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민 목사
강준민 목사
자제력을 키울 줄 아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자제란 자신의 욕망이나 감정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자제란 곧 절제(節制)를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절제를 아주 소중히 여겼습니다. 그는 성령님의 9가지 열매 가운데 마지막 열매를 절제라고 말합니다(갈 5:22-23). 성령님의 열매는 사랑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절제에서 결론을 맺습니다. 결국 사랑의 최고봉은 절제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절제에 있습니다. 절제는 기다림입니다. 오래 참는 것입니다.

바울은 사랑이란 "오래 참는 것"(고전 13:4)이라고 말합니다. 사랑과 오래 참는 것과는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오래 참고, 인내하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충동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참된 사랑이 아닙니다. 일시적인 감정에 따라 움직이는 것도 진실한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감정을 넘어선 의지적인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대상을 향해 헌신하는 사랑입니다. 책임지는 사랑입니다. 책임과 헌신을 무시하고 쾌락만 추구하는 사랑은 충동에 불과합니다.

절제는 바울의 설교 주제 중의 하나였습니다(행 24:25). 특별히 바울은 교회 지도자를 세울 때 "절제"의 덕이 있는지 살필 것을 강조했습니다. "감독은 .... 절제하며"(딤전 3:2). 절제란 스스로 자신을 다스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도자는 다른 사람을 다스리기 전에 자신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절제(節制)란 정도(正導)를 벗어나지 않도록 자신의 욕망을 알맞게 조절하여 다스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절제란 지켜야 할 선을 지키는 것입니다. 기차가 철로를 벗어나면 탈선하게 됩니다. 우리는 선을 지키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작은 선을 벗어나기 시작할 때, 나중에는 탈선한 기차가 전복(顚覆)되는 것과 같은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절제란 집중력입니다. 절제란 건전한 목표를 위해 힘을 낭비하지 않고 집중하는 능력입니다. 바울은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한다."(고전 9:25)라고 말했습니다. 운동선수가 시합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모든 일에 절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절제란 힘을 아껴 정말 필요한 데 사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힘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무모하게 힘을 사용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자신의 힘을 꼭 필요한 데 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때 승리를 경험하게 됩니다. 힘이 있다고 다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힘이 있을 때 오히려 아껴야 합니다. 그 힘을 가장 소중한 일에 사용해야 합니다.

자제력의 근본은 자신의 욕망을 다스림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물을 다스리는 영장(靈長)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복을 주시며 ,,,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 1:28하)고 명하셨습니다. 다스림은 돌봄입니다. 다스림은 잘 키움입니다. 다스림은 보호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다스림은 세도를 부리는 것이 아닙니다. 섬김에 있습니다(막 10:45). 하나님이 아담에게 모든 생물을 정성스럽게 돌보고, 키우고, 보호하고, 그리고 섬기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은 선악과의 탐욕을 다스리지 못함으로 다스림의 위치를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탐심을 자제하지 못한 결과는 비참했습니다. 저주와 심판과 정죄와 수치심의 고통이 임했습니다. 우리가 아담이 범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길은 성령님을 힘입어 자제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자제력을 키우는 길은 조금 더 견디는 것입니다. 자제력을 키우는 길은 즐거움을 유보하고 고통을 먼저 선택하는 것입니다. 고통을 먼저 선택하고 즐거움을 나중에 누리는 것이 자제력을 키우는 탁월한 훈련입니다. 자제력을 키우는 길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보다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먼저 하는 것입니다. 자제력을 키우는 길은 욕심을 조금 덜어내는 것입니다. 욕심을 줄이고 주어진 삶에 감사하며 사는 것입니다. 자제력을 키우는 길은 분노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자제력을 키우는 길은 혀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비난과 원망과 불평을 줄이는 것입니다. 자제력을 키우는 길은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하나님의 뜻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제력을 만납니다. 사람들이 십자가에 못 박혀 고통 중이신 예수님을 향해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막 15:32)라고 모욕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에게 큰 유혹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내려올 힘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으시고 모든 모욕과 치욕을 견디셨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용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복수하는 데 힘을 쓰지 않으셨습니다. 사랑하는 데 힘을 쓰셨습니다. 예수님은 앞에 있는 즐거움을 바라보시며 십자가를 참으시는 데 힘을 쓰셨습니다(히 12:2).

예수님의 자제력 때문에 우리는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성령님을 선물로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의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강준민 목사(새생명비전교회)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독교 종합일간지 '기독일보 구독신청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