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인문학연구원 채영삼 교수(백석대)
채영삼 교수(백석대) ©노형구 기자

기독인문학연구원이 8일 오후 채영삼 교수(백석대)를 초청해 서울 서초구 연구원 세미나실에서 ‘공동서신의 신학-공동서신의 새 관점’이란 주제로 강연을 열었다.

채 교수는 “공동서신은 야고보서, 베드로 전·후서, 요한일·이·삼서, 유다서 등 7개를 말한다. 이 서신들이 지금 한국교회의 문제에 매우 적절한 답이 된다고 생각한다”며 “한국교회의 문제는 곧 나의 문제다. 우리는 신앙하면서 ‘나는 예수 믿고 천국 가는데 왜 이리 인생이 힘든가’라는 질문에 봉착한다”고 했다.

이어 “한국교회를 병원에 데려가서 CT 촬영을 하면 베드로후서가 처방전으로 적절할 것이다. 그런데 왜 안 볼까? 약은 쓰지만 병은 확실히 낫는다“며 “한국교회는 로마서 강해를 많이 하지만 야고보서 강의는 많이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로마서 자체가 야고보서보다 뛰어나다는 얘기는 옳지 않다. 단지 시대적 상황이 로마서를 야고보서보다 뛰어나게 한 것”이라며 “로마서 7장은 중생한 사람의 심령을 들여다보는 현미경으로 내다본 광경이다. 반면 야고보서 3장은 천체망원경으로 전 우주를 보여주는 책이다. 이 위대함은 로마서 7장에 견준다. 한 때 교회의 황금반지는 유다서였다. (그런 점에서) 신약 27권은 전부 금반지”라고 했다 .

채 교수는 “로마서는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다른 기초를 놓을 수 없다고 선언한 대리석이다. 이런 대리석을 야고보서에서 찾으면 당연히 안 나온다. 이것이 정상”이라며 “기초 위에 기둥을 세워가는 온전한 신학은 지푸라기로 지붕을 놓아야 완성된다. 그래서 루터가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말한 것은 옳다”고 했다.

특히 “만일 집의 전부가 대리석이라면 지푸라기의 지붕역할은 누가 하는가? 기초는 너무 튼튼하지만 야고보서라는 지붕이 없다면, 비가 내릴 때는 어떻게 할까”라며 “기초 위에 있으니까 예수 믿으면 구원은 받는다. 하지만 야고보서를 배제한 신학은 비에 홀딱 맞은 초라한 꼴”이라고 했다.

채 교수는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기 위해 로마서, 갈라디아서로만 돌아가면 안 된다. 모든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처럼 각 서신마다 신학적 난제를 해결하는 전공 분야가 다르다”며 “바울서신이 태동했던 시대적 배경이 있다. 바울은 할례를 강조했던 유대파 그리스도인과 논쟁하는 과정에서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변증하기 위해 서신서를 썼다. 구원이라는 기초를 놓는 데는 탁월하다. 하지만 기초 위에 지붕을 놓으려면 야고보서가 필요하다”고 했다.

채 교수는 “한국교회가 잘하는 것은 바울서신을 중심으로 구원의 확신을 심는 것이다. 반면 바울서신 이외의 신학은 약하다. 온전한 신학은 모든 성경을 균형 있게 다루려는 태도에서 출발한다”며 “그러나 한국교회는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데서 끝이었다. 성화가 불만족스럽게 됐다. 심지어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성화가 돼야지 칭의가 성립 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바울에 대한 새 관점’(new perspective on Paul) 학파가 그렇다. 로마서에서만 문제의 해결점을 찾으려는 악순환을 반복했다. 이는 공동서신을 배제하고 소외시킨 태도의 결과”라고 했다.

채 교수는 사도행전 15장에서 바울의 신학과 공동서신의 신학이 조화를 이루는 장면이 연출됐다고 말했다. 그는 “4세기 중반 아타나시우스가 성경의 정경화 작업을 했다. 이런 과정에서 로마서로만 충분히 해결되지 않는 뭔가가 있기에 야고보서 등의 공동서신이 들어간 것 아닐까”라며 “바울서신은 문서 길이 순으로 배열했다. 반면 공동서신은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각 저자들의 권위에 따라 배치된다. 공동서신에서 야고보서가 맨 앞에 등장하는 이유는 저자가 예수의 형제 야고보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 베드로, 요한, 유다 순이다. 초기교회에서 인정하는 중요도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채 교수는 “바울이 총회에 참석해서 이방인도 율법이 아니라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 자녀가 된다는 ‘이신칭의’를 안건으로 상정했다. 베드로는 꿈을 통해 계시 받은 내용을 근거로 바울 의견에 찬성했다”며 “그러나 유대주의적 기독교인들로부터 반대가 있었다. 바울 서신서의 주제는 결국 율법주의에 찌든 그리스도인과의 논쟁이기도 했다”고 했다.

