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

김광연 교수
김광연 교수

근대 철학의 아버지 데카르트(René Descartes)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말을 남겼다. 그는 인간 즉 ‘생각하는 주체’로서의 인간에 대해 포문을 열기 시작했다. 전통적으로 형이상학의 황금기를 맞이했던 시기에 인간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존재였다. 인간은 나약하기 짝이 없는 존재였다. 자연에 수동적으로 순종해야 했고, 신(神)의 뜻에 무조건 따라야 했던 존재였다. 그런 존재에게 근대 철학은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바로 인간은 사유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사유할 때 인간은 비로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근대 가치관은 제시한다. 생각할 수 있는 주체로서의 인간은 이제 형이상학의 가치에서 벗어나 이성적 가치를 실현해 나간다. 인간은 이성의 날개를 달고 자신 스스로가 대상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주체가 되었다. 인간은 더 이상 초월적 가치에 눈치를 볼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인간은 타자에 의미를 부여하는 주체가 된 것이었다. 자연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연은 인간에 의해 의미를 부여받는 객체가 되어가고 있었다. 인간은 자연을 타자로 보고 의미를 부여하는 주체가 된 것이다. 자연의 여러 현상들이 인간에게 지배되는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과학의 발달로 자연도 이제 주체가 아닌 객체로 고정되어 가고 있었다.

* 형이상학의 붕괴와 자연 현상

 

근대 이후, 형이상학의 붕괴를 가져오는 신세계가 펼쳐졌다. 바로 과학 기술의 발달이다. 과거 우리는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이 동쪽에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태양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태양계를 중심으로 지구가 주기적으로 공전과 자전하는 것을 과학자들은 밝혀냈다. 과학의 발달로 자연의 여러 현상들이 하나씩 진리의 영역으로 굳어지기 시작했다.

개기일식과 같은 현상들이 하늘의 노여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믿었던 신념들은 과학에 의해 사실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일식은 지구가 달에 비친 그림자 속에 들어가면서 태양이 완전히 가려지는 현상이다. 밝은 대낮에 어두워지는 자연세계의 공포가 이젠 과학적 사실에 의해 밝혀졌다. 오늘 우리는 개기일식이 되면 망원경이나 불투명한 필름으로 자연현상을 관찰한다. 더 이상 우리는 개기일식과 같은 자연 현상을 하늘의 노여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이처럼 과학의 발달로 형이상학적 해석들이 과학적 사실의 영역으로 옮겨졌다.

인류는 더 이상 기우제나 바다에게 머리를 숙이는 일이 없어졌다. 기상청이 그 일을 대신해 주고 있다. 파도의 높이와 태풍의 진로까지 과학적으로 밝히면서 구지 바다와 자연 현상을 상의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하늘의 비가 왜 내리는가? 과학이 발달되기 전, 비는 하늘에서 인류에게 그리고 대지(大地)에게 촉촉함을 주기 위해 내려주는 선물이었다. 이제 우리는 무거운 수증기들이 물방울로 합쳐져 아래로 떨어지는 현상, 즉 비가 내리는 것을 과학적으로 알게 되었다. 우리는 자연의 현상들을 모두 과학적으로 해석하는 데 무리는 없는 것일까? 과학적 사실이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현상들을 다 설명해 줄 수 있을까?

* 허니문, 생명 탄생의 비밀은 어디에?

 

과학의 기술은 자연의 다양한 현상 뿐만 아니라 인간 생명 탄생의 신비도 밝혀냈다. 전통 형이상학에서 인간의 생명은 전적으로 하늘의 운명에 의해 태어나는 것이라고 믿었다. 인간의 탄생은 오직 신(神)의 영역이었다. 아기의 탄생은 신비하고 미지의 세계였다. 인간은 감히 이 신비의 영역을 침범할 수 없었다. 남녀가 사랑하여 아이가 태어나는 비밀은 그야말로 신비 그 자체였다. 과학이 발달되기 이전, “남녀가 결혼하여 신혼여행이라 불리는 허니문(honey moon)을 다녀오면 부부는 아이를 가질 수 있었다. 이 과정은 그야 말로 미지의 영역이었다.

허니문(honeymoon)은 고대 노르웨이에서 구전으로 전해오는 이야기이다. 허니문은 신랑이 신부를 몰래 데려가서 숨겨두는 기간을 말한다. 신부의 아버지가 딸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을 하지만 딸을 찾지 못한다. 아버지가 딸을 찾는 것을 포기하면 비로소 숨어 지내는 시간을 끝으로 신랑과 신부가 함께 결혼하여 살 수 있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신부가 몰래 신랑과 함께 숨어 지내는 기간 동안 신랑은 신부를 끔찍이 사랑한다. 신랑은 신부에게 매일 꿀을 탄 술을 한 잔씩 주었다. 꿀로 만든 술을 주는 기간을 ‘허니문(honeymoon)’이라고 불렀다. 허니문 기간을 마치고 나서 부부는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이 기간 동안 생명 탄생의 비밀은 신비의 영역이었다. 허니문의 비밀은 과학이 없을 당시 미지의 영역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과학은 이 비밀의 열쇠를 밝혀내었다.

17세기 네덜란드의 레우벤후크는(Anton van Leeuwenhoek)는 현미경을 최초로 사용하여 미생물을 관찰했다. 그 후, 과학자들은 세포를 연구하기 시작하고 서서히 생명의 비밀을 하나씩 풀어가기 시작했다. 과학자들과 의사들은 생명의 탄생이 허니문의 벌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과학자들은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란을 거쳐 태아가 되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인간 생명의 탄생, 신비의 영역이 이제 과학의 영역으로 넘어가서 우리는 아기 탄생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과학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세계 최초 시험관 아기인 루이스 브라운(L.J.Brown)은 1978년 7월 25일 영국에서 태어났다. 당시 의학으로 생각지 못한 체외수정 시술, 시험관 아기가 태어난 것이다.

생명의 탄생, 신(神)의 고유한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가치관이 무너지고 이제 과학자와 의사들에 의해 체외수정(In vitro fertilization, IVF)이 가능하게 되었다. 과학이 발달되면서 형이상학의 해석은 점점 무너지기 시작한다. 형이상학의 황금기였던 중세 시대는 인간의 과학과 경험으로 인해 신세계에 자리를 내어주고 말았다. 과학의 힘과 인간의 기술은 과연 어디까지인가? (계속)

김광연 교수(숭실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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