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옥한흠 목사
故 옥한흠 목사 ©사랑의교회 이미지 캡쳐

* 본지는 사랑의교회를 개척한 故 옥한흠 목사의 생전 주요 설교를 요약해 [다시 읽는 명설교] 코너에서 소개합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돈을 손에 넣기 위해 안달하는 사람, 쾌락을 찾아서 밤낮없이 헐떡이는 사람, 명예와 권력을 손에 넣기 위해 혈안이 된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모두가 세상 영광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이다. 그러나 그들 중에 자기가 원하는 모든 것을 손에 넣은 사람은 아무도 없고, 조금 손에 넣었다고 만족하고, 기뻐하며, 영원토록 보람을 느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히잡 신화에 탄타루스 왕 이야기가 있다. 기독교와는 전혀 관련 없는 이야기지만, 한두 가지 값진 진리를 담고 있다. 탄타루스 왕이 먹으면 죽지 않는다는 제우스 신의 음식을 훔쳐 먹었다. 그 죄로 평생 배고프고 목마르는 고통을 당해야 했다. 눈으로 보고 먹고 마시고 싶은 음식을 먹을 수 없는 고통이다. 이 신화에서 영어 단어가 하나가 생겼다. 바로‘tantalising’으로 감질나게 하다. 애간장을 녹이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밤낮없이 추구하고 있는 이 세상 영광은 다 이런 것이다. 내가 손에 넣었다하면 빠져 나가고, 내가 얻었다하면 얻은 것이 아니고, 내 입에 삼켰다고 생각하면 더 갈증과 배가 더 고프다.

오늘 이 시간 예수님의 말씀을 주목해야 한다. 우리가 진정 배고파하고 목말라 해야 되는 것은 따로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의’이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이요, 저희가 해갈을 받을 것이라는 말이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반드시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만족, 평안, 충족감을 맛보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그럼으로 먹어도 배고프고 마셔도 목마른 것에 매달리지 말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라. 이것이 진정한 행복의 길이요, 이것이 하나님처럼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람으로서 이 세상을 사는 지혜로운 길이라고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다.

그러나 이 말씀이 실감나게 다가오는가. 모두가 남의 얘기로 들릴 것이다. 더욱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목마름, 배고픔이라는 단어가 원래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알아보면 더 거리감을 느끼게 된다. 페이노테스라는 헬라어는 먹을 걸 찾아서 생명을 걸고 두만강 물을 헤엄쳐 건너는 독한 사람들이 체험하는 배고픔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루 종일 물이 없어 이성을 잃어버리고, 모세에게 난동을 부리는 백성들의 목마름이다.

그러므로 배고파 죽어가는 자가 먹을 것을 찾듯이, 목이 말라 죽어가는 자가 한 방울의 물을 애걸하듯이 의를 구걸하는 자가 배부름을 얻을 것이라는 것이다.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본문을 묵상해야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의는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삶 전체에서 하나님의 뜻의 일치하여 맞게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아야한다.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여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배움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다.

요7:1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다시 말하면 주님이 말씀하시는 모든 것은 자기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요, 자기를 세상에 보내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의 말씀을 다 전하는 것이라고 했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이고 그 분의 말씀을 잘 들으면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말씀을 날마다 읽고 묵상하는 자는 하나님의 뜻을 몰라 헤매지 않는다. 왜 우리가 예수 믿어야 하고, 회개해야 되고,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야 하는지, 하나님과 이웃만을 사랑해야하고, 우리가 거룩하게 살아야하고, 십자가를 지고 좁고 험한 길을 가야 하는지, 이 세상 사람들이 좋다는 것을 포기해야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산제물이 되어야 그 모든 것을 주님의 말씀을 통해 다 듣는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예수 믿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사람은 아직도 성경 앞에 다가오지 못한 사람이며,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 사람이다. 우리는 다 안다. 성령께서 때를 따라 우리 마음에 들려주신다.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만 가르쳐주시는 것으로 끝내시지만 않으셨다. 모범되게 보여주셨다. 그래서 예수님을 보면 그 행하심과 말씀과 죽으심과 부활을 보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삶을 알 수 있다. 그가 죽음 앞에서 기도하기로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했다. 주님은 여기에 생명을 걸었다. 아버지의 원대로 하는데 생명을 걸었고, 그래서 십자가의 죽었고 그리고 사흘 만에 살아나셔서 그래서 오늘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는 세상의 구주가 되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된다는 것은 예수님처럼 되고, 예수님처럼 사는 사람이 된다는 의미이다. 애매모호한 말씀이 아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이 시간에 오셔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 삶을 살아야 되는 거룩한 백성임을 깨닫게 되고, 뿐만 아니라, 거룩한 뜻을 추구하는 삶의 열정을 우리 마음속에 불러 일으켜 주시길 소망합니다. 그러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찰을 해야 한다.

