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전흑칠삼층장’ 배재학당역사박물관에 기증
    고종이 아펜젤러 선교사에게 선물한 ‘나전흑칠삼층장’, 배재학당역사박물관에 기증돼
    130년 전 조선의 마지막 국왕인 고종은 미국인 선교사 아펜젤러(Appenzeller·1858~1902)에게 특별한 선물을 하나 선물했다. 그 선물은 나전흑칠삼층장으로, 최근에 이 유물이 한국으로 돌아왔다. 아펜젤러 선교사를 거쳐 그의 둘째딸 아이다 아펜젤러, 손자인 커티스 크롬, 증손녀인 다이앤 다지 크롬에게 전해졌으며, 100년이 넘은 귀중한 유물을 한국에서 보존·보관하는 게 낫다고 생각..
  • 배재고등학교 신학년 교직원 연수
    “배재의 뿌리는 아펜젤러에게 있다는 것 잊지 말아야”
    지난 3일 배재고등학교는 2023년 신학년 교직원 연수를 진행했다. 이날 학교법인 배재학당 이사이자 아펜젤러기념사업회 사무총장 김낙환 목사는 ‘코람 데오의 사람 아펜젤러’를 주제로 배재학당 설립자인 아펜젤러 선교사의 삶과 사역, 정신 등을 소개했다. 김낙환 목사는 강의에 앞서 ‘코람 데오’(Coram Deo)의 의미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권위 아래,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과 동행..
  • 배재고등학교
    “배재 전통 계승해 최고 명문 자사고로 자리매김하겠습니다”
    138년 역사와 전통, 경쟁력과 성장 잠재력을 갖춘 명문 자사고로서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 배재고등학교의 제23대 교장으로 이효준 교장이 선임돼, 지난 3월 1일부터 공식 업무를 시작했다. 1885년 아펜젤러 선교사가 입국한 그해 6월 시작하여, 1886년 고종 황제가 ‘배재학당’이라는 학교명을 하사한 이래 오늘에 이른 배재고등학교는 국내 최초의 명문사학으로, 긴 세월 시대를 이끈 기독..
  • 제1회 아펜젤러연구소 학술포럼
    “아펜젤러의 교육열정과 사랑, 한국 근대교육사에 길이 남아”
    아펜젤러연구소(소장 이성덕 교수)가 26일 오후 배재대 아펜젤러기념관에서 ‘닷지 아펜젤러의 생애와 사상’이라는 주제로 제1회 아펜젤러연구소 학술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먼저, ‘아펜젤러의 활동과 교육사상’이라는 주제로 발제한 서영석 교수(협성대)는 “헨리 닷지 아펜젤러(Henry Dodge Appenzeller)는 그의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한국선교사로 임명되어 20여 년간 한국 땅에서 활동한 ..
  • 감신대 제2회 아펜젤러 학술대회
    감신대 아펜젤러 학술대회, 오는 25일 종교개혁자 얀 후스 등 다룬다
    감리교신학대학교(총장 이후정, 이하 감신대)는 “1887년 헨리 아펜젤러가 1887년 한국 최초의 신학교육을 시작하여 올해로 개교 135주년을 맞이했다”며 “감신대는 창시자인 아펜젤러 선교사의 정신을 기리고자 지난해부터 ‘아펜젤러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있다”고 했다...
  • 원주시 기독교역사 133주년 기념 전시회
    133년 전 아펜젤러와 존스가 첫발 디딘 원주로 시간 여행 떠나요
    ‘아펜젤러와 존스 선교사는 1889년 8월 16일 서울을 떠나 경기 양평, 지평을 거쳐 3일 만인 8월 19일 원주에 도착한다. 생전 처음 보는 서양인들의 모습에 충격을 받고 놀란 조선인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원주감영 동쪽에 위치한 객사에 머문 두 선교사는 이튿날 원주 목사와 강원관찰사를 예방하여 대화를 나눈 후 다음 행선지로 순행을 떠난다….’ 133년 전 강원 원주를 최초로 방문한 ..
  • 성균관
    [아펜젤러 행전] 아침의 찬란한 햇살 ‘조선’
    예수께서는 네 가지 씨앗이 떨어지는 서로 다른 형태의 토양을 말씀하신 일이 있다. 길가, 돌밭, 가시덤불, 그리고 옥토와 같은 개념이다. 옥토에 떨어진 씨앗만 잘 자라서 삼십 배 혹은 육십 배, 혹은 백 배의 결실을 한다고 하셨다. 씨앗이 떨어진 토양에 따라 그 결..
  • 정동교회에서 예배드리는 성도들
    [아펜젤러 행전] 독립신문이 지적한 개화의 삼대 기관 ‘교회’ ‘학교’ ‘신문’
    당시 우리의 정치적, 사회적 여건과 기대 속에 들어온 기독교, 특히 감리교회는 급진적 개화파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이 땅에 들어오면서 복음을 양반, 지배 계급인들에게 보다는 하류층, 민중 속에 깊이 침투시켰다. 동시에 복음선교를 통하여 개화운동에 앞장서 구한말과 일제 치하의 우리 민족사에 큰 족적을 남겨놓..
  • 위정척사파의 대표 인물 최익현. 급진개화파의 대표 인물 김옥균(좌)과 서재필(우)
    [아펜젤러 행전] 조선이 기독교를 수용한 과정
    우리 민족의 커다란 약점 가운데 하나는 분열된 사고에 있다. 사람들은 지방에 따라 결속하는 힘이 특별하다. 빈부에 따라, 학벌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뉘어 사회적 통합(統合)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통합은 장차 우리 민족의 커다란 숙제 가운데 하나이다. 개신교(改新敎)의 선교가 본격화된 19세기 말, 우리 민족은 개방과 개혁이라는 보다 분명한 과제를 안고 있었고, 그 방법과..
  • 아펜젤러 선교사가 여행 중에 찍은 사진
    [아펜젤러 행전] 문화와 문명의 발전을 저해한 계급사회
    아펜젤러가 조선에 들어온 지 9년째 되던 해인 1894년(고종 20) 갑오개혁(甲午改革)으로 공사노비제(公私奴婢制)가 완전히 혁파됨에 따라 차별적인 신분제의 폐지와 더불어 노비제가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 이전까지의 조선 시대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신분제 사회였고, 신분에 따라 생업활동의 형태가 달랐..
  • 을사늑약 풍자화
    [아펜젤러 행전] 일본의 조선 침략 야욕과 조일합방
    세계정세에 눈이 어두운 당시의 완고한 조선의 보수파 지도자들은 당시 전래된 천주교에 대하여 철저한 탄압(彈壓)과 쇄국(鎖國) 책을 쓰게 되었다. 1866년 2월 21일 천주교 신자인 남종삼, 장경일, 김장운, 최형, 정의배, 홍봉주 등의 가족을 몰살하고, 프랑스 선교사 9명을 목 잘라 죽이고 조선팔도에 영(令)을 내려 천주..
  • 세 나라가 각축을 벌인 당시 한반도 상황을 그린 죠르쥬 비고의 풍자화(1889년)
    [아펜젤러 행전] 강대국들의 각축장이 된 1880년대 조선
    19세기는 서세동점(西勢東漸)1)의 시기로, 조선은 개항해야 하는 불가피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자주적으로 개항하지 못하면서 강대국들의 침략의 대상으로 전락하였다. 조선의 대외정책은 사대교린(事大交隣)2)의 관계와 국제질서를 표방한 전통적인 쇄국정책이었다. 그러나 19세기 초경에는 중국을 통하여 이미 서양문화에 접하고 있는 실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