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배 박사
민경배 박사 ©기독일보 DB
교회사학자인 민경배 박사(전 백석대 석좌교수)가 기독교연합신문 11일자 지면에 ‘미국 선교사들의 공로 없이는 한국 근대화 힘들었다’는 제목으로 기고했다.

민 박사는 “9월 28일! 6.25때 서울이 소복된 날이다. 감격의 그날 어찌 잊을 수가 있으랴! 한국은 세계 거대국들에 둘려 쌓여 있다. 러시아 중국 일본”이라며 “영국의 석학 버터필드가 한국과 유대를 세계 역사의 미스터리로 본다. 강대국에 둘러 쌓여 있는데 생존한 까닭”이라고 했다.

이어 “한국은 이런 위상 때문에 근대에 들어와서 열강의 각축장이 된다”며 “1896년 6월 9일에 벌써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 한국 모르게 38선이 그어진다. 1903년 10월 3일에는 다시 러시아 일본 간에 평양 원산을 잇는 39선이 약정된다. 1945년 8월 2일에는 포츠담회담에서 미군과 소련군의 한국 진주 분계선으로 38선이 그어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오랫동안 중국의 간섭에 시달린다. 심지어 1882년에는 중국이 고종의 아버지 대원군을 중국 보정부에 잡아다가 4년을 유폐시킨다. 이런 중국”이라며 “한데 이들 손에서 한국을 독립시킨 것이 기독교이다. 1831년 9월 9일 로마교황청은 조선교구를 북경교구에서 독립시킨다. 어떤 형태이든 한국이 중국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역사상 최초의 쾌거이다. 중국 천주교회는 이런 조치를 한사코 반대한다. 하지만 교황청은 단호했다”고 했다.

또 “다음은 1882년 한미수호조약 때의 일이다. 당시 미국은 세계 최강대국이었다. 그러나 한국은 실로 세계 최빈국이었다. 초기 선교사 아펜젤러는 한국이 절간의 생쥐처럼 가난하다고 했다.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와 가장 가난한 나라 한국이 대좌하고 앉아서 수호조약을 맺는다”며 “중국의 이홍장이 나서서 한국은 별것 아닌 나라이니 자기들이 대신 조약을 맺어 주겠노라고 했다. 하지만 미국은 단호했다. 한국은 자주독립국가, 당당하다는 것이었다”고 했다.

민 박사는 “그러고 나서 미국 공사관 설치인데 서울의 미국 공사관이 북경의 미국공사관과 동격이었다”며 “한국의 세계 부상이다. 1883년 보빙사 민영익 일행이 미국에서 귀국할 때는 미국 해군 최대 군함 트렌트호가 태우고 일본 중국을 거쳐 호송한다”고 했다.

그는 “중국과 한국이 대등하게 서 있게 한 나라가 미국”이라며 “더구나 한국 근대화의 동력은 미국계 선교사들의 공로 없이 이루어지기가 힘들었다. 반일애국, 병원, 학교, 대학, 신문, 출판, 체육, 미족산업, 여러 방면에서 그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이런 미국이다. 미국은 그 나라의 국가적 가치가 기독교, 민주주의, 자유이다. 그 가치관 위에서 나라와 세계를 위해서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이어 “태평양전쟁에서 맥아더 장군을 지상 사령관으로 한 미군이 일본에 이김으로써 한국은 해방된 것”이라며 “그리고 1950년 북한의 6.25 남침 때에는 미군의 즉각적인 참전과 유엔 16개국의 참전으로 한국이 살아남아 이렇게 번영하고 있다. 미군의 사상자 실종자는 101,111명이었다”고 했다.

아울러 “우리는 지금 세계 8등에 이르는 경제대국”이라며 “우리 민족의 강력한 저력과 DNA가 있어서 그런 영광에 이르렀다. 하지만 미국의 희생과 도움, 지탱이 있어서 가능하였던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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