첫째로 구원받기를 간절히 사모해야한다. 죗값으로 영혼의 사망과 저주를 피할 수 없는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뜻이요, 강렬한 의지이다. 하나님은 악인이 그 죗값으로 영원히 심판받는 것을 좋아하시지 않는다. 어떻게 해서든지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이 일을 위해 이 땅에 4~5만개 교회를 세우고, 오늘도 복음을 전하게 하신 것이다.

이 가운데 구원을 받아야겠다고 나오신 분들은 감사하라. 하나님께서 그 분들에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심령을 불어넣어 주신 것이다. 여기서도 10% 이상은 아직도 중생 받지 못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겉으로는 예수 믿는 사람 같지만, 마음에 문을 닫은 사람들일지 모른다. 이런 사람들은 내가 구원받아야 된다는 갈증을 가져야한다. 사도 바울 앞에 무릎을 꿇고 선생이여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 간구했던 빌립보 감옥에 죄수처럼 여러분은 구원받기를 사모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천하에 모든 것을 손에 넣었다고 해도 구원을 받지 못하면 완전한 실패자이다. 이 사실을 깨닫는 자는 얼마나 될까요? 모든 것을 소유해서도 죽으면 빈손으로 가는 것이다.

TV에 가끔 나오는 정주영 회장을 보면서 느끼는 바가 많다. 20년 전 어느 크리스마스 축하예배때 예배를 드렸는데 먼 발취해서 가까이 오지 않았다. 가까이 오라고 하니 그가 하는 말이 “저 같은 죄인 어찌 목사님 옆에 서겠습니까?”였다. 생각하기로 그래도 신앙의 대해 조금은 알고 있는 사람인가보다 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도 예수를 믿지 않았다. 그렇다고 전도할 수는 길은 없다. 최근에 그의 모습은 감정도 없다. 희로애락도 못 느낄 정도로 노쇠했다. 판단력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누구의 부축을 받지 못하면 움직일 수 없다. 한국 최고의 재벌이라는 사람에게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인가. 쌓아둔 재산 때문에 자식들이 싸움 붙인 것 밖에 없다. 이제 저 분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남아 있다. 구원 받았는지 아니면 구원받지 않은 지이다. 자기의 것을 가지고 주님 앞에 갈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무엇을 들고 가서 하나님 앞에 내어 놓을 것인가?

나이가 들어 재산이 있으신 분들이 영혼의 불안이 있다. 그래서 재산을 내어 놓는다. 미국같이 제도가 잘 되어 있는 나라는 더 그렇다. 미국은 자식에게 유산을 주지 않는다. 애를 망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연히 사회 기관에 기증을 한다. 믿음이 없는 자들이 마지막을 앞두고 고작 한다는 것이 기증이다.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이 되는가. 해결되지 않는다. 하나님 앞에 갈려면 하나님이 인정하는 의가 있어야 한다. 그 의는 로마서 3:22에서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모든 믿는 자들에게 미치는 의이다.

여러분 가운데 아직도 예수 믿지 아니하는 분이 있다면 이 시간 예수님 앞에 빈손으로 나오길 바란다. 아무런 다른 것이 필요 없다. 손에 무엇이라도 하나가 있다면 장애가 된다. 다 비우고 나와서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드시길 바란다. 이런 사람에게는 영원히 배고프지 않고 목마르지 않는 은혜를 하나님께서 주신다.

