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케묵은 이데올로기 논쟁이 재연되고 있다. 소설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 씨는 “토착왜구라고 부르는, 일본에 유학을 갔다 오면 무조건 다 친일파가 돼 버립니다”라고 했다. ‘토착왜구’라는 극단적 용어를 소환했다. 대하소설을 쓴 저명한 노 작가의 입에서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 저급하게 만들어진 용어가 너무도 쉽게 튀어나온 것은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다.

‘토착왜구’란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보수 정치권과 그 지지자들을 한 덩어리로 비하해 일컫는 말로 종종 사용되어 왔다. 진영논리 속에서 상대를 인신공격하기 위한 정치 프레임적 용어가 분명하다. SNS 상에서 확대 재생산되어지는 욕설에 가까운 이런 용어가 지식인 사회에서까지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분열을 넘어 파국으로 치닫고 있음을 보여주는 아픈 현실이다.

그런데 자유 시장경제 하에서 일본과 가깝게 지내야 한다는 사람들을 ‘친일파’ 혹은 ‘토착왜구’로 비하하는 풍조가 점점 더 집단화하고 있다. 이들은 나와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를 토착왜구, 적폐세력, 수구집단 등으로 규정하고 청산이나 응징 대상으로 삼으려 한다. 그래서 위험하다.

‘토착왜구’란 용어는 ‘친일파’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원색적이고 차별적인 용어이다. 이 용어가 보수 정치인을 낙인찍는 수단으로 사용된 것은 나경원 전 의원이 2004년 6월 신라호텔에서 열린 일본 자위대 창설 5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면서 부터다.

그러자 북한의 대남 선전기구인 ‘우리민족끼리’도 ‘토착왜구’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우리민족끼리는 2019년 3월 28일 “토착왜구는 한마디로 얼굴은 조선 사람이나 창자는 왜놈인 도깨비 같은 자라는 뜻”이라고 정의하며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최근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에게도 ‘토착왜구’라는 프레임이 씌워지는 일이 벌어졌다. 이 할머니가 기자회견에서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전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윤미향 의원을 향해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을 속이고 이용했다”며 윤 의원의 회계 부정 의혹을 폭로했기 때문이다.

‘극우’라는 용어도 이와 비슷한 의미와 의도로 사용되고 이다. ‘극우’란 말 그대로 급진적인 우파라는 뜻으로 자유민주주의와는 배치된다. 그야말로 극단적 전체주의, 국수주의, 민족주의 실현을 위해 전쟁이나 폭력, 테러 등의 인명 살상 행위도 마다하지 않는 집단이 여기에 속한다.

그런데 이런 ‘극우’라는 반인륜적 단어가 국내에서는 보수성향의 반정부단체를 지칭하는 용어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 광화문에서 열린 개천절 집회와 올 8.15집회를 주도한 전광훈 목사를 중심으로 한 보수단체와 소위 ‘태극기 부대’로 불리는 반정부단체를 통칭하고 있음은 이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광화문 광장에서 반정부 시위를 벌이는 보수 단체들을 향한 국민적 시각에는 극명한 차이가 있다. 현 정부의 경제 사회적 실정과 친북정책을 비판하는 자발적인 애국운동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 반면에 몰지각한 극우적 반사회 행동양식으로 치부하며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더구나 요즘 같은 코로나19 팬더믹 상황에서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을 향한 시선은 더 냉소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반정부 시위를 ‘극우’로 단정하는 것에 동의할 수는 없다. 역사적으로나 상식적인 수준에서도 그렇다. 광화문 집회 참가자들을 ‘극우’로 규정하려면 먼저 이들이 전체주의 민족주의 국수주의의 색채를 지녔는가를 보면 된다. 이들이 손에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었다고 해서 히틀러의 나치즘과 무솔리니의 파시즘의 완장을 찬 것과 동격이라 할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다. 민주주의란 서로 다른 생각과 이념을 포용하는 공동체 사회를 말한다. 헌법 11조 제1항에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나아가 유엔 인권선언 제2조에는 “모든 사람은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정치적 또는 기타의 견해 민족적 또는 사회적 출신 재산 출생 또는 신분과 같은 어떠한 종류의 차별이 없이 모든 권리와 자유를 향유할 자격이 있다”고 되어 있다.

나와 생각과 정치이념이 다른 것까지 받아들이고 좋아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싫은 건 따르거나 추종하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진영논리의 틀 안에서 상대를 대하는 시각과 방법이 극단적이고 폭력적이 되면 그것은 차별과 혐오 수준을 넘어 재앙에 도달하게 된다. 14세기부터 수 백 년 간 유럽을 광기로 몰아넣은 ‘마녀사냥’ 사건과 문화혁명 시대 중국대륙에 피바람을 몰고 온 ‘홍위병’이 그 역사적 증거이다.

성경에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약3:6)이라고 했다. 상대를 향한 비난과 혐오는 밖으로 표출하는 순간 날카로운 흉기로 돌변한다. 특히 같은 기독교인들끼리 ‘극우’니 ‘좌빨’이니 하는 것은 성경 말씀에 비춰 봐도 절대로 입 밖으로 내뱉어내서는 안 되는 금지어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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