이어 “그러자 진짜 총회장이 등장했다. 바로 예수의 형제 야고보다. 그는 16절에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라고 하자 바리새파 그리스도인들이 찬동했다. 곧바로 야고보는 17절에서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고 말하면서 바울을 지지한다”며 “유대와 이방인 신학이 하나 되는 순간이다. 이런 신앙을 야고보가 말하고 있다. 총회 차원에서 갈등이 끝났고 이 장면을 보자면 야고보가 제일로 권위 있는 인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사도행전 15장처럼 주의 형제 야고보는 행함과 믿음의 측면에서 바울과 합의했다. 그러면 로마서와 야고보서는 충돌할까? 아니다. 조화롭다”며 “367년 아타나시우스가 작성한 신약 정경 목록에서는 복음서, 사도행전 다음에 공동서신(7개)을 두고 이어 바울서신(14개) 순으로 나열됐다. 특히 바울서신서 앞에는 ‘in addition’이라고도 했다. 과장하자면 공동서신서가 필수고 추가로 시간이 남으면 바울 서신을 읽으라는 의미”라고 했다.

기독인문학연구원 채영삼 교수(백석대)
채영삼 교수가 기독인문학연구원에서 강연하고 있다. ©노형구 기자

그는 “이러한 정경 목록이 의미하는 바는 공동서신이 견지하는 믿음과 행함의 시선으로 바울서신을 바라보라는 것이다. 초기 교회는 바울 중심의 안디옥교회와 야고보, 베드로 중심의 예루살렘교회가 큰 축”이라며 “바울이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이신칭의’ 복음을 이방인에게 전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오직 믿음을 강조하니 성화를 무시한 사람들이 생긴 것”이라고 했다.

채 교수는 “그래서 바울신학의 조화와 보완으로서 공동서신이 있는 것이다. 바울이 치고 나가서 개척할 때 발생하는 신학적 문제들은 야고보, 베드로, 요한 등이 담당한 것”이라며 “안디옥과 예루살렘은 이렇게 같이 갔다. 이것이 교회의 정신”이라고 했다.

채 교수는 “어거스틴도 <믿음과 행함>이라는 책에서 공동서신을 강조했다. 바울이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을 강조하니까 은혜를 더하기 위해 죄를 더 짓자는 사람들도 생겼다”며 “어거스틴은 공동서신이 견지하는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가르쳐 바울의 가르침을 오해한 사람들을 교정했다. 이는 안디옥과 예루살렘이 화합해서 신앙의 규범을 이뤄갔던 신앙 전통에서 나온 것”이라고 했다.

채 교수는 바울서신과 공동서신의 조화를 이루는 게 지금의 한국교회에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교회도 마찬가지다. 행함으로 구원받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구원을 확신하는 사람들이 너무 못 사는 것이 문제고 잘 살기에는 세상이 너무 거칠다”며 “왜 그럴까? 한국교회는 70년대 이후 ‘예수천당, 불신지옥’에만 집중했다. 은혜로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은 변함없는 진리다. 그러나 이후에는 어떻게 살 것인가? 크리스천들이 여전히 세상 속에서 직장을 가야한다. 성화를 이루는 문제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아울러 “성화를 이루지 못하면 구원을 못 받는가? 아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구원 이후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정리했어야 한다. 한국교회는 예수 믿으면 단지 세상을 얻고 복을 받는다면서 넘어갔다”며 “교세는 팽창하고 세상과 함께 세상의 복을 얻었다. 동시에 썩어짐과 죄까지도 얻었다. 복을 너무 많이 받아서 시험에 들고 복을 못 받아도 시험에 든다”고 했다.

한편, 그는 각 공동서신의 주제에 대해 “야고보서는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 선 교회’다. 이는 두 마음 품은 자들을 각성시킨다. 구원을 확신해도 시험에 들기 쉬운 세상”이라며 “베드로전서는 ‘세상 속의 교회’로 나그네와 행인에 관한 삶이다. 베드로후서는 ‘교회 안의 세상’이다. 요한일서는 ‘세상을 이긴 교회’다. 유다서는 ‘세상에서 자신을 지키는 것’이 주제다. 이에 따르면 영생을 지키는 것 자체가 승리다. 세상에서 뭔가 이뤄가겠다는 얘기가 아니”라고 했다. 이 외에도 요한계시록은 세상을 심판하는 교회의 승리 곧 ‘새 하늘과 새 땅’에 관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당시 공동서신은 로마라는 세상 속에서 교회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가 주제였다”며 “한국교회는 지금부터 공동서신을 통해 복음이 세상 앞에서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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