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원 교수(총신대 신학대학원)가 12일 서울역 공항철도 회의실에서 성산생명윤리연구소(이명진 소장)이 주최하는 프란시스 쉐퍼의 ‘기독교윤리 사상과 교회관’을 강의했다.
이상원 교수(가운데)가 강연하고 있다. ©노형구 기자

이상원 교수(총신대 신학대학원)가 12일 서울역 공항철도 회의실에서 열린 ‘프란시스 쉐퍼 특강’ 제3강에서 ‘기독교윤리 사상과 교회관’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했다. 이 특강은 성산생명윤리연구소(이명진 소장)가 주최했다.

이 교수는 “쉐퍼가 말하는 참된 영성은 ‘성령에 순응하는 삶’, ‘성령에 의하여 영위되는 삶’이다. 그는 성령의 작용이 칭의와 성화 모두를 포괄하며, 전 과정이 하나님이 누구인가를 알아가고,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하나님의 영인 성령에 순종하는 삶을 의미한다”고 했다.

이어 “모든 인류는 죄를 범했고 죄에 대한 책임은 심리적 조작으로 결코 해소될 수 없다. 오직 인간의 공로를 배제한 그리스도의 대속사역에만 근거해서 제거될 수 있다”며 “이 믿음은 키에르케고어가 말한 ‘어두움(무엇이 있는 지 모르는 미지의 불안한 세계)으로의 도약’이 아니다. 역사 속에서 그리스도가 십자가 위에서 성취하고 완성하신 사역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여기서 쉐퍼는 칼 바르트 신학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건의 역사성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바르트는 구속사역이 창세 전부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일체 하나님 사이에서 이미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즉 성부 하나님은 인류가 범할 모든 죄에 대한 심판을 성자 예수에게 내리셨고, 성자는 심판을 받아들임으로써 구속사역은 이미 끝났다는 것"이라며 "그래서 예수를 믿든, 믿지 않든 그리스도의 대속사역은 인류 모두에게 적용된다고 주장했다. 바르트는 2000년 전 골고다 십자가 사건이 창세 전에 이미 일어난 그리스도의 대속을 재현하는 연극과 같다고도 했다”고 했다.

하지만 "칼 바르트에 대한 개혁신학의 비판은 이렇다. 인류 구원이 창세 전, 영원의 세계에서 실행된 게 아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사이에서 인류 구원에 대한 협의와 계획이 있던 것”이라며 “그리고 계획대로 2000년 전 팔레스타인이라는 지역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이 실행됐다. 이에 따라 예수를 믿는 자만이 구원을 얻는다. 쉐퍼도 개혁신학을 따라 칼 바르트를 비판하고 예수의 역사성을 강조했다”고 했다.

이 교수는 이어 그리스도인의 삶을 소극적 차원과 적극적 차원으로 구분한 프란시스 쉐퍼의 주장을 전했다. 이 교수는 “그리스도인의 소극적 차원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이며 이는 날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명령”이라며 “주님도 누가복음 9장 23, 24절에서 ‘제자가 되기 위해서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셨다. 주님은 각자의 삶이 감당할 만한 자기 십자가를 주신다. 그래서 멍에는 쉽고 가벼운 것이다. 만일 내 십자가가 무겁다면 주님이 그만큼 나를 사랑하시고 신뢰하신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인이 생활 속에서 그리스도의 죽음을 본받는다는 게 무얼까? 바로 크기와 성공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사회, 인간의 자아, 합법적이지 않는 소유에 대해서 ‘아니요’라고 말하는 것”이라며 “나아가 그리스도인의 삶은 예수의 부활을 본받는 것”이라고 했다.

특히 “이 말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나라라는 전망 안에서 살아야 함을 의미한다. 이럴 때 세상이 주는 칭송, 재물, 권세는 상대화 된다"며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의 적극적 차원은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롬6:13)는 것이다. 드리는 행위란 수동적 태도가 아니라 인간 스스로가 선택하는 능동적 태도”라고 했다. 이 대목에서 이상원 교수는 쉐퍼가 말한 내용을 인용 했다.

