이유를 대더라도 결국 유괴범일 뿐이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어떨까요? 복잡한 현대사회의 일원으로서 성실하게, 맡은 일들을 열심히 감당하며 살고 있지만 혹시 그 삶의 결과물들이 누군가에게는 치명적인 악행이 되지는 않을까요? 우리 주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 삶은 어떨까요? 영화 <소리도 없이>는 지극히 평범한, 우리네 삶에 내재해 있는 악의 근원을 돌아보게 합니다

노재원 목사는 현재 <사랑하는 우리교회>(예장 합동)에서 청년 및 청소년 사역을 담당하고 있으며, 유튜브 채널 <아는 만큼 보이는 성경>을 통해 기독교와 대중문화에 대한 사유를 대중과 공유하고 있다.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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