둘째로 은혜를 간절히 사모해야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라고 볼 수 있다. 신앙생활이란 무엇인가. 교회를 왔다갔다는 하는 것인가. 밥을 먹을 때 머리 숙여 기도하는 것이고, 성경 가끔 읽는 읽으며, 누가 물어봤을 때 종교란에 기독교라고 쓰는 것이 신앙생활인가. 아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생각한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다. 그 분을 절대적으로 믿는 것이다. 밤이고 낮이고 그 분을 의지하고, 부르짖고, 믿고, 따르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밤낮없이 믿는 그 분이 누구인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것만큼 대단한 것이 있는가. 보통 말인가. 하나님의 아들이 진짜 나를 위해서 필요하니까 자기 생명을 십자가에서 희생하셨다. 한두 가지 말로 떼 울 수 없다. 한두 달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 예수님을 깊이 생각해보았는가. 하늘의 땅의 권세를 가진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위해서 죽으셨다는 것이다. 이 분을 알고 싶은 갈증이 있는가. 우리는 부분적으로 그 분을 알고 있다. 신앙생활은 주님을 알고 싶어 하고 갈망하고 그 사랑의 비밀을 이해하고 싶어서 마음의 배고픔과 목마름으로 주님 앞에 날마다 나아오는 자를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이다.

어떤 분이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을 보고 ‘즐거운 거지’라고 했다. 재밌는 표현이다. 거지도 기분 나쁘게 구걸하는 거지가 있고, 기분 좋게 구걸하는 거지가 있다. 기분 나쁘게 구걸하는 거지는 경력이 별로 없는 사람이다. 기분 좋게 구걸하는 거지는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 가지 소원이다. 끼니 하나 떼 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생각을 한다. 신앙생활을 잘 하는 사람은 생각이 복잡하지 않고 복잡한 것에 관심이 없다. 나를 사랑하신 그 분을 보고 싶다는 생각만 한다.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쉬지 않고 기도한다. 기도는 무엇인가. 인공위성이 대기권 밖으로 나 갈려면 강력한 추진력을 가진 로켓이 필요하다. 기도는 대기권 밖으로 나가게 하는 추진력과 같다. 우리는 육신의 갇혀서 육신이라는 대기권을 벗어나기 어렵다. 그러나 무릎 꿇고 기도하면 기도의 힘이 육신의 대기권을 벗어나서 은혜의 보좌 앞으로 이끌며 우리의 영을 밀어 올린다. 기도하는 시간은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있는 것이다. 육신 밖에 영이신 예수를 만나고, 그 분과 밀회를 하는 시간이다. 기도의 맛을 아는 자는 항상 기도 이후 얼굴이 밝다. 목마른 자에게 주시는 생수가 있다. 깊이 기도한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입에서 찬송이 나온다. 왜냐하면 굶주린 영혼의 때때로 주님이 만나를 주신다. ‘배부를 것이다’는 말은 현재 진행형으로 수시로 채우신다는 것이다. 맛집을 한번 가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또 가듯이, 은혜를 사모하면서 예수님이 주시는 생수를 마시고, 영의 양식을 먹으면 더 달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천국의 원리가 냉정한 부분이 있다.

부익부 빈익빈이다. 세상에서는 악이다. 그러나 영적 세상에서는 거룩한 법칙이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심정을 가지고 주님 앞에 계속 기도하고, 예배로 나아가는 자는 주님은 더 준다. 그래서 있는 자에게는 더 주고, 없는 자에게는 있는 것 까지 빼앗아 가버린다. 이 정도 믿었으면 되었지, 나는 다 안다고 하고 있으면 벌써 그 사람은 갈급한 영혼, 은혜를 사모하는 영혼이 아니다. 있는 것까지 자기도 모르게 다 빼앗긴다.

세상 것은 먹으면 먹을수록 갈증만 난다. 교회 안에서 은혜를 받고 믿음이 좋아지는 사람은 계속 좋아지고, 그런 것 같은 사람은 계속 뒷걸음질 친다.
믿지 않는 자들은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을지를 생각하고, 갈망하라. 그러면 주님께서 생수를 주실 줄 믿는다. 예수 믿고 아름답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지만, 우리는 항상 더 주님을 더 알기를 사모하는 갈증이 있어야 한다. 은혜를 사모해야 한다. 말씀 앞에 자주 앉으라. 기도하는 사람이 되라. 예배 시간에 정성을 쏟으라. 즐거운 거지처럼 하늘로부터 떨어지는 모든 은혜들을 내가 받아 누리고자 하는 갈증을 가지고 주님을 믿으면 우리 하나님께서 배부름의 축복을 남김없이 허락하여 주실 줄 믿는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독교 종합일간지 '기독일보 구독신청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