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승효상
건축가 승효상 ©노형구 기자

아시아인 최초 오스트리아 1급 십자훈장을 받은 세계적인 건축가 승효상. 올해 4월 국가건축정책위원장을 퇴임했다. 건축가 승효상은 동숭교회 장로이기도 하다. 교회 건축을 많이 해왔다. 그 중 경동교회(한국기독교장로회)가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故 김수근 선생과 함께 설계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최근 그가 설계한 교회 중 경산 하양 무학로교회도 있다. 그가 지금까지 지은 교회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곳이라고 한다. 이곳에 잠시 앉아 있다가 눈물을 흘렸던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승효상 건축가는 “교회는 사람을 초대하듯 그곳에 서 있어야 한다”며 “담을 치거나 문을 걸어 잠그면 안 된다. 신자든 비신자든 교회는 지친 도시인들에게 정신적 위안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Q. 1951년 설립된 부산 구덕교회 담벼락 근처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것으로도 알고 있다. 그땐 어땠는지, 어떻게 신앙을 가지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A. 이북에서 부모님이 자유로운 신앙을 위해서 내려왔다. 나는 52년도에 모태신앙을 가지고 태어났다. 부모님은 전쟁 중 피난민 촌에서 사셨다. 구덕교회 창립멤버셨다. 어릴 때는 교회 바로 옆에 집이 있었다. 부모님은 목회자는 아니지만 교회를 바치는 기둥 역할을 하셨다. 그러나 당시 나는 왜 믿어야 하는지 모른 채 믿었다.

Q. 어떻게 신앙의 길을 진지하게 걷게 되었나?

A. 사춘기 때 으레 그렇듯 모든 것을 의심했다. 종교를 왜 가져야 하는지도 회의가 들었다. 사춘기 때 교회에서 사고를 많이 쳤다. 가령 술 마시고 소리 지르고 그랬다. 도무지 궁금증이 안 풀려서 ‘안 되겠다, 신학을 하자’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부모님은 신앙이 독실하심에도 내게 ‘집안을 일으켜야 하는 의무가 있다’며 말리셨다. 그래서 건축을 하게 됐다.

Q. 지금까지 지은 교회 건축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있다면?

A. 경산 하양 무학로교회다. 유년시절 근처에서 자랐던 구덕교회도 있다. 개신교는 아니지만 중곡동 성당, 당진 돌마루 공소, 아주 어릴 때는 김수근 선생님 밑에서 일하면서 맡은 마산성당도 있다. 김수근 선생을 세계적인 건축가로 만들어준 건축이다. 개인적으로 처음 설계한 교회 건축이기도 하다.

Q. 경동교회에 대해서 설명해 달라.

A. 설계할 당시 나는 27살이었다. 경동교회는 그 2년 전에 지은 마산성당의 형제라고 할 수 있다. 당시 경건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교회라는 것은 건물이 아니다.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 바로 교회다. 그 사람들을 위한 건축이 바로 교회여야 한다. 부름 받은 것은 세속에서 떨쳐 나오라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경건해야 한다. 현재 많은 교회들이 경건함을 잃어버렸다. 교회는 상징이 아니다. 경건은 교회의 본질적 요소다. 그러니까 그 요소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당시 경동교회는 문만 열면 그 앞에 시끄러운 도로가 있었다. 그래서 교회를 돌아서 올라가야 당도할 수 있는 구조로 설계했다. 우리가 사는 곳이 경건하지 못한 곳이라면 그곳을 떠나 경건한 영역을 향해 순례하는 구조인 것이다. 경동교회의 핵심은 바로 옥상 예배당이었다. 원래 하늘이 뚫리는 방식으로 설계했다. 비가 오면 비 오는 대로, 눈 이 오면 눈 오는 대로 말이다. 중간에 교회 측에서 천장을 막았는데, 최근 다시 원형을 복원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Q. 여러 교회들을 설계했는데, 그 과정 교회 측과 갈등은 없었나?

A. 설계를 안 한 경우도 몇 건 있다. 이야기를 하다가 갖고 있는 신학적 내용이 서로 달라서.

Q. 어떤 부분이 서로 달랐나?

A. (교회를) 하나의 공연장처럼 생각한다든가 랜드마크(landmark)처럼 여긴다든가 해서 의견충돌이 있었다. 그렇게 되면 교회의 본질에서 벗어나기 쉽다. 예수님은 건물 안에서 말씀을 전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대부분 강가에서, 들녘에서 전하셨다. 교회 건물은 애초부터 없었다. 기독교가 공인이 되면서 공회당을 쓰기 시작하자 교회건물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혹자는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을 말하는데 이는 유대교에 해당되는 내용이지 개신교나 기독교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교회 건물의 원형은 원래 없었다. 교회는 에클레시아, 곧 부름받은 사람들의 모임이다. 이 본질에만 충실하면 된다. 여기서 벗어나면 교회당을 설계할 의무는 없다.

