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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세상 만물을 만드시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아담과 하와를 만드셨다.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신 후 그 갈비뼈로 하와를 만드셨다. 잠에서 깬 아담이 하와를 보고 한 첫 마디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였다. 자기와 너무도 닮은, 자기 몸과 같은 존재에게 한 말이었다. 그만큼 첫 남녀의 연합은 아름다운 하나 됨이었다.

그렇게 영원히 살았으면 행복했을 텐데, 하와가 뱀의 꼬임에 넘어가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과를 먹게 되었다. 그러고는 남편인 아담에게도 권했다. 하와와는 달리 아담은 선악과를 먹지 말라던 명령을 이전에 하나님께 직접 들었다. 그는 모든 생물들의 이름을 지을 만큼 총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담은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먹고 말았다. 아내의 영향력이 지대함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어쨌든 이로써 창세기 3:16의 형벌이 시작된다.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창3:16)

과거의 여성들은 남성들에 비해 잠재력과 가능성을 펼칠 사회적 기회를 누리지 못했다. 서구권에서 선포된 천부인권도 여성들에겐 살짝 빗겨 나간 듯했다. 여성은 참정권에 대해서도 흑인 노예보다도 뒤늦게 그 권리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서구의 많은 초기 여성운동가들은 남성들과 동등한 참정권과 교육권을 얻기 위해 피땀을 흘려야 했다. 그 결과로 현재 우리는 역사상 가장 남녀가 평등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 있다. 마치 오랜 세월 고통당한 여성들이 복수의 화신으로 돌아오기라도 한 듯, 페미니즘의 물결이 세계를 덮친 것이다.

‘페미니즘’이란 단어는 언제부터 생겼을까? 최초 사용은 명확하지 않지만, 서구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급진적 페미니즘(radical feminism)’으로 전 세계가 시끄러웠던 1970년대이다. 급진적 페미니즘은 네오막시즘 사상에 기반을 둔 프랑스 68혁명 이후 부상했다. 막시즘의 영향을 받은 이론답게 지배 계급을 남성, 피지배 계급을 여성으로 두고 인류가 사라지지 않는 한 끝나지 않는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모든 문제를 남성 중심 가부장제에 돌리며, 가부장제를 타파하기 위해, 피해자 가면을 쓰기에 좋은(?) 것들을 흡수하고 있다. 성별 해체, 성 윤리 붕괴, 그리고 가정 해체로 이어지는 젠더 이데올로기가 그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에서 이 급진적 페미니즘에 불이 붙은 것은 2016년 5월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이후라 볼 수 있다. 조현병 환자 남성이 한 여성을 죽인 ‘묻지마 살인’이었다. 그러나 ”여자를 계획적으로 노렸다”는 말들이 퍼지면서 많은 젊은 여성들이 분개하며 페미니즘에 뛰어들었다. 이후로 우리 사회에 여성은 잠재적 피해자, 남성은 잠재적 가해자라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했다.

페미니즘의 피해의식 이면에는 결국 자기가 생각하기에 옳은 것만 추구하는 의식이 숨겨져 있다. 이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낙태’ 문제이다.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의 자유연애와 여성 인권을 내걸고, 뱃속에서 심장이 뛰고 있는 태아의 살해를 합법화하는 ‘낙태죄 폐지’를 적극 주장하고 있다. 도망갈 길 없이 살해당해야 하는 ‘가장 큰 피해자’인 태아에 대해서는 눈감은 체 말이다. 그리고 낙태의 육체적, 정신적 후유증은 고스란히 여성들 자신의 몫이다. (강간임신으로 인한 낙태는 이미 모자보건법 14조에 허용하고 있으며, 극히 적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한편에서는 가부장제의 노예가 되는 것을 원천 차단하겠다며 4비(비연애, 비성관계, 비혼, 비출산)를 외친다. 기혼 여성들이 가부장제도에 부역한다며 비난하기도 한다.

