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균 목사
홍석균 목사

본문 : 예레미야 35장 1-11절

예레미야서가 쓰여진 배경은 유다왕 여호야김 때에 바벨론 느부갓네살왕이 군대를 이끌고 예루살렘에 공격해 왔을 때였다. 당시 남유다는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우상을 섬기며 살았다. 그 대가로 하나님은 심판을 선고하신 것이다. 그래서 예레미야서 전체를 보면 알겠지만 일관되게 심판과 그에 대한 회개를 촉구하셨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나타난 계시는 좀 독특한데, 남 유다에 있는 한 족속에 대해 칭찬하셨다. 계속해서 심판을 선포하시다가 이례적으로 한 족속을 칭찬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의 정체성이 무엇인가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본문은 예레미야에게 하신 하나님의 명령으로 시작된다. “너는 레갑 사람들의 집에 가서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을 여호와의 집 한 방으로 데려다가 포도주를 마시게 하라 하시니라”(2절)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레갑 사람들을 데리고 여호와의 집으로 데리고 가라고 하신다. 그 방은 그 성전의 고위급 간부들이 있는 곳이었다. 또 포도주를 마시라고 권하라고 하셨다. 이것은 불의한 지시나 부당한 명령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서는 포도주는 음주의 개념이지만 물이 부족한 팔레스타인에서 포도주는 음료의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레갑 사람들의 대답은 어떠했는가? “그들이 이르되 우리는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겠노라 레갑의 아들 우리 선조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와 너희 자손을 영원히 포도주를 마시지 말며”(6절) 그들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리고 그 이유도 단순했다. 조상 요나답이 마시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레갑 자손들은 요나답이 “너희가 집도 짓지 말며 파종도 하지 말며 포도원을 소유하지도 말고 너희는 평생 동안 장막에 살아라”(7절)고 했다며 그 명령을 다 지켰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요나답은 누구이기에 레갑 자손들은 그 유언을 굳게 지킨 것인가? 열왕기하 10장에 보면 그는 200년 전 예후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다. 그는 예후와 함께 바알종교에 빠진 오므리 왕조를 무너뜨리는 혁명가로 등장한다. 그러나 개혁을 함께 이룬 예후가 우상을 완전히 척결하지 못하고 땅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않았을 때 요나답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예후를 떠나 평생 유목민으로 살아간다. 그는 절대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는 또 후손들에게도 집도 짓지 말고, 파종도 하지 말고, 포도원도 소유하지 말고, 평생 장막에 살라고 명령했다. 레갑 족속은 그때부터 요나답의 명령을 굳게 지켰던 것이다. 그 기간은 자그마치 250년 이상이었다. 레갑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내부적인 원성이나 외부적인 공격이 있을 수 있었다. 요나답이 있지도 않은데 이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회의감이 들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성실히 이행했다.

어떻게 그들이 한결같은 모습을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이 보고 계셨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믿음을 지킬 때 내부적으로 회의감, 외적인 공격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고 계심을 기억하길 바란다. 계시록 2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에베소 교회에게 칭찬하셨다. 당시 에베소는 로마제국의 4대 도시로 교통의 요충지, 상업의 중심지였다. 또 웅장한 아데미 신전이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와서 참배하는 곳이었다. 그러니 그 참배객을 위해서 기념품을 만들어 주는 사람들 가게, 그 사람들에게 음식을 파는 식당, 잠자리를 제공하는 여관이 즐비해 있었다. 에베소 사람들의 대다수가 아데미 신전 때문에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게다가 신전에는 천여 명의 매춘부가 있었고, 그 안에는 로마 황제의 신전도 있었다. 다시 말해 에베소는 부와 쾌락과 권력의 도시로 그곳에서 믿음을 지킨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믿음 때문에 사자 밥이 돼야 했고, 산채로 살가죽이 벗겨져 죽기도 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그들은 믿음을 지켰다. 그 모습을 예수님은 어떻게 평가하셨나?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계 2:2-3) 주님은 에베소교회가 믿음을 지키는 모습을 아셨다고 말한다. 여기서 ‘안다.’라는 말은 헬라어로 ‘보다.’의 의미이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를 보고 계신다. 우리를 보시며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을 찾고 계신다. 미련하게 보일 만큼 말씀 앞에 순종하는 자들을 찾고 계신다.

오늘날 우리의 전쟁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전쟁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보이는 것에 순종하라고 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것에 순종하라고 한다. 이천 년 전에 사단은 예수님에게 네가 능력이 있으면 이 돌을 떡으로 만들어 보라고 했다. 또 네가 능력이 있으면 뛰어내리라고 했다. 또 나에게 절하라고 했다. 다 무엇을 뜻하는가? 보이는 것에 순종하라는 말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떻게 사단을 이겼나? 사람이 떡으로만 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하셨다. 또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만 섬기라고 하셨다. 레갑 자손도 보이지 않는 유언과 보이는 안락함에 고민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보이지 않는 요나답의 유언을 선택한다. 그 유언이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성도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 말씀에 생명을 거는 것이다. 많은 시련과 공격 속에도 믿음으로 승리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길 축복한다.

홍석균 목사(한성교회 청년부디렉터)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홍석균 #홍석균목사 #한성교회 #청년부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