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언니아카데미
©영화 82년 생 김지영

그녀가 말했다. 있는 그대로 사랑받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런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늘 긴 머리를 늘어뜨린 그녀는 언제부턴가 짧은 머리만 고수했다. 그녀가 꿈꾸었던 세상은 단순했다. 사람들 속에서 눈치 보고 싶지 않다고 했고, 남자들에게 평가당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렇게 많이 울었다.

 

결혼을 약속한, 5년을 사귀었던 애인과 헤어진 후 그녀의 언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차별, 억압, 자유, 해방 이런 단어를 주로 썼다. 새로운 친구들을 알게 됐다며 함께 만나자고도 했다. 그들은 자유로워 보였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다. 속옷을 입지 않고, 화장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를 걱정했었는데 밝아진 모습에 안심했다. 그녀가 낯선 남자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는 여행을 좋아한다며 어디에 가 봤냐고 물었다. 어디 어디에 가 봤다고 대답을 하면서도 나는 그녀가 신경 쓰였다. 누가 봐도 둘이 애인 사이로 보였는데, 나에 대한 그의 관심이 부담스러웠다. 그 이후로는 그를 볼 수 없었다. 가끔 말없이 여행을 간다는 이야기를 그녀에게서 들을 뿐이었다.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도 한동안 볼 수 없었다.

잘 지내냐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그녀였다. 임신을 해버렸다며 내게 초음파 사진을 보여주었다. 심장 소리도 들었다고 했다. 그의 아이냐고 물으니 누구의 아이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가 그를 많이 사랑했던 걸 알고 있었고, 그의 아이란 걸 직감했다. 그녀는 자신의 몸에 생명체가 있는 것이 역겹다고 했다. 아이를 지우기 전에 잠깐 나를 만난 것뿐이라며 웃었다. 그녀는 말없이 나를 잠깐 쳐다봤다.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해줄지 기다리는 것 같았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아이가 함께 쳐다보는 것 같아 눈을 피해 버렸다. 그녀는 사진을 핸드백에 도로 넣었다. 어떤 말을 꺼내야 저 사진이 다시 세상에 나올 수 있을까. 나는 용기가 없었다.

왜 페미니스트가 되었냐는 질문에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에 결혼은 족쇄라며 임신이 수치스럽다고 했다. 남자들이 왜 자꾸 자신을 억압하고 공격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도 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병원에 다녀온 그녀는 남자가 싫다고 전화로 하소연을 하면서도 매일 밤 그들을 만나러 갔다. 그것이 자신이 선택한 자유라고 했지만, 그 자유는 그녀를 만나는 다른 이들에게도 주어졌다. 그녀를 자유롭게 대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것이다. 핸드백 속에 가둬진 아이의 손가락이 어른거렸다. 잘렸을까.

나는 조금 바빠졌다. 동성애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이다. 그들은 수줍어 보였고 조용했고 계속 나를 관찰하기도 했다. 그들 중 한 명이 다가와 내게 게이 친구를 사귄 적이 있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처음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우리를 ‘탈동성애자’라고 부르는데 솔직히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며 겸연쩍게 웃었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그들은 누구보다 진실했고 처절했다. 진리에 다가가고 싶어 했고, 때로는 한 여인의 남자가 되는 꿈을 꾸기도 했다. 서로를 바라보며 욕구가 일어날 때마다 뛰쳐나가 성경을 읽었고, 참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들은 좌절했다. 스스로 상처 냈고, 비하했지만 결국엔 다시 십자가로 돌아갔다. 계속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 몸부림쳤다. 그때마다 그들은 혼자가 아니었다. 적나라한 진리를 계속 이야기하는 이들이 그들과 함께 싸웠다. 많은 것을 포기하면서도 그들을 품는 울타리를 계속 만들었다.