그들은 이렇게 자유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자유는 요원해 보인다. 인류 역사상 가장 남녀가 평등한 시대에 살고 있음에도 피해의식에 갇혀 있기에 영원히 포로로 남을 뿐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권리를 남에게서 찾는다. 그것은 이미 주어진 자신의 권리를 남이 갖고 있다고 인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2) 진정한 자유는 나를 창조하신 이가 나에게 부여하신 정체성을 알 때 누릴 수 있다. 태초에 하나님은 하와를 그분의 형상대로 만드시고 참으로 사랑스럽게 보셨을 것이다. 아담과 하와의 연합은 서로를 보완하는 아름다운 연합이었다. 타락 이후의 여성이 열등한 존재로 여겨져 고통받는 것도, 헛된 자유를 추구하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도 그분의 계획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인류를 구속하시려고 보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자. 그 분이 오신 유대 사회는 여성이 남성에 종속되고, 심히 존중받지 못하던 사회였다. 하지만 예수님은 여성을 남성과 동등하게 대하셨고 하나님의 딸들로 부르셨다. 예수님 곁의 여성들은 예수께서 자신들을 존중하고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그 곁에서 흐느껴 울었다. 그의 무덤을 누구보다 먼저 찾아간 것도 그녀들이었다. 예수께서 부활 후 가장 먼저 모습을 보이신 것 또한 여인들이었다. 여성에게 부활의 첫 증인이 되는 명예를 부여해주신 것이다. 당시 유대사회에서 여성은 증인의 자격이 없었기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 사건은 성경에 기록되어 복음이 전파되는 어디든 알려지고 있다.

이런 예수님의 행보는 당시 사회 남성들의 여성에 대한 인식도 변화시키기 시작했을 것이다. 예수님 주위의 남자 제자들은 예수님이 여자들을 대하시는 모습을 보고 놀랐는데. 그 대표적인 사건이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신 일이었다.(요 4:3-29)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을 걸자 여인은 놀랐다. 당시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말을 섞는 것을 기피하던 시대였다. 더군다나 유대 ‘남자’와 사마리아 ‘여자’라니. 그리고 그동안 다른 이들에게는 한 번도 말씀하지 않으셨던 진리를 한낱 이방 여인에게 처음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오순절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시자 기도하던 무리들 가운데서 놀라운 역사들이 일어났다. 그 중에는 여인들도 포함돼 있었다. 비로소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인 교회로 탄생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다. (갈 3:28)

실질적으로 여성의 존엄성을 인정하고 권리 회복의 문을 열어준 것은 기독교였음을 기억한다. 조선 후기 이 땅을 밟은 선교사들의 글을 보면 그들의 눈이 비참했던 조선 여성들에게 향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이화학당과 같은 여학교를 세우기도 했다. 기독교입국론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을 건국한 이승만 역시 여성들의 교육을 배제하지 않았다. 최초로 남녀공학을 시작한 것도 그이다. 지난 세월 우리 교회 내에서 유교적 가부장제와 남녀 간의 성경적 질서 사이에서 혼동이 있었다. 일부 성경 말씀이, 쓰인 당시의 배경과 맥락에 대한 이해 없이 여성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쓰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교회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보이신 진정한 사랑은 그 중심에서 교회를 통해 흐르고 있다고 믿는다.

여성들의 피해의식을 도구로 삼아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려 하는 어두운 세력들이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지혜와 분별력으로 무장한 여성들이 일어나 진정한 자유를 외쳐야 하는 이유다. 교회 역시 교회의 약 2/3를 차지하는 여성들을 깨우고 그들이 자신의 은사를 찾을 수 있게 도와야 한다. 여자들이 법정의 증인이 될 수 없었던 시대에, 여인들을 예수 그리스도 부활의 첫 증인으로 세워주셨던 그 뜻을 묵상해본다. 그것은 여성 인권 회복을 넘어서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세워가는 여성의 역할을 당당히 자리매김해주신 것이다.

김기영(센(saint) 언니 아카데미 총괄, 그리스도의 계절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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