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펜젤러 언더우드
기조연설하는 이상학 목사의 모습. ©새문안교회

새문안교회(담임 이상학 목사)와 정동제일교회(담임 천영태 목사)가 28일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한국에서 꿈꾼 하나님 나라’라는 제목으로 한국선교 140주년 기념 심포지엄을 공동 개최했다.

이날 정동제일교회 천영태 목사는 ‘감리회 목회자가 바라본 언더우드 선교사’라는 제목의 기조연설에서 “1885년 4월 5일 아펜젤러 선교사와 함께 입국한 언더우드 선교사는 아펜젤러 선교사와 마찬가지로 복음 전파라는 목적 아래 그 수단으로써 교육과 의료를 실시해 한국 근대화에 기여했다”고 했다.

이어 “언더우드는 타 교파 선교사들과 경쟁적 관계가 아니라 협력적 연합 관계를 추구해 그의 연합정신을 일컬어 ‘선교적 에큐메니즘’이라 불린다”며 “그는 화란식 개혁교회, 구세군과의 전도 활동 등 다양한 교파에서 몸담은 경험이 있었고, 이것이 그의 연합정신에 밑거름이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뉴브런스윅신학교를 졸업한 언더우드는 이후 1885년 4월 한국에 첫발을 내딛고 그해 6월 제중원에서의 감리교·장로교 선교사 연합 예배, 그해 11월 외국인 연합교회 개척, 이듬해 2월 제중원과 배재학당·언더우드 학당 예배에 한국인의 참여 허용, 성경 번역, 성찬식, 외국인 묘지 운영 등 여러 선교사업은 협력을 토대로 한 것이었다”고 했다.

특히 “성경 출판과 문서 선교를 위해 1890년 6월 감리교와 장로교 연합으로 조선성교서회를 조직했는데, 여기서 발행된 전도문서 <셩교촬리>는 감리교와 장로교의 연합 작품이었다”며 “언더우드는 감리교와 협력해 선교지 분할 정책을 시행했고, 1892년 6월 5천 명 이상의 도시에서 함께 전도했다. 다른 선교회가 선교하는 지역에선 선교하지 않았다”고 했다.

아울러 “언더우드는 양반과 귀족을 전도하고자 아펜젤러와 함께 YMCA 회관 설립을 요청, 1903년 10월 한국에 YMCA가 조직됐다”며 “언더우드는 교파 구별 없는 단일교회 형성을 꿈꿨다. 1905년 감리교와 장로교 연합으로 조직된 복음주의연합공의회 조직에의 적극적 참여가 그 증거다”라고 했다.

또한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는 성령의 하나 됨을 추구했으며, 이 과정 가운데 서로 배우고 함께 사역하려는 자세를 추구했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초기 선교 초기 많은 열매를 맺는 요인이었으며, 오늘날 장로교와 감리교회뿐만 아니라 모든 교역자들이 구해야 하는 모습”이라고 했다.

아펜젤러 언더우드
청중들 모습.©새문안교회

이상학 새문안교회 담임목사는 ‘장로회 목회자가 바라본 아펜젤러 선교사’라는 제목의 기조연설에서 4년 전 H.G 언더우드 선교사와의 교제 당시 들은 내용을 전했다. 이 목사에 따르면, 4대 후손 피터 언더우드는 “자신들의 조상 H.G 언더우드의 32년간 조선 선교를 언급할 때 절대로 언더우드가 이 일을 해냈다고 말하지 못하게 했다”며 “항상 어떤 일도 ‘하나님이 하게 하셨다.’ ‘할아버지 언더우드가 누구와 함께 했다’고 대화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상학 목사는 “언더우드의 가장 가까운 선교동역자 아펜젤러 선교사가 배 사고로 천국으로 부름을 받은 1902년까지의 사역도 더욱 그러했다”며 “항상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함께 하나님의 일을 만들어 냈다고 표현했다는 것이었다”고 했다.

이어 “그들은 우리가 익히 아는 대로 조선 선교의 세력다툼을 하지 않으려 선교지를 분할 했고, 함께 성경을 번역하고 찬송가를 만들었다. 선교 과정에서 정보를 공유하고 1888년 봄 평양 선교여행 도중 두 사람 모두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자 하는 아름다운 연합일치 정신을 갖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의 신앙은 성장 과정에서 다녔던 유럽 개혁교회에 뿌리를 뒀다. 아펜젤러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수업을 통해 개혁교회의 교리를 습득했다. 이 요리문답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교회의 일치와 연합정신이다”라고 했다.

아펜젤러 언더우드
(왼쪽부터) 오영교 교수, 천영태·이상학 목사, 임희국 박사, 서종일 교수. ©새문안교회

아울러 “이후 감리교로 전향해 목회자로의 부르심을 확인한 아펜젤러는 1882년 뉴저지주 소재 드류신학교에 진학한 뒤 신학교 기숙사에서 조선선교에 소망을 가진 친구 워즈워드를 만났다”며 “당초 일본선교에 소망을 뒀던 아펜젤러는 워즈워드의 권유를 마치 하나님의 명령처럼 생각해 조선선교에 꿈을 품게 된다”고 했다.

또한 “언더우드는 원래 인도 선교를 꿈꾸고 기도했는데, 어느 날 우연히 조선에 대한 설교 정보를 듣는 중에 ‘조선은 어찌할꼬’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대목과 유사하다”고 했다.

나아가 “아펜젤러는 이후 1883년 해외선교를 위한 전국신학교연맹 선교집회에서 한국선교를 결심하게 된다”며 “이 집회에서 아펜젤러는 H.G 언더우드를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교파가 다름에도 서로 우정이 두터워질 정도로 뜻이 맞았다고 한다”고 했다.

특히 “두 사람의 조선 선교에 대한 열정은 서로의 선교적 동지 의식을 형성하고 강화하는 결정적 영향이기도 했다”며 “이 둘의 아름다운 동역과 연합사역은 그 후 한국교회의 전통인 에큐메니컬 사역의 골간이 됐다”고 했다.

이상학 목사는 “오늘날 한국교회는 이 두 선교사의 선교 정신을 얼마나 신실하게 이어가고 있을까”라며 “작은 교리의 차이로 끊임없이 갈등하고 분열하며, 개교회주의와 교권주의에 함몰되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라는 더욱 큰 주님의 지상명령을 망각하고 있는 한국교회가 깊이 돌아볼 대목”이라고 했다.

그는 “이제부터라도, 한국교회는 이 두 선교사의 선교 정신을 따라, 오직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가 실현되도록 하기 위해, 작은 차이를 넘어 연합하고 단결하며 하나 되는 본래의 길을 가야할 것”이라고 했다.

한편, 이후 강연은 임희국 교수(장신대 명예)가 두 선교사가 꿈꾼 하나님 나라, 오영교 교수(연세대)가 아펜젤러·언더우드의 교육 사역과 유산 계승을 발제했고 이후 서종일 교수(감신대)의 주재로 질의 응답이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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