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흥섭 (profile)
송흥섭 (profile image)

미국의 ‘가족계획연맹’(Planned Parenthood)에서 8년간 수많은 낙태 시술을 상담했던 애비 존슨은 현재 낙태 반대 운동을 주도하는 프로라이프(Prolife)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애비 존슨이 가족계획연맹에서 낙태 상담을 하는 동안 그녀는 여러 가지 이유로 낙태를 원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준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그녀는 여성의 자궁 안에서 태아가 그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하고 여러 조각으로 분해되어 몸 밖으로 나오게 되는 과정이 윤리적으로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낙태 반대 운동을 시작하게 된다.

이것은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어 2019년에 미국에서 개봉된 영화 ‘언플랜드(Unplanned)’ 내용의 일부이다. 이 영화는 ‘낙태’라는 민감한 주제를 다루기 때문에 제작 당시에도 영화 이름을 바꿔서 제작하였고, 개봉 후에는 상당한 흥행에 성공했음에도 낙태를 옹호하는 반대 진영의 영향력에 의해 광고 협찬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 영화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바로 태아의 생명이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보다 진보적인 미국에서도 최근 낙태를 반대하는 법안이 여러 주에서 통과되어 과거와는 사뭇 다른 사회적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낙태 또는 인공임신중절(인공유산)은 자연 분만 시기 이전에 태아를 모체에서 분리하는 과정을 말한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 태아는 생명을 잃게 된다. 낙태를 결정하는 일은 산모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과정이 아닐 수 없다. 그 이유로는 성폭행이나 태아의 질병으로 결정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는 미혼모가 될 상황에 있는 경우나 이미 자녀가 있어 더 이상 출산을 원치 않는 경우도 있다. 부모의 여러 가지 환경적, 경제적인 이유들로 인해 한 생명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런 낙태 시술은 대다수가 심장 박동이 생긴 임신 6주 이후에 시행되는데, 이 시기의 태아는 분명히 생명은 있지만 엄마의 뱃속에 있다는 이유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된다. 근래의 사회적 분위기는 소수자의 인권을 매우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가장 나약한 존재인 태아는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소리 한번 질러보지 못하고 생명을 잃게 되는 것이다.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 태아의 생명권에 우선시되는 안타까운 현실이 바로 지금의 상황이다. 최근에는 의학의 발달로 정상 신생아 체중의 10분의 1정도인 300g 밖에 안 되는 미숙아도 살릴 수 있게 되어 임신 주수에 따라 낙태 합법화를 나누던 과거의 기준도 이제는 의미가 크게 없어졌다.

낙태 시술은 임신 주수에 따라 여러 가지 의학적인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다. 임신 초기에 시행되는 낙태 시술이라 하더라도 자궁벽이 손상되어 출혈이나 복강 내 장기의 손상 또는 감염을 유발할 수 있고, 시술 과정에서 자궁내막의 손상으로 인해 자궁 내 유착이 생겨 추후 난임이 생길 수도 있다. 임신 중기 이후의 낙태 시술은 분만과 비슷한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이 경우 자궁 수축부전으로 대량 출혈이 발생하면 자궁을 제거하는 응급수술이 필요할 수 있고, 간혹 제 때에 수술을 받지 못해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보고되고 있다.

이러한 위험성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시술을 받는 경우도 있어 안타까운 일이 생기기도 한다. 산모가 실제로 어떤 과정을 거쳐 낙태 시술이 이루어지는지, 어떤 위험성이 따르는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설명을 듣게 된다면 낙태 결정을 쉽게 하지 못할 것이다. 신체적인 후유증이 없이 회복 되더라도 낙태에 대한 정신적인 후유증은 오랜 시간이 흘러도 쉽게 치유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연구에 따르면 낙태 시술 후 상당수가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 불안장애나 수면장애를 호소하고 있다고 보고하였다.

20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헌법재판소는 낙태 처벌조항에 대해 헌법 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2021년 1월 1일부터 낙태 처벌 조항은 그 효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낙태죄 규정은 60여년 만에 개정을 앞두고 있는 것이다. 이 결정에 대한 유예 기간은 2020년 말까지로 얼마 남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대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에 대한 새로운 법안이 마련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과거 낙태 처벌조항이 있는 상황에서도 우리나라에서는 통계에 잡히지 않는 수많은 불법 낙태 시술들이 시행되어져 왔고, 그로 인한 많은 후유증이 나타났지만 사회는 침묵하고 있었다. 만약 처벌 조항이 그 효력을 상실하게 되면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낙태 시술이 무분별하게 시행되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과연 우리 사회가 이런 상황에 성숙하게 대처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는지 의심스럽다. 낙태 처벌을 금지하는 법의 시행에 앞서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지지 시스템을 보다 견고히 하고 임신시에 남성에게도 경제적인 책임을 나누는 법적인 기반이 마련된다면 많은 태아들이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또한 새로운 법안이 시행되더라도 의료진의 종교나 신념, 양심에 의해 낙태 진료를 거부할 권리도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

출산과 육아는 분명 쉬운 과정은 아니다. 그리고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에서 새로운 생명을 맞이하는 부모는 그리 많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남자와 여자가 만나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과정은 인생에서 겪을 수 있는 가장 신비롭고 축복된 일이라는 것이다. 생명은 우리가 원한다고 언제든 멈추거나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생명은 보호 받아야 하고 우리 사회는 그것을 지킬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어야 할 것이다.

송흥섭(한국성과학연구협회, 산부인과 전문의, 온누리교회 안수집사)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독교 종합일간지 '기독일보 구독신청 바로가기'