Q. 교회 건축에 있어 추구하시는 스타일은 무엇인가?

A. 가장 단순해야 한다는 거다.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가 이렇게 말했다. ‘가장 명료한 것처럼 신비한 게 없다’고. 가장 단순해야 신비롭다. 장식이 많고 형태가 복잡하면 사람이 사람을 발견할 수 없다. 사람이 장식에 묻히게 된다. 가장 단순하게 되면 우리가 사는 움직임이 잘 드러난다. 거기에서 진실이 드러난다. 교회당은 신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시다. 어디에나 계신다. 그래서 교회는 신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건축이어야 한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를 돋보이게 해야 한다.

중세시대 서양 성당에 가보면 신을 돋보이고자 엄청난 장식으로 꾸며 놨다. 이는 십계명에 어긋난 것이다. 제사장들의 영광을 위해서 만든 우상에 지나지 않다. 교회 안에는 아무것도 없어야 한다. 가장 단순하고 정직해야 한다. 거기서 우리를 발견하고 우리 속에 계신 하나님을 발견해야 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휘황찬란한 장식에 눌려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다. 교회에서 표식에 대한 영광만 찬양하고 나올 뿐이다. 이는 교회의 본질이 아니다.

Q. 그렇다면 발견해야 하는 교회의 본질이란?

 A. 진리다. 예수님은 빌라도 법정에서 심문 받을 때 ‘진리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대답을 안 하셨다. 진리란 각자가 품고 있는 진리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성찰하는 과정이다. 이런 과정이 있어야 사람이 타락하지 않는다. 질문을 끊임없이 하면서 사는 것이다.

나도 진리가 무엇인지 모른다. 그래서 끊임없이 질문하려고 노력한다. 다만 교회 장식을 마치 진리인 것처럼 여기는데 이는 진리가 아니다. 표식일 뿐이다. 진리는 여기서 나타나지 않는다.

Q. 2018년에 경산 ‘하양 무학로교회’를 설계했다. 그런데 교회 내부가 너무 딱딱하고 차갑다는 의견도 있다.

A. 원초적인 것은 원래 차갑다. 아무 장식이 없으니까. 빛이라는 것은 고정된 게 아니다. 시간에 따라 계속 변한다. 빛이 벽돌에 반사돼서 색감이 항상 변한다. 계속 앉아서 벽을 쳐다보면서 눈물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 작은 공간에는 아무 것도 없는데 감격해서 울더라. 왜 울까? 스스로를 발견하는 감격적 순간을 맞이해서 그런 것이다.

도시의 번잡한 찌꺼기 속에서 살다가 작고 검박하고 단순한 공간 안에 들어서면 자신이 얼마나 거추장스러운 본질을 안고 사는가를 느끼게 된 것이다. 단 한 사람이라도 앉아서 울면 성공이다. 그 한 사람이 제일 중요하니까.

하양 무학리교회
하양 무학로교회 내부 모습 ©이로재건축사무소 제공(김종오 작가)

Q. 건축을 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A. 25살에 마산성당이 완공된 후 직접 찾아 간 적이 있다. 당시 마산 주변에는 한일합섬이라는 공장이 있었다. 여공들이 많았다. 성당 입구에는 한 여공이 수심 가득한 얼굴을 하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성당에 들어가고 30분이 지난 후 성당에서 나왔는데 그 여공 얼굴이 굉장히 밝아졌더라.

틀림없이 여공은 성당에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랬을 것이다. 그 공간에서 감화를 받고 마음에 평안을 얻어서 나갔을 것이다. 그 때 나는 건축을 ‘평생을 걸고 해야 할 사명’으로 느꼈다. 마산성당에 대해서 ‘좋은 건축이다, 나쁜 건축이다’ 그런 평가들은 많이 한다. 하지만 그 여공에 대한 기억만 내게 지금까지 남아있다.

Q. 대한민국 교회 건축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A. 성경에서 가르치는 바를 따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첫째는 좋은 건축이 아니다. 일단 좋은 건축이란 3가지 속성을 지녀야 한다. 첫째는 그 장소에 맞아야 한다. 건축은 땅을 점거해서 설계하니까 그 동네, 그 도시, 그 나라의 풍경에 어울려야 한다. 그런데 혼자 솟아나면 그 동네에 맞는 건축은 아니다. 둘째로 그 시대에 맞아야 한다. 20세기에 기와집을 짓는다면 그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또는 이 시대에 서양의 고딕양식으로 건물을 짓는 것도 마찬가지다. 장소와 시대성이 중요하다.

