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진 목사ㅣ군포제일교회
▲권태진 목사ㅣ군포제일교회

세상의 피조물 중 사람과 자연에 유익을 주는 피조물이 있고, 그 존재로 인해 환경이 파괴되고 사람들의 마음이 나누어지고 분쟁하고 신음하게 하는 가시나무 같은 존재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가르칠 때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했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
포도나무는 못생긴 나무지만 열매를 많이 맺음으로 농부의 사랑과 보호를 받습니다. 무화과나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오직 열매로 평가받습니다. 열매가 없으면 저주를 받아 뿌리째 말라죽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원줄기이고 우리는 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떠나면 아무 열매를 맺을 수 없음을 알고 예수님께 잘 붙어있는 지혜자가 되길 바랍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에 제자들을 부르고 끝없는 사랑을 주었습니다.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한 제자들은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할 때 성령을 충만히 받고 능력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열한 명의 제자들은 한마음이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성령의 역사로 말씀을 전할 때 설교를 들은 이들은 회개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행2:42)
지식과 정보, 삶의 기준을 성경에서 찾았습니다. 말씀 안에서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며 교제해야 합니다. 말뿐만 아니라 물질을 나누어야 합니다. 성령 받은 그들은 기쁨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오로지 기도하기에 힘썼습니다. 항상 하나님께 묻고 행했습니다. 사도들을 통해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2:43~47)
함께 사는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고 구원받는 자가 날마다 늘어났습니다.
이 사역의 중심에는 사도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삶을 보면서 은혜받기를 바랍니다.

1. 사도들은 성전에 올라가 기도했습니다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행3:1)
사도들은 기도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했습니다. 당시에 기도하는 성도들은 어려운 사람을 돌보았습니다.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행3:2)
나면서부터 못 걷는 자 되어 남의 도움으로만 사는 이를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었습니다.
성령을 받으면 어려움 당하는 이웃을 외면하지 않고 긍휼히 여깁니다. 하나님께 소속되면 사랑과 기쁨과 감사가 있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깁니다.
또한 성령을 받으면 성전을 가까이합니다.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행3:3)
예수님도 절기 때마다 예루살렘 성전을 찾았습니다.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요2:13)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내가 참으로 주를 위하여 계실 성전을 건축하였사오니 주께서 영원히 계실 처소로소이다”(왕상8:13)
다니엘은 포로로 잡혀갔을 때도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문을 열고 하루 세 번씩 기도했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6:10)
성전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의 마음의 고향입니다. 우리의 완전한 성전은 오직 예수님이십니다. 우리 모두가 성전이요, 예수님을 모신 마음이 성전입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3:16~17)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2:22)
우리의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실 줄 믿습니다.

2. 기도하는 사람은 인생을 행복하게 합니다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행3:4)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 자에게 베드로와 요한은 “우리를 보라”고 했습니다. 은혜받은 사람은 말씀을 전하는 사람을 볼 때 마음이 통합니다. 눈에 가득 채워져야 마음도 채워집니다. 늘 강단을 바라보고 은혜받아야 합니다.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행3:5)
그는 사도들을 바라보았습니다. 비록 장애인이지만 삶의 희망을 가졌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무엇을 바라보라고 합니까? 예수님은 무엇을 바라보며, 누구를 가까이 했습니까?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2:2)
물을 포도주로 만드시는 예수님,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는 예수님, 물 위로 걸어가시는 예수님, 나사로를 살리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면 희망이 있습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던 때, 베드로는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로 가다가 바람과 파도를 보고 두려워함으로 물에 빠졌습니다.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마14:29~30)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바라보고, 그의 능력을 체험해야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가진 것이 있습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행3:6)
은과 금이 없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마음과 삶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 것이 부끄러움입니다. 기도하는 사도들에게 예수님이 계신 것 같이 우리에게도 예수님이 계시고, 그 예수님을 전하면 상대가 행복해집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는 것은 인간의 이성으로 보면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사도들의 믿음은 행동으로도 나타났습니다.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행3:7)
예수님의 이름은 창조의 능력이 있습니다. 사도들의 믿음의 행위를 통해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던 자가 일어났습니다. 이 사람은 육체와 영혼의 큰 변화를 체험했습니다. 영과 육의 균형잡힌 회복이었습니다.

3. 하나님의 능력이 영육의 회복으로 나타났습니다

회복의 역사를 이루는 사람은 기도하는 삶, 예수님을 전하는 삶을 삽니다.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행3:8)
걷지 못하던 이의 육체가 회복되어 뛰어 서서 걸었고 영혼이 회복되어 성전으로 들어가 찬송했습니다. 성도들과 사도와 관계도 회복됐습니다.
영육 회복의 꽃과 열매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시146:1-2)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행3:9~10)

 그의 이전 모습을 아는 이들은 심히 놀랐습니다. 사람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신적 존재로 높이려 했으나 베드로와 요한은 오직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행3:16)
지금도 예수님의 이름은 능력이 있고 회복이 있으며 예수님의 이름은 행복을 안겨줄 수 있습니다.
못 걷던 이에게 나타난 기적의 역사를 보며 병마도, 슬픔도, 가난도, 환경도 이기기를 바랍니다. 우리 앞에 놓인 크고 작은 일들도 모두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감당할 시험만 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그리고 기도합시다.
예수님이 있어야 빛이 있고 빛이 있어야 자유와 행복과 영생이 무엇인지 구별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행복을 정욕에 사용하지 않고, 가난하고 힘들게 사는 이웃들에게 긍휼과 사랑을 베풀기 위해 기도합시다.
일천일 24시간 특별기도회가 끝날 때 새로운 역사를 체험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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