“비성경적인 형태의 영성은 그리스도인에게 일종의 포기만을 거의 전적으로 강조한다. 성경은 이와 같은 의미의 영성 또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거부한다. 인간은 들판에서 사는 짐승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단순하게 수납하는 태도만을 뜻하지 않는다. 수동성 안에는 능동성이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능동적 수통을 통하여, 필연에 의해서가 아니라 선택에 의거하여 현재의 시공간적 역사체계 안에서 있는 피조물이다.”(프란시스 쉐퍼 『참된 영성』 p.247)

아울러 “그리스도는 현재도 그리스도인 안에 계셔 역사 안에서 여전히 활동하고 계신다. 그리스도의 능력은 성령을 매개로 나타난다. 이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능력의 핵심인 ‘사랑의 능력’은 신자에게 주어진다”며 “유의할 점은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매개를 통해서 열매를 맺을 때 우리 편에서 신앙의 행위, 생각하는 행위가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쉐퍼가 말하는 적극적 수동성”이라고 했다.

특히 “성화도 그리스도의 능력이 성령에 의해 매 순간마다 믿음을 통해 행사됨으로 이뤄진다. 인간의 힘으로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고자 하면 무겁다. 하지만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속사역을 묵상하고 성령을 의지하면 이 계명들은 쉽고 가벼운 멍에가 된다”고 했다.

이상원 교수(총신대 신학대학원)가 12일 서울역 공항철도 회의실에서 성산생명윤리연구소(이명진 소장)이 주최하는 프란시스 쉐퍼의 ‘기독교윤리 사상과 교회관’을 강의했다.
이상원 교수(총신대 신학대학원)가 12일 서울역 공항철도 회의실에서 성산생명윤리연구소(이명진 소장)이 주최하는 프란시스 쉐퍼의 ‘기독교윤리 사상과 교회관’을 강의했다. 청중들이 강의를 듣고 있다. ©노형구 기자

이 교수는 마태복음 18장 21~35절을 인용해 “1만 달란트(약 2조원)를 빚진 종이 주인에게 탕감을 받았다. 이는 신자가 평생 동안 하나님 앞에서 범한 죄의 누적 규모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값없는 은혜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셨다”며 “그러나 종은 동료가 백 데나리온(1,000만원)을 갚지 않았다고 옥에 가두어 버렸다. 배은망덕한 악인이다. 이처럼 하나님에게서 죄 사함을 받아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 하나님의 계명을 준수하는 일은 아주 어렵고 힘든 작업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용서란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묵상할 때 가능하다. 그래야 쉽고 가볍게 멍에를 짊어질 수 있다. 그리스도의 대속에 대한 묵상은 신자가 평생토록 해야 할 정도로 그 깊이를 측정할 수 없다. 마르지 않는 샘물과도 같다”며 “이것을 묵상하지 않으면 용서 등 하나님 계명 준수는 무거운 짊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준수하고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인간의 힘과 지혜를 짜내어 하다보면 너무도 어렵고 지쳐 포기하게 된다”고 했다.

그러나 “기도를 통하여 성령의 권능에 의지한다면 극히 어려운 일도 쉽고 가볍게 실행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성령의 도도한 강물에 몸을 싣고 함께 흐르는 삶”이라며 “(또한) 현 시대는 진정한 위로자에 굶주려 있다. 사랑, 아름다움, 의미, 안정된 도덕과 법 등이다. 현대 사회가 이처럼 진정한 위로자를 상실한 이유는 뭘까? 쉐퍼는 현대인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영원히 향유하는 게 인간의 창조 목적인데 이를 잊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버린 현대 시대는 풍요를 이용하여 간음하고(렘 5:7-8), 절대적인 진리를 믿지 않아 사람 사이에도 위선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님을 외면하고 세상적 기술을 의지하다가 배반당한 채 하나님의 심판 아래 들어가 있다”며 “또한 현대 종교지도자들이 예레미야 시대의 거짓 선지자들처럼 사회적 합의를 마치 하나님의 말씀처럼 말하는데도 문제가 있다. 현대문화 자체를 긍정적으로 발언한다면 별다른 방해를 받지 않는다. 그러나 신앙을 갖고 국가와 교회 안에서 심판을 설교하면 이스라엘이 예레미야를 핍박하는 것처럼 박해를 받는 시대다. 현재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쉐퍼는 ‘현대교회가 성경이 제시하는 인간관을 충분히 가르치지 않았다.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타락했으나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로서 도덕적 결단을 통해 현제와 내세, 자기 자신과 타인들을 위하여 역사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존재임을 가르치지 않았다’고 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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