추가로 합목적성이다. 가령 교회는 교회답게 지어야 한다. 이는 교회의 본질에 관한 것이다. 3가지 요건을 만족시키는 교회는 현재 손에 꼽을 정도다. 유감이다. 교회는 전파하고 전도하고 사람들을 끌어들여야한다. 사람을 오지 말라고 담장 치면 교회가 왜 존재해야 하는가? 교회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성경에 나왔다. 누구나 들어와서 기도하는 곳이어야 한다. 교회 안에서 자기들끼리만 기도하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주변과 이웃을 배척하는 건축이 되면 안 된다.

Q. 교회 건축이 그 사회의 행복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나?

A. 기여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기여해야 한다. 도시의 지속 가능성이라는 것은 상업적인 것만 있으면 안 된다. 경건한 영역이 있어야 한다.

Q. “술, 유흥 등의 욕망으로 점철된 도시에서 교회는 수도원이 돼서 신자든 비신자든 사람들이 언제든 들어와서 자신의 삶을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더 듣고 싶다.

A. 교회는 경건한 곳이라는 느낌을 풍겨야 한다. 사람을 초대하듯 그곳에 서 있어야 한다. 사람을 배척해서는 안 된다. 담을 치거나 문을 걸어 잠그면 안 된다. 일단 교회에 들어가면 온갖 구호보다 단순하고 정직해서 깨끗한 곳, 그리고 순결한 곳이어야 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알아서 교회에 찾아간다. 신자든 비신자든 잠시 위안을 얻게 되는 것이다. 보통 외국의 도시에 가보면 여행하다 잠시 성당에 들어가 쉼을 얻는다. 정신적인 위안을 안겨다 준다. 나는 우리나라 교회가 이런 부분에 있어 정말 많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Q. 그래도 서울에서 그런 역할을 하는 교회를 뽑는다면?

A. 서울 혜화동 소재 동숭교회다. 마당이 오픈돼 있다. 누구든 기도할 수 있다. 동숭교회 인테리어는 내가 직접 꾸몄다. 굉장히 검박하다. 동숭교회에 가서 위안을 얻는 사람이 많다. 가장 좋은 예라고 말하기엔 쑥스럽지만 그래도 좋은 교회당이다.

Q. 한 매체 인터뷰에서 “공동묘지를 통해 죽은 자를 기회 삼아 자신의 삶을 성찰해야 한다. 이런 것이 영성이다. 현재 서울에는 이런 영성이 부족하다”고 말한 바 있다.

A. 교회나 성당만큼은 죽은 자를 기억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놔야 한다. 외국의 도시에 가보면 무덤이 항상 마을 안에 있다. 죽은 자를 가까이 하면 사람은 경건해진다. 사라예보란 도시가 그렇다. 무덤이 항상 주변에 있다. 하도 비극의 역사를 겪어서 그런지 길 가다 보면 무덤이 구석구석에 있다. 그곳 시민들은 항상 죽음을 인식하고 있다. 그 삶이 경박하지 않다.

죽으면 영은 하늘로 간다. 육체와 혼은 소실되고 없어진다. 그래서 무덤에는 아무것도 없다. 오로지 있는 것은 기억뿐이다. 죽은 자를 기억함으로 우리 삶이 경건해지는 것이다. 무덤은 죽은 자를 위한 시설이 아니다. 우리를 위한 시설이다. 죽은 자를 보고 우리 삶을 반추하는 것이다.

인디안의 노래 중 ‘천개의 바람’은 이런 가사를 담고 있다. ‘내 무덤에서 울지 마십시오. 나는 여기에 없습니다. 바람처럼 떠돌아 다닙니다’ 인디안의 지혜처럼 무덤은 살아있는 한 우리 기억 속에서 거주한다. 그래서 새로운 도시를 만들 때마다 먼저 무덤을 만들어놔야 한다.

Q. 서울이라는 도시가 혼잡한 것이 죽음을 기억하는 장치가 없어서 그런가?

A. 그렇다. 무덤을 통해 우리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기억하니까. 자기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아니까. 함부로 욕망 따라 날뛰지 못한다. 자신이 언젠가 죽을 것을 아는 것이 사람의 지혜다.

Q. 끝으로 건축가 승효상에게 하나님의 ‘사명’이란?

A. 진리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묵상하는 것, 그리고 당신의 참 좋은 도구로 삶을 마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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