그녀의 새로운 맛집을 가기 위해 함께 전철을 탔다. 핸드폰으로 낮에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한 여자, 한 여자의 사연을 내게 말해주었다. 나보다 빨리 그녀를 품어 준 그곳에는 그녀를 위한 봉사와 인내가 있었다. 상담소의 이름으로, 시민단체의 이름으로, 각종 여성을 위한 모임으로 늘 그녀 곁에 준비되어 있었다. 그곳에서 그녀는 ‘자유’를 만났다. 그녀는 낯선 남자라도 좋으니 하룻밤이라도 안길 수 있는 품이 필요했다. 그녀가 갈 수 있는 곳은 그곳뿐이었다. 그녀에게는 그들이 하는 이야기가 진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미 늦은 걸까. 우리는 너무 늦은 걸까. 그녀를 놓쳤다. 너무 쉽게 빼앗겼다. 도적질 당했다. 사실은 그냥 내어 주었다. 눈을 감고 그녀가 먼저 떠나기를 기다렸다. 아무리 쓰고, 공부하고, 외쳐도 한 영혼을 사랑할 능력을 저들만큼 기르지 못했다. 이 땅의 ‘그녀’들에게 꼭 전해주어야 할 진리를 나는 알고 있었는데 말이다.

예수는 나와 달랐다. 십자가에서 이미 다 만들어 두었다. 자기희생을 보였다. 끊임없이 늑대로부터 양을 지킬 수 있는 울타리를 세워 나갔다. 누구나 차별 없이 동역자로 여겼다. 한 영혼을 위해 모든 삶을 바쳤다. 그의 지식과 언어와 논리가 사랑이라는 ‘실력’으로 나타났다. 결국 필요한 건 이것이다. 삶으로 전하는 진리, 우리도 이제는 변해야만 한다.

우리 안에 이 ‘진정성’이 나타나지 않는 모든 학문은 거짓이 된다. 사랑과 기다림, 삶으로 말하는 지식의 증명, 그것이 없다면 울리는 꽹과리로 전락하고 만다. 이 땅의 수많은 ‘그녀’를 되찾아오는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그녀’를 이토록 사로잡은 건 ‘성혁명’이었다. 이는 성에 대한 태도를 완전히 뒤집어 버린다. 육체의 자유로운 사용을 주장하며, 여성과 남성간의 성적인 평등을 요구하는, 결혼과 이혼이라는 사회제도에서의 해방을 외치는 이 혁명, ‘그녀’는 이 혁명에 매료되었다. 우리에게도 이것을 전복시킬 가장 매력적인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 자기를 부인함으로 스스로의 의지를 굴복시키는 진정한 자유, 창조 질서를 따르는 남성과 여성의 연합,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한 결혼에 대한 축복을 누림으로써 우리의 혁명에 온전히 사로잡혀야 한다.

‘그녀’를 유혹했던 ‘젠더 이데올로기’에도 도전해야 한다. 이는 남성과 여성의 구별 자체를 차별로 보고 이를 철폐하려 한다. 성적 다양성이라는 명목으로 레스비안적, 게이적, 양성애적, 성전환적, 퀴어적인 혼음적 형태를 동등한 생활 공동체로 왜곡시킨다. ‘그녀’에게 이 얼마나 창조적이고 자유로운 해방인가.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무엇이 있을까. 바로 ‘복음’이다. 죄와 섞일 수 없는 신이, 인간을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내려왔다. 스스로 자신에게 형벌을 주며 인간의 죄의 값을 대신 치뤄주는 이해할 수 없는 논리, 한 사람의 정체성을 단번에 뒤바꿔 버리는 역설적인 시도, 우리를 사로잡을 수 있는 진정한 ‘자유’가 복음 안에 있다. 결국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 뿐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일으켜야 할 ‘거룩의 혁명’이다.

나를 살리고, ‘그녀’에게 진리를 말할 수 있게 하며, 우리가 함께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이제는 외치며 실제로 살아내야 한다. ‘그녀’의 회복을 우리의 목적으로 삼는, 복음의 전복을 시작할 때이다. 그들이 잡을 수 있는 손과 안길 수 있는 품이 우리에게도 주어져 있다는 걸 진정으로 깨닫고 있는가. 이길 수 있는 단 하나의 무기가 이천 년 전에 이미 완성되어 있음을 믿어야 한다.

아이가 죽은 지 3년 만에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다시 기회가 온 것이다. 아직 그녀를 완전히 놓치지 않았다. 그녀의 핸드백 속에 있는 사진을 이제는 꺼내 주어야 한다. 또 다른 아이의 손가락이 잘리지 않도록 말이다. 그녀가 말없이 쳐다보며 기다릴 것이다. 오늘이 바로 그 ‘구원의 때’이다.

우슬초로 (그리스도의 계절 회원, 센(saint)언니 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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